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의용소방대 인터뷰

(왼쪽부터) 고양 의용소방대의 임채선 남성연합회장, 이경옥 여성연합회장, 이순숙 돌봄대장.
(왼쪽부터) 고양 의용소방대의 임채선 남성연합회장, 이경옥 여성연합회장, 이순숙 돌봄대장.

[고양신문] 백 년 넘게 버틴 큰 나무를 가리켜 ‘고목’ 혹은 ‘거목’이라 한다. '고목'과 '거목' 모두 단어의 발음도 유사하고 느낌도 비슷하지만, 중요한 뜻의 차이가 있다. ‘고목’은 이미 죽어서 자리만 지키는 나무를, ‘거목’은 살아 숨 쉬며 세월을 양분삼아 담백한 생명력을 내뿜는 나무를 뜻한다. 올해로 설립된지 백 년째 임에도 쉼 없이 활동하는 고양 의용소방대는 그야말로 ‘거목’이다. 생기고 사라지고를 반복하는 수많은 '고목' 같은 봉사단체 사이에서 지역과 이웃에 깊게 뿌리내린 소방대를 보고 있자면 추운 날씨 속 홀로 청록빛을 내뿜는 ‘세한송백’(歲寒松柏)이라는 예찬이 절로 나온다.

고양 의용소방대는 1932년 고양시 일산리에 ‘소방조’로 처음 창설된 이후 지역의 안전과 봉사를 책임지는 ‘지킴이’ 역할을 해왔다. 한 곳에 불과했던 소방조는 고양군이 고양시가 되고 마을 인구가 늘어나자, 관산을 시작으로 능곡·삼송·고양·화전·원당 등 총 6개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용소방대’로 발전했다. 이후 의용소방대 업무가 세분되며 여성소방대, 돌봄소방대 등이 출범해 오늘날 덕양구에는총 229명의 대원이 지역을 위해 헌신 중이다.

“지난 백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양 의용소방대가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부심’입니다. 고양 사람들의 상부상조 정신이 질서·위계를 갖춘 소방대라는 조직 속에서 의용봉공 정신을 만나 봉사로서 꽃 피운거죠. 전통을 계승하며 마을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대원들 모두 상당합니다.”

100돌 맞은 의용소방대
어떻게·
무엇을 하고있나?
지난 세기에 활동한 의용소방대가 정규 소방대의 보조를 주로 담당했다면, 오늘날 의용소방대는 ‘소방’을 넘어 ‘지역 주민 봉사’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보조업무가 방역으로 확장됐고, 더 나아가서는 복지의 영역까지 확산하면서 최근에는 지역 곳곳의 일을 모두 도맡아 한다. 그렇다 보니 의용소방대는 고양시 복지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력 부족과 돌봄복지에 대한 요구 해결에도 적극 기여하고 있다.

현장에서 대화 중인 임채선 고양 의용소방대 남성연합회장(왼쪽)과 정요안 고양소방서장(오른쪽). [사진제공=고양소방서]
현장에서 대화 중인 임채선 고양 의용소방대 남성연합회장(왼쪽)과 정요안 고양소방서장(오른쪽). [사진제공=고양소방서]

임채선 고양의용소방대 남성연합회장은 “현재 우리 소방대가 맡은 일은 크게 △소방·안전교육 △돌봄복지 △지역행사지원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옛날과 달리 요즘에는 화재 예방이 잘 되고 있어서, 소방보다는 지역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라며 “의용소방대로서의 정체성에 걸맞게 CPR·소화기 사용법 교육뿐 아니라 복지관에서 하는 돌봄복지 프로그램에 지원을 가거나 지역행사 준비를 돕는 경우도 많다”라고 밝혔다.

요즘 의용소방대가 새로 시작하는 활동은 대부분 ‘돌봄복지’다. 고양시 노인인구가 5년 전 12만6572명에 비해 16만8125명으로 32.8% 증가함에 따라, 기존 한정된 복지관 인력만으로는 노령인구 복지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기가 어려워져 대원들이 그 공백을 메워주는 상황이다. 고양 의용소방대는 올해 10월 일산·덕양 지역을 모두 관할하는 ‘어르신 돌봄 여성의용소방대’를 창설해 복지 분야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순숙 고양의용소방대 돌봄대장은 “행신복지관의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장애 가구 생활지도 등을 일주일에 한 번씩 돕고 있고, 어르신분들의 건강 상태를 직접 방문해 체크하는 지축복지관의  모니터링도 우리 돌봄대에서 함께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청소·리모델링 등 주민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면 남성·여성·돌봄대대의 구분 없이 대원들은 함께 뛴다.

현업 때문에 시간 쪼개 활동
그러나 시 
지원은 ‘태부족
의용소방대가 봉사 형태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보니, 대원 대다수가 본업에 종사하면서 남는 시간에 활동한다. 대부분의 활동은 복지관·소방서 등 공공기관의 부탁을 받아 나가기에 주로 주말보다는 평일 낮 시간대에 이루어진다. 이렇다 보니 직장이 있는 대원들의 경우 휴가나 월차를 내서 봉사에 참여하는 경우가 잦다. 

이경옥 여성연합회장은 “여성대와 돌봄대를 합친 총 70명 대원 중 45명이 직장을 다니는 여성대원들이다. 고정적 직장없이 자유롭게 봉사가 가능한 대원은 총 15명이고, 아르바이트하면서 낮 활동이 일부 가능한 대원이 10명 정도”라고 설명했다.

소방보조 활동을 하고 있는 고양 의용소방대원들. [사진제공=고양 의용소방대]
소방보조 활동을 하고 있는 고양 의용소방대원들. [사진제공=고양 의용소방대]

이처럼 자부심과 자발성에 기반해 운영되는 의용소방대이지만,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예산이다. 차량·세탁·장비 등 수요는 많은데 책정되는 예산이 지나치게 적어, 대원들은 사비를 들여서 봉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임채선 남성연합회장은 “올해 고양지역 의용소방대에 할당된 예산이 작년 30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300만원을 일산소방서와 나누어 쓰는 상황이니 우리 고양소방서는 150만원만 사용할 수 있는 셈”이라며 “CPR 교육 등 외부 교육을 나갈 때 함께 초빙하는 전문 강사들의 강사료만 해도 150만원이 훌쩍 넘는다. 장비나 공간 등 개선돼야 할 것들은 많은데, 봉사 프로그램 진행하기에도 예산이 부족하니 차량 유류비도 대원들이 모두 자부담해 활동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시민 격려와 포옹 한번,
보람 지속성의 원동력
제도적인 어려움이 있기는 하나, 의용소방대원들을 움직이는 것은 예산이 아닌 ‘보람’이다. 이순숙 돌봄대장은 “행신4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장애 가구를 방문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돌봄대가 담당하는 아이는 20살 지적 장애인인데 정리하는 법, 밥 짓는 법 등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면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원래 담당하던 활동지원사가 중간에 포기한 아이를 우리가 맡으며 인연이 시작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하나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라며 미소를 보였다.

또한 “도시락 등을 들고 독거노인분들을 찾아뵐 때마다 항상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시며 ‘자식보다 낫다는 말’과 함께 박카스나 사탕 등 간식을 챙겨주신다”라며 “기부금 및 후원, 청렴 유지가 엄격하게 유지되는 의용소방대 특성상 간식은 받지 않고 있지만 주름진 손으로 토닥여 주시며 애정을 드러내시는 어르신 분들을 뵐 때마다 체력적인 고통이 금방 사라지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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