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장효근 선생이 남긴 한시 원문. 1920년대 중반 행주마을에 터를 잡은 이후부터 쓴 시가 900여 수에 이른다. 

[고양신문] 지난 3월 1일 105주년 3·1운동을 기리는 날에 고양시 덕양구청 소회의실에서 동암 장효근 선생의 한시집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고양문화원장, 파주문화원장, 한시협회와 성균관의 원로 한학자들이 시종 자리를 함께 해주셨다. 기념회가 끝나자 이구동성으로 시작할 때의 참석자가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말씀들을 하셨다. 편찬위원회에서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조촐하게 하자고 했던 것이, 행사장을 다 채우고 20여 명은 선 채로, 참석자의 거의 전원이 자리를 지켜 열기로 가득했던 행사였다.

‘아, 선생이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그러한 시들을 썼구나!’하고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는 내용이고 분위기였다. 한문을 하시는 분들은 활자화된 한문시를, 한글세대는 번역된 한글시를 보면서 약 160년 전에 태어나신 분의 ‘시세계’를 감상하는 데 둘이 아니었다. 분명 ‘하나’였다.

선생은 본래부터 시인은 아니었다. 1867년에 태어났으니 당연히 사서삼경을 읽고 한학을 했던 분이라는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흔들리는 모습에 젊은 시절 꿈꾸었던 청운의 뜻을 접고 계몽활동과 자주국권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선생의 활동은 독립유공자로 선정되고 또 언론에 기사화되면서 이미 많이 알려져 왔다.

선생이 시를 쓴 시기는 대체로 1920년대 이후다. ‘나라 잃고 비바람 속에 지내오길 13년이라(風風雨雨十三年)-<失主: 주인을 잃다>’ 라는 한 구절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 시기는 1922년에 선생이 참여해 추진한 ‘제2의 3·1만세운동’이 실패하면서 경기도 고양군(현재의 고양시)으로 옮겨오신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또한 유고시집의 첫 면 제목이 ‘등배산(登杯山: 배산에 오르다)’이다. 배산이면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을 가리키는 것이니 시를 쓰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서 6명의 역자들 간에 이견이 없었다. 시 제목에 ‘곧 즉(卽)’ 자가 들어가는 것은 대체로 즉흥시이지만 많은 시는 밖에서 있었던 일이나, 마음이 일었던 감흥에 바탕하여 퇴고를 거듭한 후 세필(細筆)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동암 장효근 선생의 한시를 공동번역한 6인. (왼쪽부터)장세청, 최해림, 김동현, 김창기, 주헌욱, 이성배 번역자.
동암 장효근 선생의 한시를 공동번역한 6인. (왼쪽부터)장세청, 최해림, 김동현, 김창기, 주헌욱, 이성배 번역자.

첫 수로 실려있는 ‘등배산’에서 ‘세 철 농사에 우택은 사방천리에 이르고 백전 함성은 한 언덕에 남아있네(三農雨澤方千里 百戰喊聲餘一邱)’라고 하였는데, 민생을 걱정하고 권율장군의 전승(戰勝)을 기리며 국권 회복의 의지를 담은 이 한 구절의 의미가 전체 시에 흐르고 있다.

시대가 어둡고 아플수록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더 큰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리라. ‘밤마다 어버이 생각해도 꿈속에 메아리만 남아, 오래 비워둔 춘당에서 추운지 더운지 여쭈었네. 문안 편지를 쓰고자 한들 어찌 전할 수 있으리오. 푸른 소나무 아래 오래된 묘소에는 달빛만 휘영청(思親夜夜夢猶殘 久闕春堂問燠寒 欲問安書那可得 蒼松古墓月光團)’ 1924년에 둘째 딸이 중국 따렌(大連)으로 옮겨가 거주하였고, 1928년에는 부인이 딸네로 갔다. 7년 만인 1935년에 부인을 만나 읊은 시의 한 구절이다. ‘늙어간 얼굴 화장마저도 주름져 옛날같지 않으나, 기쁘게 담소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구나(老去殘粧依舊否 欣然談笑古如今)-<老室逢席 늙은 부인을 만나는 자리>’ 그리고 ‘가운데 둘째 딸아이는 길을 잃었나, 서쪽 하늘로 머리 돌려 늘 생각하네(中有二娘迷失路  西天回首一思中)-<禮女來>’ 셋째 딸 예녀가 집에 오자 둘째 딸을 그리워하며 쓴 시이다. 그밖에 형제간의 의리(<兄弟>)나 처지가 어려운 동생 생각에 잠못들어 하며 읊은 시(<憶弟>)가 있다.

행주산성 신행주대첩비를 찾은 번역자들. 
행주산성 신행주대첩비를 찾은 번역자들. 

‘시냇가 동쪽 집엔 이미 돼지를 잡았는데, 바구니 속 먼지 포대기 아이를 비스듬히 끌어안네(溪上東家豬已殺 箱中塵橐抱兒傾)-<兒莫啼: 아가야 우지 마라>’나 ‘나라 밖으로 간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앞마을 밥 지어낼 적에 더욱 구슬프구나(海外阿爺猶未返 前村炊事益悽悽)-<前村未炊: 앞마을엔 밥도 못 짓네>’와 같은 시는, 어떤 집은 아이에게 고기를 먹이고 어떤 집은 밭 매다가 마른 젖을 물리는, 일제강점기의 엇갈린 삶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시들이다.

‘백년의 숙원(宿願)을 이루어주신 이 선생님(百年公業李先生)’, ‘고기들은 마른 웅덩이에 헐떡였으나 긴 강은 넘쳐흐르는데, 마력(馬力)으로 바퀴 돌려 물길 만들어 흐르게 했네(魚鱗涸轍長江濶 馬力回輪活水橫)-<李可淳先生揚水工事故以此贈: 이가순 선생이 양수공사를 한 데 대하여 이 시를 바치다>’는 동암 선생과 같은 해에 태어나서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역시 경기도 고양에서 함께 지역지도자로서 활동하면서 사재(私財)를 내어서까지 관개 시설 공사에 주력하였던 독립운동가 양곡 이가순 선생의 공적을 기리는 시이다. 행주산성에 이가순 선생의 공덕을 기리는 비가 서 있다.

고양의 또 다른 독립운동가인 양곡 이가순 선생이 놓은 관개수로(일명 이가순 수로). 동암 장효근 선생이 한시를 지어 그의 공적을 기렸다.  
고양의 또 다른 독립운동가인 양곡 이가순 선생이 놓은 관개수로(일명 이가순 수로). 동암 장효근 선생이 한시를 지어 그의 공적을 기렸다.  

선생의 시에는 정자가 많이 등장한다. ‘제8강정에는 옛터 그림자만 남았네(第八江亭墟影留)- <江亭懷古: 강정에서 옛일을 회고하다>’, ‘알알이 이슬맺힌 낟알은 옥(玉)이 구르는 것 같아, 온 들에 풍년드니 만백성 편안하리라 점치네(点点露華如玉轉 占豊四野萬民安)-<樂健亭八景: 낙건정 팔경>’ 등이다. 행주산성을 비롯하여 한강 일대에 정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아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했고, 유사시에는 망루로, 초소로, 또 장수의 지휘대 역할도 했을 것이다. 선인들의 기록을 고증하고 복원하며 그분들의 글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역사·문학 탐방로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웅장한 산악 밝은 영물이 어찌 영험하지 않으리오마는 끝내 섬나라 통치하에 떨어지고 말았네(雄獄巨灵靈胡不驗 竟爲水國版圖中)-<華嶽: 북한산>’ 북한산은 우리나라를 꿋꿋이 지켜온 상징이다. 이 시에서 주권을 강탈당한 충격을 읊고 있다. ‘화각(畫閣) 허공에 매달려 언제쯤 울릴런지, 시중 사람들은 오래도록 지켜온 나라의 아름다운 소리를 듣지 못했네(空懸畵閣幾時鳴 市上無聞古國聲)-<鐘閣有感: 종각을 보고 느낀 바>’ ‘어떤 사연으로 고질병 앓아 벙어리가 되었나 말을 잃은 채 헛되이 매달려 있구나, 큰 한성에(緣何癈痼成瘖啞 無語空懸大漢城-<鐘閣下號: 종각은 호령을 그치다>’, ‘지원병을 송별하다-<志願兵送別: 지원병 송별>’, ‘징병에 응했다가 죽은 가족을 위로하며 읊다-<應徵死家慰吟>’ ‘징병한다는 소리-<徵兵之聲: 징병에 응했다가 죽은 가족을 위로하며 읊다>’ 등 조국의 슬픈 현실과 청년의 아픈 희생을 기록해 두셨다. 

마지막 면에서 ‘일본패전-<日本敗戰: 일본패전>’으로 침략자들은 응보를 받을 것임을 이야기하며 광복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한순간. 독립과 자유를 주창하던 나라들이 혈투로 비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점, 특히 소련에 대해서 ‘단번에 밀고 들어온 소련군’에게 인의(仁義)를 가르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침략 전쟁은 하늘이 노할 것임을 유언처럼 남기고서 선생은 그렇게 영면(永眠)에 드셨다.

3.1절 105주년을 맞는 지난 1일 출간된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한시집』.
3.1절 105주년을 맞는 지난 1일 출간된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한시집』.

선생의 시는 쉽고 소박하고 솔직하며, 아름답고 그러면서 슬프다. 선생의 시를 읽으면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쥐게 된다.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 인간의 칠정(七情)이 정제된 표현으로 망라되어 있다. 선생이 일관성 있게 보여주신 일평생의 행적이 눈에 보이는 듯하고, 20여 년에 걸쳐 눈물에 먹을 갈아 쓰신 한수 한수의 시가 육성(肉聲)으로 울려온다. 그 때문에 출판기념회에서 모든 참석자가 ‘하나’가 되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의 시집은 『독립운동가 동암 장효근 한시집(漢詩集)』이라는 제목으로 전국의 공공도서관에 배포되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보기를 희망한다.

▶ 필자 최해림 : 고등학교 일본어 교사,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연수과정 졸업

(왼쪽부터) 기고문을 쓴 최해림 선생, 동암 장효근 선생의 손자로서 한시집 번역사업을 주도한 장세청 선생, 공동번역자 중 한 사람인 주헌욱 선생.
(왼쪽부터) 기고문을 쓴 최해림 선생, 동암 장효근 선생의 손자로서 한시집 번역사업을 주도한 장세청 선생, 공동번역자 중 한 사람인 주헌욱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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