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경 개인전 <코끼리는 울었다>
본질을 찾아가는 작가의 여정 담긴
다채로운 색상의 추상작품 선보여
31일까지, 헤이리 포네티브 스페이스

갤러리 '포네티브 스페이스'의 지하1층과 1층 모습. 
갤러리 '포네티브 스페이스'의 지하1층과 1층 모습. 

[고양신문]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예쁜 꽃구경도 좋지만, 멋진 그림 감상은 어떨까. 매년 피고 지는 꽃처럼, 40년을 한결같이 그림을 그려온 화가가 있다.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 자리한 갤러리 ‘포네티브 스페이스(관장 한영실)’에서는 김선경 작가의 개인전 <코끼리는 울었다>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김 작가의 10번째 개인전으로 ‘구름놀이’, ‘구원인가’, ‘붉은 꽃병’ 등 추상화 27점을 선보인다. 그는 대성리예술제를 포함해 총 14회 그룹전에 참가했으며, 동아그룹의 공산예술재단 미술상과 한국일보 청년예술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갤러리를 들어서자 다채로운 색상 조합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품들 속에는 무슨 스토리가 담겨있을지 궁금하다. 노란 빛, 빨간 꽃, 하얀 구름 등이 그림 속 가득 보인다. 전시 작품들은 제목과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제목은 ‘절벽’인데 그림은 절벽 같지 않고, ‘땅 위로 올라온 물고기’는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 같다. 작품을 보면서 제목을 유추하면 훨씬 재미있다. 추상화를 감상하는 매력이다.

김선경 작 '코끼리는 울었다'.
김선경 작 '코끼리는 울었다'.

전시 타이틀 ‘코끼리는 울었다’는 무슨 뜻일까. 작가의 글에 힌트가 있다. 태국 방콕의 어느 골목, 허름한 공예품점에서 노인이 통나무로 코끼리를 조각하고 있었다. 이를 보고 있던 누군가가 어떻게 이처럼 놀라운 코끼리 조각을 하는지 물었고, 노인이 대답했다. “나는 단지 코끼리가 아닌 것만을 깎아낼 뿐이오.” 

이 스토리는 김 작가가 예전에 어느 잡지에서 읽고 메모해 뒀던 글이라고 한다. 작가는 코끼리를 조각하던 노인처럼 현상을 덜어내고, 본질을 드러내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 제 나이가 64세예요. 이젠 견고해질 만도 한데, 본질을 찾는 일에 있어서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어요. 본질은 그림뿐만 아니라 삶과 인생, 사람에 대한 것이지요. 그것을 찾기 위해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어쩌면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몰라요.”

헤이리예술마을에 자리한 갤러리 ‘포네티브 스페이스'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김선경 작가.
헤이리예술마을에 자리한 갤러리 ‘포네티브 스페이스'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김선경 작가.

모든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관통하는 일관성 있는 주제에 대해 고민한다. 김 작가는 그림을 사고의 작업이라고 본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생각하고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다는 뜻이다. 
“젊었을 때는 캔버스를 마주하고 있으면 내가 먼저여야 했어요. 메시지가 없으면 그림도 아니라는 식이었지요. 사전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후에 작업을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캔버스와 나와의 관계가 1대 1로 전환됐어요. 내가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 게 아니라, 캔버스가 전해주는 말을 그냥 그리고 있더라고요. 내가 혼자 그린 게 아니라 함께 그려가는 거죠.” 

김 작가만의 ‘1대 1 예술론’은 코끼리 이야기와 일맥상통한 듯 보였다. 
“그리는 것은 그야말로 단순 노동이에요. 캔버스에 이미 형성이 돼 있는 거예요. 저는 그냥 표현만 하면 됩니다.” 

그도 예전에는 꽃을 주 테마로 그린 적이 있지만, 1대 1 관계가 성립되고 나서는 생각도 자유로워졌고, 주제도 다양해졌다고 한다. 

김선경 작 '붉은 꽃병'.
김선경 작 '붉은 꽃병'.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를 질문했다. 작품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느낌만 받으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작품들 중 대표작으로 소개하고 싶은 그림은 없을까. 작가는 그것도 어려워했다. 

갤러리의 투박한 노출 콘크리트 위에 걸려 있는 100호짜리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거인과 3악장’이라는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보다 색감이 밝고 터치는 리드미컬해 보인다. 꽃이 보이기도 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의 형태도 보이는 듯하다. 이번 전시가 확정되고 나서 완성한 최신작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거인을 멋있게 그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귀띔한다. 

체구는 자그마하지만, 열의가 넘치는 그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냥 좋은 작가요. 선하고 베풀고, 배려하는 사람이 좋아요. 제 작업이 아직은 완결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화가이자 생활인으로 불리고 싶어요. 그리면서 사는 사람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게 마냥 좋았다는 화가는, 1981년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파리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1984년 귀국 후 첫 개인전으로 <빛·음·색>전을 공간화랑에서 했다. 초기에는 설치 작품과 3D 작업이 주를 이뤘지만, 20년 전부터는 회화로 정착했다.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갔다가 모친의 병환으로 모국에 돌아온 후 고양시에 거주하고 있다. 

김선경 작 '구원인가'.
김선경 작 '구원인가'.

김 작가의 남편은 김기승 전 고양문화원 예술감독으로, 송승환 총괄감독과 함께 난타를 기획한 인물이다. 그는 김 작가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이자 지원자다. 퇴직 후 목공을 배워, 현재는 부인의 작품을 담는 캔버스를 만들어 주고 있다. “예술적으로 교류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아내가 고독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에 갤러리와 인연이 되어 무척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포네티브 스페이스의 한영실 관장은 “김선경 작가의 작품들은 주제를 다루는 표현이 특별하다”면서 “작품에는 열정이 보인다. 그 열정을 제어하고, 열정을 길들여서 열정과 같이 흘러가는 듯하다. 따듯한 봄날, 많은 분이 오셔서 좋은 작품을 감상하시길 바란다”고 초대 인사를 건넸다. 2일부터 시작된 전시는 31일까지 계속된다. 

포네티브 스페이스
주소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34(월·화 휴관)
문의 031-949-8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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