이광수의 교통안전 칼럼

[고양신문] 간혹 차를 운전하다 보면 도로에서 공사를 진행하는 현장을 지날 때가 있다. 안전모를 착용하고 신호봉으로 차량 정지와 진행을 지시하기도 하고, 복장을 갖추지 않고 그냥 신호봉만 들고 수신호를 하는 때도 있다. 보통 사람들은 도로에서 수신호 하는 사람들이 그 수신호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줄 알고 아무렇지 않게 그 수신호에 따라 차량을 이동한다.

사실 이들은 현행 도로교통법상 수신호 권한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떤 경우에는 대형마트 사거리 같은 곳에서도 모범운전자와 비슷한 복장으로 차량 운전자들에게 수신호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도 자세히 보면 대형마트 측에서 아르바이트로 고용한 사람들이다. 이것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의 교통의 현주소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하다. 특히 안전을 그 무엇보다 강조하면서 이런 불합리한 일을 방치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작년 10월 29일 159명이 안타깝게 사망하고 196명이나 다친 이태원 참사도 있었다. 이후 정부와 경찰에서도 개선 대책을 발표하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중 경찰은 다중 행사 관리를 위해 혼잡·교통유도 경비업무를 신설하고 담당 경비원을 육성하는 내용의 경비업법 개정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일본도 2001년 7월 21일 일본 효고현 아카시 시(市) 해안가의 불꽃놀이 행사장과 인근 아사기리 역을 잇는 육교에서 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총 11명이 사망하고 247명이 다치는 대규모 참사가 있었다. 이후 일본은 2005년 경비업과 국가공안위원회 규칙을 개정해 ‘혼잡 경비’를 추가하고 경찰은 동선을 통제하고 민간경비업체는 혼잡·교통유도 업무를, 소방은 구급차를 대기시켜 관리한다.

교통유도경비는 도로 등에서 차량이나 보행자의 원활하고 안전한 통행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협력을 구함으로써 교통사고의 방지와 원활한 소통을 도모하는 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교통유도경비는 미국, 일본 등에서 오래전부터 이미 시행해 오고 있다. 즉, 교통 선진국들은 교통유도 경비업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도로공사, 건설, 보수 등 공사 구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는 2~3%에 지나지 않고, 일본도 공사 구간 사망자가 1970년 1만 6765명이었지만, 교통유도 경비제도를 도입한 1972년 이후부터는 급격히 감소하여 2011년엔 4612명으로 72%나 감소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각종 공사장과 행사장에는 교통안전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비전문가가 혼잡·교통유도경비를 담당하고 있다.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수신호를 하고 있어 오히려 사고와 혼잡을 유발할 수도 있다. 도로교통법에 명시된 수신호 권한이 있는 사람은 경찰공무원(자치 경찰공무원 포함)과 모범운전자, 군사훈련 및 작전에 동원되는 부대의 이동을 유도하는 군사경찰, 본래의 긴급한 용도로 운행하는 소방차·구급차를 유도하는 소방공무원뿐이다. 모든 공사장과 행사장에 경찰과 모범운전자를 배치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제는 이 문제를 공론화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고 본다. 실제로 도로공사를 비롯한 각종 공사 현장에서 안전조치를 소홀히 하면 통행하는 사람과 차량 소통에 불편함이 초래되고, 자칫하면 대형 인명 피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에는 교통유도 경비제도가 없어 각종 대형행사에는 교통경찰이 배치돼 치안의 공백 현상이 생기고 있다.

우리나라는 만성적으로 휴가철, 공사 현장, 행사장, 출퇴근 시간 등에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모범운전자들을 이런 곳에 모두 배치할 수도 없다. 그들도 생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쉬는 날 출퇴근 시간대에 복잡한 곳에서 교통유도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차량흐름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로에서 원활한 차량 흐름을 유도하는 교통유도경비를 도입해야 한다. 

교통유도경비의 전체적인 업무는 경찰에서 통제 관리하고, 일정한 교육 수료와 자격시험을 통과한 사람들만 정해진 복장을 갖춰 길거리에서 교통유도경비를 담당하게 해야 한다. 물론 그들의 교통 수신호는 법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 그 수신호를 사람들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통유도경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주기적인 보수교육도 이루어져야 한다. 주거용, 상업용 건물 모두 건물 용적률을 높여 주어 도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출퇴근 시간대에 더욱 차량 혼잡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신축 건물이나 공사 현장도 많아지고, 자치단체 등에서 주관하는 축제나 행사가 많아지면서 폭넓고 다양한 도로와 차량의 정확한 유도를 위해서는 교통유도경비를 제도화하고, 이들의 수신호도 인정하는 것이 국민의 안전을 위해 현실적이다.

각종 혼잡 경비에서 정부가 그 역할을 못 했을 경우 엄청난 인명 피해와 사회적 비난 여론에 직면한 것을 우리는 많이 봤다. 그것을 반면교사 삼아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평상시에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다.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면 좋겠지만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할 일이 아니라 현실을 들여다보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고쳐나가야 한다. 

 이광수 일산서부경찰서 교통관리계 경감
 이광수 일산서부경찰서 교통관리계 경감

안전은 국가와 민간으로 나눌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리고 국가는 소중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 또 일이 터지고 나서 사후 약방문식으로 과거에 했던 발표를 돌려막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거대하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경찰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하루빨리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교통유도 경비제도를 추진하길 바란다.

이광수 일산서부경찰서 교통관리계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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