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에도 틈틈이 심은 오이와 옥수수
우중에도 틈틈이 심은 오이와 옥수수

[고양신문] 비가 무섭게 내렸다. 

강물이 범람하고, 온 들판이 물에 잠기고, 산사태가 나서 집들이 사라지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어머니와 동생들은 수시로 내게 전화를 걸어 농장은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왔고, 나 역시도 여주와 원주와 충주에서 농사를 짓는 벗들에게 전화를 넣어 조심스레 안부를 묻곤 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업농이 아닌 나는 큰비로 인해서 농장이 물에 잠긴다고 한들 깊은 한숨 몇 번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시골에서 몇천 평 전업으로 농사를 짓는 벗들에겐 우르르 쾅쾅, 호랑이의 울음으로 퍼붓는 빗줄기는 가족의 일 년 생계를 위협하는 포성이나 다름없다. 

천만다행으로 우리 농장이나 벗들의 농장은 별다른 피해 없이 전국을 강타한 물난리를 무사히 넘겼지만, 수마가 휩쓸고 지나간 끔찍한 현장의 소식을 밤낮없이 전하는 재난방송 앞에서 마음은 내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물에 갇힌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가고, 산사태가 마을을 송두리째 집어삼킨 끔찍한 비극은 말할 것도 없지만 물바다에 잠긴 논밭과 폭삭 주저앉은 하우스들이 화면에 비칠 때마다 나는 아이고, 저를 어째 탄식을 하며 울컥하는 감정을 다스려야만 했다. 

농사를 접하기 전만 하더라도 나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재난방송 앞에서 사람들이 죽거나 집이 무너지는 비극 앞에서만 에고, 마음을 졸였지 논밭을 잃은 농부들은 미처 보지 못했다. 그러나 농사를 짓고 나서부터는 논밭을 집어삼킨 물난리 앞에서 멍하니 하늘을 우러르는 농부들이 꼭 내 자신인 양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빗속에서도 잘 자라는 울금들
빗속에서도 잘 자라는 울금들

 

물론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게 그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한테 늘 중요했던 건 도시였고, 농촌의 이야기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여겨졌으니까. 그래서 젊은 날 홍천강으로 피서를 갔을 때, 한밤중 강변의 옥수수밭에서 서리를 하면서도 나는 부끄러움은커녕 희희낙락 즐겁기만 했다. 이놈 저놈 한두 개씩 똑똑 끊어가는 피서객들로부터 옥수수를 지키기 위해 옥수수밭 한가운데서 잠을 자고 있던 농부가 바스락 소리에 퍼뜩 깨어나 손전등 불빛을 흔들며 이 쌍놈의 새끼들아, 다 따 가라 다 따가 울부짖던 고함은 키득키득 무용담으로 남았고.

지금도 얼마나 많은 농부들이 빗물에 잠긴 논밭 앞에서 망연자실 속울음을 삼키고 있을지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재난방송에서 농부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물에 잠긴 논밭을 먼 거리에서 획 비추고 지나갈 뿐, 그 속에 어떤 슬픔과 절망이 잠겨있는지는 그저 무관심으로 일관할 따름이다. 그리곤 하루아침에 일 년 농사를 잃은 농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비자물가 상승을 걱정하는 소리부터 내보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오늘 아침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올해는 고춧가루가 비쌀 것 같으니까 배추를 조금만 심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알았노라고 건성으로 대답을 하면서 전화를 끊는데 문득 몹시 쓸쓸해졌다. 

농부의 삶이 곧 우리의 삶이어야 한다는 당위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장삼이사, 우리의 삶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고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귀에 들리지 않는 참으로 기묘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무리 곱씹어봐도 그저 난감할 따름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톺아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김한수 소설가
김한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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