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개그콘서트>와 넷플릭스 <코미디로얄>

[고양신문] 최근 2개의 코미디 프로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KBS에서 3년 만에 부활한 <개그콘서트>이고, 다른 하나는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6부작 시리즈 <코미디로얄>이다. 코미디 장르를 열렬히 애정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획이 시작되면 궁금해서 챙겨보곤 한다.  

먼저 <개콘>부터. 기억의 타임머신을 되감아보면, 전세계가 밀레니엄버그 어쩌구 하며 호들갑을 떨던 시절인 1999년 가을에 첫선을 보인 <개콘>은 등장과 함께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 당시만 해도 <유머1번지> 같은 꽁트 코미디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객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공개코미디쇼로 트렌드 자체를 전환시킨 장본인이 바로 <개콘>이었다. <개콘>의 인기가 상종가를 달리자 SBS의 <웃찾사> 등 방송사마다 비슷한 형식의 공개코미디(등)를 기획해 맞불을 놓았지만, <개콘>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인기 코너를 만들어내며 원조의 아우라를 오랫동안 지켜냈다. 

하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콘텐츠 소비패턴의 변화에 TV코미디프로가 직격탄을 맞았다. 웃음은 말 그대로 타이밍의 산물인데, 유튜브에 실시간으로 어마어마하게 올라오는 온갖 유머 콘텐츠들의 공세 앞에 일주일에 한번 전파를 타는 TV프로그램은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별별 처방을 다 써봤지만, 결국 2020년 <개콘>마저 종영됐다.

3년만에 부활한 2023 '개그콘서트' [KBS 화면 캡처]
3년만에 부활한 2023 '개그콘서트' [KBS 화면 캡처]

그랬던 <개콘>이 3년 만에 다시 부활한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레는 맘으로 상자를 열어봤는데… 봉숭아학당은 아직도 폐교를 안 했고, 흘러간 유머 코드를 선수만 바꿔 우려먹는 느낌도 들었다. 몇몇 신인들의 분전이 인상적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뭘 보여주려고 명예의 전당에서 쉬고 있던 퇴역 프로그램을 다시 시청률의 전쟁터로 불러올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일요일 밤의 소중한 휴식시간을 2023버전 <개콘>에게 맡기기엔 아무래도 가심비 부족. <개콘>과 함께 했던 흘러간 시간들의 의리를 생각하면 조금 미안하지만, 내 맘속에선 이미 조기 종영이다. 

이번엔 <코미디로얄>이다. 넷플릭스가 밝힌 <코미디로얄>의 기획아이템은 ‘K-코미디를 대표하는 20인이 넷플릭스 단독 쇼 런칭 기회를 두고 나이, 경력, 계급장 떼고 붙은 웃음 배틀 예능’이다. 안 보고는 못 배길 만큼 유혹적인 홍보문구다. 넷플릭스라는 월드 넘버원 식당의 주방에서 조리된, K-코미디 빌드업 코미디물은 어떤 맛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개 첫날 11시에 1화 시청을 시작해 6편을 내리 정주행했다. 

그렇다고 <코미디로얄>이 온전히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새로움과 진부함이 뒤섞인 잡탕밥에 가깝다고나 할까. 라인업만 봐도 현존하는 시조새 격인 이경규를 비롯해 문세윤, 황제성, 이용진 등 공개코미디의 전성기를 누렸던 중견들과 주머니 속 송곳처럼 언제든 치고 나올 타이밍을 엿보는 무명 개그맨들이 골고루 포진했다. 

구성은 오디션 경쟁 예능의 정석을 그대로 따랐다. 경쟁을 위해 팀을 나누고, 첫 라운드에서는 팀이 힘을 합쳐 만든 결과물을 선보이고, 두 번째 라운드에서는 상대팀을 공격하고(이 과정에서 개개인은 최대한 자신의 장점을 어필해야 하고),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팀이고 뭐고 필요 없이 마지막 생존경쟁을 펼치는 구조다. 갖다 붙이자면, 조직 중심에서 개인의 각자도생으로 전이하는 자본주의 경쟁사회의 축약도와 고스란히 일치한다고나 할까. 효능이 검증된 구조가 일정 수위의 직설과 조롱이 용인되는 ‘코미디’라는 장르와 만났으니, 꽤나 재미난 상황들을 곳곳에서 만들어낸다.  

가장 신기했던 건 유튜브를 기반으로 인지도를 얻었다는 신인들의 등장이었다. 유튜브 콘텐츠를 즐겨 보지 않는 기자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이 도대체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는 멘트와 액션을 연이어 펼치는데, 객석과 출연진들 사이에서는 몸짓 하나하나에 웃음이 빵빵 터진다. 하긴, 유행코드의 괴리감은 <개콘> 전성기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매주 <개콘>을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세대들이 유행어가 터질 타이밍에 딱딱 맞춰 호응하는 모습들을 당시의 ‘어르신’들은 무슨 외계인종 보듯 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내가 그 어르신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살짝 서글프긴 하다.   

어쨌든 오래간만에 관심을 갖고 본 <개콘>과 <코미디로얄>은 코미디 장르에서는 과거의 의리나 추억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노래나 드라마나 영화는 흘러간 옛날 콘텐츠가 새로운 감성과 결합할 가능성이 열려있지만, 코미디는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먹히는 감성과 코드로 웃음의 촉수를 건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웃기지만, 가장 살벌한 장르에서 승부를 겨누는 코미디언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코미디로얄> 두 번째 시리즈를 기다려보련다. 요즘 세대 감성을 따라가려고 조바심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어르신 감성을 살짝 물려두고 최신 감성을 곁눈질하는 재미도 생각보다 괜찮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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