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방학’

10월 12일(목) 8:10

사람들이 ‘정답’을 찾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접속자가 약 35만 명입니다. 이 게임의 결승전은 한 달밖에 남지 않아서 오늘 시합은 결승전을 미리 보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게임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어서 적어도 1번 이상 참여해보지 않은 사람이 드뭅니다. 그래서 흥행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게임대회라서 공정성에 대한 시비도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이 게임에 출전하는 학생들을 위해 국가는 거의 12년간 교육합니다. 예전에는 각자 교육비를 내었지만, 지금은 국가가 전액 지원합니다. 게임에 승리한 사람들은 ‘하늘(SKY)’을 날 수 있습니다. 한번 오르면 추락하지도 않아서 ‘이카루스의 날개’가 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늘(SKY’)은 더 푸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은 무조건 푸르다!’라는 명제를 사람들은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자리에 앉아 게임에 몰두합니다.

10월 12일(목) 10:10

전국의 고3 학생들이 모의고사(전국연합학력평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실제 수능시험은 11월에 있지만 모의고사 성적이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는 경우 다시 도전하지만 패자는 대부분 부활하지 않습니다. 

이 시험(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으로 이름은 바뀌었지만)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은 이제 부모가 되어 수많은 분노와 좌절, 그리고 고통을 잊은 채 자녀들에게 도전해서 성공할 것을 주문합니다. 국가가 운영하고 같은 조건에서 치루는 시험이라 가장 공정해 보이지만, 어차피 9등급으로 나누는 시험이라 ‘나’의 성취가 결과로 이어지기는 힘듭니다. 알고 있어도 정해진 시간에 풀기는 어려워서 빨리 풀기 기술은 필수적입니다. 

이 기술 습득에 필요한 비용은 아주 비싸서 부모의 경제력이 중요합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쓰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할 학생들을 뽑는 시험’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미래가 아닌 현재를 결정하는 시험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수능 시험의 룰이 변경될 거라는 안내가 있었습니다. 현재 중학교 2학년이 응시하게 되는 수능부터 적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변경될 내용을 분석하다가 이내 멈췄습니다. 대학 수학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문제 풀기의 숙련공을 선별한다는 본질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모두 다른 그들은 오늘도 키가 침대보다 크면 잘라서 죽이고 작으면 늘려 죽이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그 모습을 하루 종일 지켜본 저는 방송 담당 교사로서 마지막 시험 종이 송출되면 잃어버린 가을을 찾을 수 있도록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들려줄까 생각 중입니다. 

10월 12일(목) 14:00

송원석 문산고 교사
송원석 문산고 교사

마지막 과목이 시작하려고 합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틀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음악 때문에 종례라도 길어지면 그들의 행복한 하굣길이 지체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오늘, 가을은 교문 앞에 멈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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