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아파트 청소노동자, 현장을 듣다
산안법 개정, 휴게실 설치 의무
고양시 청소환경 아직 '열악'
노동복지나눔센터가 해법 찾나
[고양신문] “주차장 구석에 식사도 하고 쪽잠도 잘 수 있는 방이 있어요. 지하라서 여름에는 선선하지만, 문제는 겨울입니다. 마감이 안 된 콘크리트 벽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오거든요. 다행히 올 입동 전에 관리소장님, 노동복지나눔센터의 도움을 받아 난방기를 장만했습니다. 따뜻한 바람이나마 생긴 저희 상황은 그나마 좋은 편이에요. 다른 곳은 휴게공간 자체가 없어서 계단에서 박스 깔고 쉬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덕양구 주교동 벽산아파트에서 근무하는 청소노동자 염순복(70세)씨.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까지 타 업종 대비 적은 근무 시간이지만, 업무강도는 웬만한 생산직 노동자에 버금간다. 유리창부터 엘리베이터, 심지어는 계단 틈새까지 아파트의 모든 청결 유지는 청소노동자의 몫이다. 그와 동료들이 고된 오전 업무를 마치고 숨을 돌리는 지하 주차장 한켠에 자리한 2.5평짜리 휴게실. 작년만 해도 이곳에는 난방장치와 정수기가 없어 뜨거운 물을 큰 통에 미리 담아오거나 즉석에서 끓여 마셔야 했다.
이곳 아파트의 경우 타 공동주택에 비해 근무 환경이 비교적 양호한 편에 속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작년 발표한 ‘사업장 휴게시설 실태 및 지원방안 마련 연구’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청소원이 속한 취약직종의 휴게시설 169곳 중 50%가 휴게용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됐으며, 대다수가 물품 창고와 탈의실로 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휴게시설이 아닌 창고에서 쉬어가는 상황인 것. 만약 이마저도 여의찮다면 비상구·계단 등에서 휴식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이른바 ‘2019년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을 계기로 올해 8월부터 노동자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해당 개정안은 상시 근로자를 20인 이상 고용했거나 청소원·전화상담원 등 7개 직종 근로자를 2인 이상 고용한 사업장에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사업주는 냉방·조명 등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가이드’에 맞춰 공간을 조성해야 하며, 위반 시 최대 1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개정 후 약 1년이 지난 현재, 고양시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노동복지나눔센터와 함께 현장을 청취해 개선 방향을 제안한다.
산안법 개정… 실효성은 글쎄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개정안 시행 후 올해 1월 기준, 대학교·아파트 279개소 중 44.4%에 해당하는 124개소가 휴게시설 설치 의무를 위반했다. 뒤이어 올해 9월까지는 총 사업장 227개소에 2억9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 것으로 파악됐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위반 사례가 줄지 않고 지속 적발됨에 따라 해당 개정안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현장이 말하는 가장 큰 한계는 휴게시설 설치를 위한 ‘공간’ 부족이다. 특히 입주업체가 비교적 자주 바뀌는 상업목적의 상가와 달리, 주민들이 장기간 입주하는 거주목적의 아파트는 공실이 적어 공간확보가 더욱 어렵다. 아울러 휴게시설 설치를 강제하는 수단도 과태료밖에 없어 관리사무소·주민의 의지가 없다면 아파트 청소노동자 근무 환경 개선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고양현대아파트 안다경 관리소장은 “덕양구·일산신도시의 구축아파트 상당수가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염두하고 지어지지 않아, 이들이 쉴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이 없다”라며 “기존 유휴공간을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리모델링 비용이나 용도변경을 위한 주민 동의가 필요한데, 만약 공간 마련에 주민들이 무관심하다면 개선 없이 과태료를 납부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고양현대아파트처럼 주민들이 개선 의지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 휴게공간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정안이 건물유형별로 사정에 맞는 휴게공간 설치 규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 또한 한계로 지적된다. 박소정 노동복지나눔센터 사무국장은 “상가·공공기관·아파트는 확보할 수 있는 공간과 노동자 근무 환경 등이 각기 다르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차이를 반영하지 않고 단순 ‘청소원’으로 묶어 규정을 마련하는 바람에 건물유형별 딱 맞는 ‘맞춤형 공간’ 조성이 어렵다”라며 산업안전보건법의 테두리 안에서 아파트 청소노동자를 위한 맞춤형 개선이 어렵다면, 공동주택관리법에 청소노동자 처우개선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지자체 손 안 닿는 휴게실 개선
'노동복지나눔센터'가 대안될까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고양시와 경기도는 ‘공동주택 노동자 휴게실 개선사업’ 등의 지원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지원자격·평가요소 등이 까다롭고 경쟁률이 높아 선정되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대체로 많다. 앞서 언급된 고양현대아파트 또한 청소노동자 휴게실 개선을 위해 시 지원사업을 신청했으나 이미 경비노동자 휴게시설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안다경 관리소장은 “경비노동자의 경우 근무지인 관리실에서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으나 청소노동자는 근무 현장이 아파트 단지 전체이다 보니 휴게공간 설치지원이 절실했다. 하지만 이번 시 사업에서 이중혜택 등을 이유로 정작 시급한 청소노동자 휴게공간 설치지원은 탈락했다”라며 “운 좋게도 노동복지나눔센터의 도움을 받아 관리사무소 지하에 휴게소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오영란 청소반장은 “전기장판, 도배 등 이번 리모델링으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휴게실을 갖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라며 미소를 보였다.
리모델링 도움을 받은 고양현대아파트와 달리 비품지원을 받은 벽산아파트 휴게실에는 냉난방 겸용 에어컨 등이 새로 들어왔다. 김경원 벽산아파트 관리소장은 “휴게소가 콘크리트 외벽이 드러난 지하 주차장에 조성되어 있어 도배 등 개선할 점이 많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기본적인 휴식에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받아 그나마 휴게공간의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워낙 주민분들도 관리사무소 직원·아파트 노동자분들을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편이기에 앞으로의 개선 방향이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올해로 10돌을 맞은 노동복지나눔센터는 ‘여성청소노동자 휴게공간 개선 및 정서지원사업’을 통해 여성 청소노동자의 근로환경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 남성 노동자의 68%에 불과한 임금을 받는 여성 청소노동자에 집중해 지자체가 미처 챙기지 못한 보다 많은 사업장의 휴게시설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총 1차·2차·3차로 진행되는 해당 사업은 크게 △비품지원 △리모델링 △정서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품은 에어컨, 공기청정기, 정수기 등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을 충족하기 위한 기본 물품과 각 사업장의 필요를 충족하는 부가 물품을 지원한다. 리모델링의 경우 전기온수기, 싱크대, 계단 난간 등 인프라를 개선하고, 휴게실 내부의 장판과 도배·새시 등도 함께 개선한다. 그뿐만 아니라 천연화장품·카드 지갑 만들기 등 수공예 정서 지원 사업도 함께한다.
노동복지나눔센터 박소정 사무국장은 “시범적인 성격이 강한 작년 1차 사업을 시작으로 올해 2차 사업을 통해 적극적으로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을 정비 중이다. 작년에는 신원마을4단지·삼송16단지 등 171명이 근무하는 총 28곳의 사업장의 근로환경을 개선했고, 올해는 고양현대아파트·벽산아파트 등 24곳에 대한 지원을 마쳤다”라며 “마지막 단계인 내년 3차 사업에서는 기존 지원사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자체적인 연구와 지역 공론장 형성 등을 통해 사업이 끝나더라도 ‘지속 가능한’ 청소노동자 근로환경 개선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노동복지나눔센터에서는 내년 사업에 참여할 여성 청소노동자를 고용한 민간업체를 찾고 있다. 내년 1월부터 시작하는 이번 공모는 사업비 소진 시까지 진행되며, 2인 이상 업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공모사업에 대한 기타 사항은 전화(031-901-1760)로 문의하면 된다.
후원 계좌 : 509001-01-519599 국민은행
(예금주: 사단법인 노동복지나눔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