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103

[고양신문] 가파도에 내려온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한 달 중 일한 날이 절반, 공친 날이 절반입니다. 당연히 월급도 절반이지요. 내려와서 기상청 앱을 깔고, 아침마다 확인합니다. 1월은 그나마 날씨가 좋아 아직까진 공친 날이 많지 않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지요. 하지만 낙관할 일도 아닙니다. 일기는 예상 밖이라 언제 날씨가 급변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나만 사정이 안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가파도에 살고 있는 주민 모두 하늘과 바다에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가파도 최대 수입원은 물고기 잡는 일, 청보리 농사입니다. 그리고 가파도 자체 재정사업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자전거 대여가 있지요. 코로나 이후 해외로 나가지 못해 급증한 관광객을 맞기 위한 음식점 등 편의시설도 생겼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늘과 땅이 도와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뱃길이 끊기면 가파도 전체가 무인도처럼 조용합니다. 오도가도 못하는 주민들은 집안에 들어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가파도 전체가 천지인 공동체입니다.

사람만 안 좋은 것도 아닙니다. 가파도는 파도를 타고 들어온 해양쓰레기의 정박지입니다. 주민들이 아무리 치우고 치워도 다시 해안가를 뒤덮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관광객들은 해안이 지저분하다며 불평을 하지만, 자신이 버리지도 않은 쓰레기를 위험을 감수하고 수거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보질 못합니다. 바다의 사정도 안 좋아졌습니다. 몇 해 전만 해도 해양생물들이 넘쳐났다는데, 미역이니 톳 등은 이제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해녀들의 삶도 팍팍합니다. 해양생물이 줄어드니 점점 어려운 조건에서 물질을 해야합니다.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말했지만, 진정으로 불인(不仁)한 것은 인간일지 모릅니다. 자신이 힘들여 생산한 것이 아니라 돈 주면 쉽고 사서 쓰다가 버릴 수 있는 환경파괴적 삶의 조건이 바로 자본주의적 문명입니다. 쉽게 얻을 수 있으니 쉽게 버리게 됩니다. 택배로 배달되는 대부분의 상품도 상품보다는 상품포장재가 부피도 크고 무게도 많이 차지합니다. 결국은 상품도 포장재도 모두 쓰레기가 됩니다. 이렇게 쉽게 구입하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삶이 기본이 되니, 사람도 같은 대접을 받기 십상입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집니다. 쉽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합니다. 인간관계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아, 우리가 우리뿐만 아니라 세상을 망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 인간과 동물, 자연과 문명은 모두 운명공동체입니다. 하나만 망가져도 다 망가집니다. 하나만 아파도 모두가 아픕니다. 하나만 망해도 다 망합니다. 문명만 교체될 수 있을 뿐 다른 것들은 교체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고도의 문명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 모두는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가파도에 고작 한 달 내려와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송구하지만, 삶이 단순해지니 셈법도 간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단순하고 간단해지니 큰 것들이 보입니다. 가파도가 바로 내 철학 선생입니다.

올 겨울 갑작스런 추위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거리에서 얼어 죽었습니다. 동네 길냥이 돌보는 사람이 그 고양이를 담요에 싣고 가서 길고양이 무덤에 묻어주었습니다. 무덤에 묻히지 못한 고양이들은 그대로 방치되거나, 쓰레기 봉투에 수거되어 버려집니다. 불용성 쓰레기로 규정되어 재활용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불멸을 꿈꾸지만, 불멸의 꿈은 필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결국 쓰레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 생명이 남아있을 때, 생명을 더 살리고, 쓰레기를 덜 만들어야겠습니다. 추운 겨울, 주변을 돌아보시고 생명을 잘 보살피는 삶을 사시길.
 

김경윤 인문학자
김경윤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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