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구 시인 『갯마을 사람들』
지난 4권 시집에서 고른 선집
도초섬에 대한 질긴 그리움    

[고양신문] 박정구 시인이 시선집 『갯마을 사람들』(시선사 刊)을 펴냈다. 박 시인은 1995년  『문학과 의식』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므로 등단 30년 만에 내는 첫 번째 시선집이다. 이번 시선집은 그동안 박 시인이 펴냈던 『떠도는 섬』, 『섬 같은 산이 되어』, 『아내의 섬』, 『오늘은 제가 그리움을 빌려야겠습니다』 등 4권의 각 시집에서 고른 12편과 신작시 10여 편을 묶어 낸 시집이다. 

박정구 시인은 목포 북항에서 뱃길로 54.5㎞ 지점에 있는 ‘도초’라는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전남 신안에 속해있는 넓은 갯벌을 가진 이 섬은 시인에게 있어 ‘온 세상’과 같은 의미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유년시절 섬에서 겪게 된 모든 경험은 시인의 정서적 원형을 형성케 했다. 박 시인은 “섬에서 태어나 유년을 온통 섬에서 보냈던 탓일까. 아님, 내 어머니나 아버지의 혼이 담긴 고향 때문일까. 섬에 갇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잠시 마실 나간 것처럼 외출 하지만 결국은 섬 안이었다”고 고백했다. 
 
“돌아보면 내 시의 근간은 섬이었다”고 하는 박정구 시인의 말은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다. 이번에 펴낸 시선집 역시 도처에서 섬 내음이 물씬 풍기고 섬 풍경이 어른거린다. 시집에는 풍어제를 지내는 갯마을 사람들의 모습도 있고, 만장을 꿈꾸며 떠나는 배와 모듬발로 서서 배를 기다리는 아낙의 모습도 있으며, 흰 이빨을 드러내며 몰려온 파도가 토해내는 갯벌도 있다. 

(사)고양예총 회장과 원당신협 이사장,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지낸 박정구 시인이 등단 30년 만에 첫 시선집 『갯마을 사람들』(시선사 刊)을 펴냈다.
(사)고양예총 회장과 원당신협 이사장,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지낸 박정구 시인이 등단 30년 만에 첫 시선집 『갯마을 사람들』(시선사 刊)을 펴냈다.

박 시인의 섬에 대한 깊은 애정은 ‘거란이나 몽고, 혹은 왜적이 침범했을 때 / 하의, 장산, 비금, 도초 / 이런 섬들은 머리를 맞대고 / 목숨으로 수절하여 혈을 이어왔음을(시 ’갯마을’)이라는 시구를 낳는다. 심지어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까지 섬에 대한 시인의 애정이 닿아있다. ‘왼 종일 등대 위로 갈매기가 서성이는 / 저 섬을, 아무도 살지 않는 섬이라 말할 수 있을까(시 ‘무인도’)라는 시구도 낳는다.  

이처럼 섬과 갯마을이 주는 풍광과 정서가 이번 시선집을 이루는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남동생, 딸 등 가족과 시인과의 관계성에 드러나는 감성적 무늬를 시집 곳곳에 그려 넣었다. 이렇게 제각각 다른 ‘감성적 무늬’를 그냥 그리움이라고 통칭하기에는 부족하다.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떠올릴 때 시인이 처한 시공간이 가지는 고유성 때문이다. 

가령 이렇다. 아내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문득 고향과 아버지는 소환된다. 아내가 준 밥상이 사실은 도초에서 보낸 일반미였고, ‘애비 박영재 보냄’이라는 서툰 글씨체가 눈앞에 어른거려 밥을 넘기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목이 메이는 것이다. 

딸이 결혼하고 막 떠난 빈방에서는 딸과 나눈 추억들이 한꺼번에 덤벼온다. 책, 연필, 스탠드, 화장대, 벽에 걸린 옛날 가족사진, 심지어 피아노 위에 놓여있는 베토벤의 ‘운명’ 악보까지 모두가 그대로이지만 딸아이가 있었던 공간은 비어있다. 그 빈 공간만큼 결핍을 시인은 그리움으로 채운다. 결국 시인은 ‘오늘은 제가 그리움을 빌려야겠습니다’라는 시어를 토해낸다. 

이제는 섬에서 멀리 떠나온 박정구 시인에게 이 세상은 어차피 결핍의 아수라장일지도 모른다. 박 시인은 그 결핍을 좀 더 섬세하게 느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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