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모임 중독자의 고백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고양신문] 작년부터 코바늘뜨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소 느슨한 일상에 소소한 재미를 주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다 손가락, 팔목, 팔꿈치, 어깨 관절에 통증이 찾아왔다. 정형외과, 한의원, 통증의학과 등 병원 순례가 이어졌다. 오십견은 아플 만큼 아파야 낫는다는 말을 증명하듯 지금까지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아프다면서 왜 뜨개질을 계속하는 거예요?”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그다음엔 내가 만든 뜨개가 주는 기쁨이었다. 손에 익으니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현재의 근심과 걱정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무작정 길어지는 무의미한 대화에 정신과 마음을 쏟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이제 도안도 볼 줄 알고, 동영상을 보면서 혼자서 뜰 줄도 알게 되었는데, 통증이 나의 즐거움을 붙잡는다.

1789년 10월 5일, 베르사유에서는 여성들의 행진으로 봉기가 시작되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식량의 양과 높은 가격이 노동 계급 여성들을 왕실 거주지로 향하게 만들었다. 이 혁명 여전사들은 파리 혁명군 사이에서 높이 평가를 받았으나 권위주의적인 혁명 정부가 이들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1793년 공포 정치가 시작되자, 혁명 여전사들은 어떤 정치적 집회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 참여를 금지당한 여자들은 혁명 광장의 단두대 처형식에서 굳은 얼굴로 뜨개질만 할 뿐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 이 혁명 여전사가 등장한다. 생탕투안 거리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드파르주 부부는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이다. 드파르주 씨는 바스티유의 감옥을 함락시킨 프랑스 혁명의 행동형 인간이고, 드파르주 부인은 조용히 뜨개질을 하는 혁명의 계획형 인물이다. 드파르주 부인 외에도 많은 여성들이 뜨개질을 했다. ‘별 쓸모도 없는 것을 떴지만 기계적인 작업을 하면 먹고 마시는 일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들은 턱과 소화기관 대신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손가락을 가만히 두었다면 굶주림에 쪼그라드는 위의 고통은 더 크게 느껴졌다.’ 

이들에게 뜨개질은 현재의 고통을 잊는 단순 반복의 움직임이었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다림이었다. 혁명 세력에서 배제된 뒤에는 단두대 앞에서 사형의 순간을 직시하는 수단이었다. 드파르주 부인이 혁명군에 가담한 것은 당시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귀족에게 몰살당한 가족사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녀는 뜨개를 비밀 장부로 활용하기도 하고, 남편과 다른 방식으로 혁명군에게 비밀스럽게 지령을 내리기도 한다. 그녀는 혁명군의 승리와 더불어 개인사의 복수를 뜨개질로 한 올 한 올 엮고 있는 셈이었다.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를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영국 작가가 영국의 관점에서 쓴 혁명 소설이다. 1850년대 프랑스에선 나폴레옹 3세가 다시 황제가 되었다. 프랑스인들은 나폴레옹의 영광을 조카에게서 재현하려는 군중 심리가 있었다. 이에 영국인들은 나폴레옹 가문의 재기에 공포심을 느꼈다. 1859년 찰스 디킨스가 『두 도시 이야기』를 연재할 때의 상황이었다. 

산업 혁명으로 부흥기를 누리던 영국에서도 민중 봉기의 바람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귀족만을 배 불리려는 프랑스의 지배층도 문제였지만, 자본가의 배를 불리려 했던 영국의 산업 지배층도 민중의 고혈을 짜기는 마찬가지였다. 1837년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이 문제를 가감없이 드러낸 찰스 디킨스는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프랑스 귀족과 영국 귀족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원인은 부패한 프랑스 귀족에 있다는 것을 밝히고, 복수심에 불탄 민중의 봉기는 잔인하게 묘사했으며, 사랑을 넘어선 성인 정신으로 영국 청년은 프랑스 부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고 마무리지었다. 

김민애 출판편집자
김민애 출판편집자

프랑스인들에게 기요틴에서 목이 잘리는 프랑스 귀족은 ‘죄와 벌’의 귀결이지만, 독자들에게 기요틴에서 목이 잘리는 프랑스인(사실은 영국인)은 ‘희생과 사랑’의 귀결이다. 시대사와 개인사로 점철된 드파르주 부인을 잔인한 여성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렇기에 독자로서는 드파르주 부인의 뜨개질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 부디 저세상에서는 피곤한 두 손을 가만히 무릎에 두고, 흔들의자에 앉아 빵과 커피를 즐기고 있기를.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