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102

[사진제공=김경윤 인문학자]
[사진제공=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잘 지내시나요? 여기는 고양이의 섬 가파도입니다. 제주도하면 돌, 바람, 여자가 많은 곳이라던데, 가파도는 거기에 고양이를 더해야 할 만큼 고양이들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300여 마리 있다고 들었는데, 내려와 물어보니 200여 마리가 있다고 하네요. 길냥이들의 수명이 짧은 것도 원인이겠지만,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길냥이들을 중성화시키면서 번식이 줄어든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려와 원주민의 도움으로 금세 집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고가 낮아 매번 머리를 찧고, 세찬 바람이 바람구멍으로 숭숭 들이쳐와서 집안의 온기를 앗아가지만, 그럭저럭 삼시 세끼 해 먹으며 피곤한 몸을 눕힐 수 있는 곳을 얻었으니 천운이라 할 수 있겠네요. 가끔 일하러 입도한 일꾼들이 묵었던 곳이라 그런지 세간살이가 대부분 다 있습니다. 저는 그저 몸만 들어와도 살 수 있는 곳이라 살림살이 마련하는 비용이 대폭 줄어든 것도 다행입니다. 

집 앞에는 작은 마당이 있고 돌담 너머에 텃밭으로 가꿀만한 땅도 있으니 겨우내 황폐한 땅을 정리하면 봄철에는 꽃이나 작물도 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당에는 길냥이들을 위한 급식소가 있어, 출퇴근하며 길냥이들이 먹을 밥과 물을 줍니다. 아직 길냥이들이 나를 경계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를 반기겠지요. 고양이들과 친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직장은 가파도 매표소로 집에서 중앙로를 따라 직선으로 걸으며 15분 정도 걸리고, 해안가를 돌아 걸으면 30분 정도 걸리지만 나는 웬만하면 해안가 산책로를 선택합니다. 종일 앉아서 근무하는 직업이다보니 운동도 할 겸 일출과 일몰도 볼 겸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출퇴근을 합니다. 가파도는 봄철 청보리 축제로 유명하지만, 나는 청보리 축제보다 일출과 일몰을 추천합니다. 섬 너머에 송악산과 산방산이 또렷이 보이고, 그 너머로 한라산이 편안하게 누워있습니다. 

12월부터 정식 출근을 했으니까 이제 고작 20여 일이 지났네요. 그중에 풍랑주의보로 결항하여 공친 날이 10여 일이 되니 반은 일하고 반은 강제로 쉬는 희한한 직업이지만, 하늘을 원망할 수는 없으니 자연의 순응하는 마음으로 편히 지내고 있습니다.

쉬는 날에는 집안 정리와 산책과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데요. 처음으로 가파도로 주소지를 옮기고 주변 도서관을 물어 송악도서관을 찾아 회원이 되었습니다. 벌써 5권씩 두 번이나 대출했는데, 그중에 고양이와 관련된 책이 대부분이라 사서 선생님이 “고양이를 꽤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묻더군요. 저는 “좋아해 보려구요.”라고 답했답니다. 책을 읽는다고 고양이랑 친해지지 않겠지만 어색함은 덜하겠지요.

이곳에서 지내면 사람보다 고양이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나랑 가장 자주 만나는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면 그도 예의가 아닐까 싶어 당분간은 고양이 관련 책에 몰두해 보려고요. 고양이 명화, 만화, 소설, 에세이, 역사, 철학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고 있습니다. 읽다 보니 제가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고양이만 그렇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어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고양이들을 자주 관찰하다 보니, 그들의 모든 것이 경이롭습니다. 인간의 시선이 아니라 고양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인간 곁에 머물지만 인간에게 쉽게 곁을 주지 않는 이 야생종의 세계가 자못 궁금해집니다. 문명 속에 살지만 문명에 안주하지 않고 자연으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고양이의 생존능력을 배우고 싶습니다. “처음 보는 고양이들과 친해지는 법을 알고 있다면 언제나 행운이 따를 것이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저에게도 행운이 따를까요?

김경윤 인문학자
김경윤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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