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모임 중독자의 고백

- 메리 셀리 『프랑켄슈타인』

‘아, 산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 무시무시한 얼굴을 견딜 수 없었으리라. 미라가 다시 살아나 움직인다 해도 그 괴물처럼 참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미완의 상태에서 괴물을 찬찬히 뜯어본 적은 있다. 그때도 흉물이었다. 하지만 그 근육과 관절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자 단테도 상상 못했을 괴물이 되어 버렸다.’ (문학동네 판, 73쪽)
 
[고양신문] 여러 독서 모임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을 두어 번 정독했다. SF문학의 효시, 여성 작가, 공포 소설, 고딕 소설, 낭만주의 문학, 연금술, 자연과학의 시대 등이 주요 키워드였다. 그런데 세 번째 독서에서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이봐, 빅토트 프랑켄슈타인. 당신이 창조한 인간이잖아. 그런데 왜 혐오스러워하고 도망치는 거지? 시체를 고른 것도, 6척 장신으로 만든 것도 당신이잖아. 신은 당신의 모습을 본따 최초의 인류를 만들고 만족해했는데, 프랑켄슈타인 당신은 왜 그의 모습을 부정하는 거지? 알고 보면 당신이 외면하고 싶었던 당신 자아 아냐?”

이 질문에 프랑켄슈타인은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니야. 난 분명 사지를 비율에 맞춰 제작했고, 생김생김 역시 아름다운 것으로 선택했다고. 그런데 막상 생명을 불어넣으니 허여멀건한 눈구멍과 색깔 차이가 없는 희번득거리는 두 눈만 부각된 거야. 얼굴 살갗은 쭈글쭈글하고 일자로 다문 입술은 시커매서 더 끔찍했다고!”

아무리 그래도 변명이 와닿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부모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고 하지 않는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으로 품어 주고, 제대로 교육을 시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의 반려를 만들어 달라는 괴물의 부탁을 들어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창조에 대해 그렇게 기대를 해 놓고, 왜 막상 현실에 닥쳤을 때는 외면한 것일까?

프랑켄슈타인의 복잡한 심리를 이해하려면, 그를 창조한 작가 메리 셸리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신의 창조 능력을 물려받은 이는 여성이다.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의 노력으로 이어지는 것이지만, 여성의 ‘출산’이 없다면 남성은 창조력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기에 남성은 창조력을 역사, 철학, 종교, 문학 등으로 표출한다. 다양한 인공물들을 창조함으로써 대체 만족을 추구한다. 20세기에 들어서기까지 여성에게는 부여되지 않은 능력이다. ‘출산’보다 ‘인공물 창조’가 더 높이 평가받던 시절의 이야기다.

메리 셸리는 네 번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세 아이의 죽음을 감당해야 했다. ‘어머니가 되는 것은 모든 여성에게 기쁨’이고, ‘태어난 아이를 보는 순간 모든 고통은 사라진다’는 모성 신화의 세계에서 메리 셸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16세에 유부남이었던 퍼시 셸리와 사랑의 도피 생활을 하던 도중 임신하고 출산하고 아이를 잃었다. 아버지 고드윈은 메리 셸리가 세 번째 아이를 잃었을 때 ‘슬픔을 품격을 떨어뜨리는 여성들의 감성’이라고 하면서 슬픔을 비난했다.

남편 퍼시 셸리 역시 자기 관심사에 빠져 첫 아이를 잃은 아내를 돌보지 않았다. 모성애가 없으면 비난받지만 부성애의 부재는 비난 대상이 아니다. 프랑켄슈타인이 피조물을 만들어 놓고 외면을 해도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이유다. 괴물 같은 피조물의 형태가 당위성을 부여한다.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너희 남성들, 난 사생을 넘나들며 아이를 네 번이나 낳았는데 그건 여성이니까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피조물을 만들어 놓고 외면하는 이중성은 뭐지? 남성은 더 형이상학적인 일을 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그까짓 출산, 이라고 폄하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여성이라고 글을 못 쓰고 예술을 못 할 것 같아? 내가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을 봐 봐. 너희가 주장하는 모성 신화 아래에서 어머니의 부재로 불안한 존재가 되는 남성을 말이야. 괴물은 내가 만든 게 아니야. 바로 편협된 사고에 사로잡힌 너희들이 만든 거지.”

김민애 출판편집자
김민애 출판편집자

모성도 부성도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 둘이 없다고 해도 인간은 불행해지지 않는다. 바로 메리 셸리처럼 자신만의 ‘출산’을 하게 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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