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렌비팜, 이상미 작가 『우리를 기다려주세요』 출간

느린학습자를 바르게 알게 돕는 책 『우리를 기다려주세요』를 펴낸 이상미 동화작가.
느린학습자를 바르게 알게 돕는 책 『우리를 기다려주세요』를 펴낸 이상미 동화작가.

'내가 정말 힘든 건 아무 보람도 느끼지 못하고 무시당하거나 내가 쓸모없이 느껴질 때야. 나도 할 수 있는데 왜 내 맘을 몰라줄까.'
-『우리를 기다려주세요』 중에서

[고양신문] 다양한 공동체활동의 현장인 일산서구 대화동 뜨렌비팜(대표 정현석)이 의미있는 책을 펴냈다. 『우리를 기다려주세요』는 ‘느린학습자’로 불리는 경계선지능인을 제대로 알린다는 취지에서 제작한 책이다. 집필은 동화작가 이상미씨가 맡았다. 뜨렌비팜에서 느린학습자와 하는 공동체 활동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느린학습자들을 이해시키려는 목적으로 책을 만들었는데 전국에서 보내달라는 요청이 오고 있다. 출판사 제의로 단행본으로도 나온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 책은 얼굴없는 청년들이 그려진 표지그림이 특이하다. 이상미 작가는 “사회에서 존재감이 없어서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찾다가 얼굴없는 사람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느린 아이, 답답한 아이, 잘하는 게 없는 아이, 그렇다고 장애인도 아닌 아이, 그래서 느린학습자들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한 ‘끼인 존재’다. 설명을 듣고 보니 눈코입 없는 얼굴의 의미가 크게 와닿았다. 

‘느린학습자’는 지적장애(지능지수 69이하)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평균 지능지수가 70~84 사이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국내인구의 약 13.6%(학생 인구 중 약 80만명, 청년 인구 중 약 90만명)가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느린학습자들은 평균보다 낮은 인지능력으로 학습과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서울시에서는 2020년 「경계선 지능인(느린 학습자) 평생교육 지원 조례」가 제정된 이후 고양시를 포함한 50여 개 자치단체에서 관련 조례가 제정됐지만 본격적인 지원사업이나 제도적 지원방안은 없어 느린학습자 청년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 현실이다. 

뜨렌비팜에서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
뜨렌비팜에서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

뜨렌비팜은 느린학습자들의 자립을 꿈꾸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현석 대표는 집밖의 아이들, 경계선지능 아이들의 자립을 꿈꾸며 열대농장을 세웠다. 아이들이 농업을 선택할 때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으면서 외부에서 관심갖는 품종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열대작물을 선택했다. 고양시의 다른 농민들이 하지 않는 특색있는 작물인 열대작물과 전 국민이 선호하는 커피 농장을 하게 된 배경이다. 열대작물을 재배하다보니 이주여성과 공정무역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이주 외국인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네팔 청년공동체와 교류도 하게 됐다. 

대화동에 살면서 주말농장을 해보고 싶어 뜨렌비팜을 알게 됐다는 이상미 작가는 2022년에는 이주자들의 밭 옆에서 함께 농사지으며 『타오씨와 뜨렌비팜』을, 2023년에는 경계선지능인들의 밭 옆에서 농사를 지으며 『우리를 기다려주세요』를 쓰게 됐다. 
“20대 느린학습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며 친해지고 이해하게 됐어요. 느린학습자를 바르게 알리는 책을 만들어보자는 정 대표님의 제안에 덥석 해보자고 답을 하고 준비하다보니 내 아이 키우면서 느낀 것과 비슷한 과정도 있었어요. 이 친구들은 어느 한 분야 특별하게 잘하는 분야도 있어요.”

느린학습자들은 지난해 35주가량을 매주 와서 농사도 짓고 원예치유, 도예, 음료, 음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인정과 격려를 받으며 자존감도 높아지고 부모들의 만족도 또한 높았다. 정 대표는 느린학습자라고 모든 분야에서 다 느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여러 개의 외국어를 배워 구사하기도 하고, 말을 유창하게 하기도 하며 반복적으로 학습해 자격증을 따기도 한다. 정 대표는 “느린학습자들은 다양한 특색을 보이기 때문에 잘하는 부분을 지지하고 사회적 역할을 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어릴 때는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나를 제대로 보아주지 않았어.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나도 알 수 없었어.'

이 책에는 이상미 작가가 1년 동안 느린학습자들과 활동을 하면서 알게되고 느낀 것들이 정제되어 담겨있다. 그는 알고보면 모두 가능성을 지닌 우리 아이들이니 따뜻한 시선으로 관심과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대표와 이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농업은 느린학습자에게 적합한 업종이라는 의견에 공감이 갔다. 자연의 시간표에 맞춰서 기다려야 하고, 성과를 재촉받지도 않고, 정성을 들이면 그만큼의 보답이 있으니 말이다. 
뜨렌비팜에서는 느린학습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월 1회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를 듣고 토론하며 활동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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