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이반 루사첵 초대전 <아이들의 정원>

유럽 전통 계승한 ‘단색 동판화 연금술사’
독보적 스타일 담은 동판화작품 전시  
이달 31일까지, 정발산동 ‘갤러리 산수’

'동판화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천재화가 이반 루사첵.
'동판화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천재화가 이반 루사첵.

[고양신문] 같은 그림을 여러 장 찍어 낼 수 있는 목판화는, 조각칼만 있으면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나라에서 여전히 성행 중이다. 15세기 중엽부터 서양에서 시작된 동판화는 다르다. 동판을 뾰족한 바늘로 긁어 이미지를 만들고, 그 위에 잉크를 칠해 종이에 인쇄하는 작업은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아름답지만, 작업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동판화 전문 작가들은 많지 않다. 더욱이 19세기부터는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동판업 종사자들은 점차 사라지고, 일부 작가들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일산동구 정발산동에 자리한 ‘갤러리 산수(대표 김동연)’에서는 지난 7일부터 현대 유럽 동판화계에서 단색 동판화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천재 작가 이반 루사첵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벨라루스에서 태어난 그는 폴란드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화가이자 조각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드로잉과 동판화 7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동유럽의 전통적인 표현양식을 근간으로 하지만, 전위적이고 현대적인 시적 감수성이 곳곳에 배어 있다. 

로마의 초대 왕 로물루스를 표현한 작품 ‘Romulus’.
로마의 초대 왕 로물루스를 표현한 작품 ‘Romulus’.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표현한 남녀의 인체, 고대의 신전 회랑이나 계단, 고서가 가득한 서재, 별자리 속 동물들, 어린아이들, 해골 등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다. 온전한 형태도 있지만, 일부분만 확대하여 드러나거나, 시·공간을 초월한 은유와 상징, 기호로 표현된 대상들은 독창적이다. 그는 “과거의 역사와 동시대의 현상을 관통하는 냉철한 시선과 통찰력으로 존재의 생성과 소멸, 영욕적인 삶의 여정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추적자이자 관찰자”로 평가받고 있다. 오랫동안 공력을 들였을 작품들은 관람자들이 몰입하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7일, 방송인이자 정치평론가인 김홍국 박사의 사회로 진행된 오프닝 행사에서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박소은 장신대 교수가 축가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행사에는 고충환 미술평론가, 영화 <조폭 마누라>의 조진규 감독, 독립영화 제작자 남기웅 감독, 김연수 사진작가 등 다수의 관람객이 참석해 축하했다.  

김홍국 정치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된 오프닝 행사.
김홍국 정치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된 오프닝 행사.

이반 루사첵은 세계 각지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통해 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국제적인 예술경연 수상 경력으로 유럽 화단과 컬렉터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는 페인팅, 일러스트, 그래픽, 엑스리브리스(장서표) 등 재료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활동 중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약물 제제에 의한 부식작용을 이용하는 에칭과, 동판을 조각칼로 홈을 내고 거기에 잉크를 새겨 넣는 메조틴트(mezzotint) 기법으로 탄생한 흑백의 작품들이다. 

로마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로마의 초대 왕 로물루스를 표현한 ‘로물루스(Romulus)’, 토마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재해석한 ‘벨룸 옴니움 콘트라 옴네스(Bellum omnium contra omnes)’, 얼굴을 정면과 측면 두 부분으로 나누고 그 둘을 합쳐 젊은 여성을 완성한 ‘같은 순간, 2021년 10월 5일 현재(That same moment NOW 10. 05. 2021)’은 의미심장하다. 전시장 한쪽 면에는 ‘축(Axis)’ 시리즈 작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문명의 흔적을 추적하고, 역사 속에 위치한 삶의 축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이반 루사첵의 동판화 작품. 
이반 루사첵의 동판화 작품. 

4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이반 루사첵은 ‘우리 모두는 세상의 어린이’라는 의미로 전시 제목을 ‘아이들의 정원’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작가는 “우리가 삶의 정원에서 찾고자 하는 지식, 개념, 형상을 원과 사각형 안에 표현했다. 한국의 여러분들과 세상에 대한 이런 생각을 나누고 싶다. 정원의 개념을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갤러리 산수의 김동연 대표는 “이반은 자신만의 독보적인 스타일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면서 “아카데믹한 표현기법과 구성, 기술적으로 숙련된 장인의 섬세한 선으로 마무리한 텍스쳐(재질감)의 스펙트럼이 넓고 풍부하다. 작품의 완성도와 밀도에 있어서도 균형감각과 절제미가 돋보인다”고 소개했다. 흔히 보기 힘든 해외 작가들의 전시를 꾸준히 이어 오고 있는 김 대표는 이번 전시를 많은 이들이 보기를 권했다.

오프닝 행사에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김동연 갤러리 산수 대표. 
오프닝 행사에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김동연 갤러리 산수 대표. 

“다양한 판화 장르 중에서도 동판화는 노동강도가 심하고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매력적이지만, 복잡한 제작공정으로 인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분야죠. 서유럽은 물론 동판화의 메카인 동유럽에서조차도 작가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인데요, 이반은 대학에서 예술학부를 졸업한 후, 지금까지 줄곧 동판화 작업에 열정적으로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동판화의 저변을 확대하고, 한국 작가들의 시각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특히 동판화 작가들이 많이 관람했으면 좋겠습니다.”
 
전시는 31일까지 계속된다.

▮갤러리 산수(Gallery SANSU)
주소 :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3번길 28
문의 : 070-8202-4787 

작품 ‘That same moment NOW 10. 05. 2021’
작품 ‘That same moment NOW 10. 05. 2021’
작품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작품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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