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방학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고양신문] 교사에게 3월은 새로운 만남이라는 설렘도 있지만, 그래서 두렵기도 합니다. 같은 일의 반복은 안정감을 주지만, 그 경험 속에서 마주한 문제 상황을 너무 잘 알기에 불안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새로운 학교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게다가 10년 만의 중학교 근무입니다. 설렘과 두려움 속에 3월은 흘러갑니다.

올해는 담임을 맡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중학교 3학년 전체를 관리하는 학년 부장을 합니다. 중학교 3학년만 16개 학급이다 보니 규모가 주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래도 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그 하나하나로 아름답고 살아있어서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사회 첫 단원의 제목은 ‘인권과 헌법’입니다. 새로운 시작의 문이 ‘인권’이니 생활지도의 최전선에 있는 저에게 크나큰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은 베어야 하는데 피는 흘리지 말아야 하는 ‘베니스 상인’의 딜레마가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그래도 24년간 내공이 있지 않겠습니까? 인권 수업의 문을 열어봅니다. 학생들에게 휴대폰을 꺼내게 합니다. 그리고 바로 제 번호를 공개하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우리나라 위인 중 1명을 선생님에게 문자로 보내주세요. 단, 친구들과 상의할 수 없습니다. 30명 전체가 보낸 위인의 이름이 모두 일치할 경우, 우리의 만남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1인 1피자, 1콜라, 1아이스크림을 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교실엔 봄이 가득합니다. 살아있어 피자를 먹게 되어 감사하고, 친구와 콜라로 축배를 들게 되어 인생은 아름다우며, 아이스크림으로 하나가 되니 봄이 바로 여깁니다. 

제한 시간은 30초. 교실엔 모두 같아야 한다는 텔레파시가 아지랑이가 되어 피어나고 저는 침착하게 휴대폰 메시지 30개를 천천히 읽어 나갑니다. 
“세종대왕”
“세종대왕”
“세종대왕”

[이미지출처=아이클릭아트]
[이미지출처=아이클릭아트]

7번 연속 세종대왕이 나오자 아이들은 환호합니다. 그리고 바로 8번째에서 ‘이순신’이 나옵니다. 봄이 여기서 멈춥니다. 그리고 날선 한마디가 이어집니다. 
“아~누구야? 당연히 세종대왕이지. 이순신이 여기서 왜 나오냐?”

봄을 이어가고 싶어 8번째 대답은 무효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계속 ‘세종대왕’이 나오면 이 미션은 성공이라고 했지요. 

다시 “세종대왕”, “세종대왕”이 이어지더니 17번째에서 ‘김구’가 나옵니다. 이후 교실 상황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어차피 자기는 피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비합리적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어느 학생의 말은 그 상상 중에 가장 약한 반응입니다.

진정시킨 후, 그들에게 말을 겁니다.
“30명 모두가 똑같은 위인을 말하는 게 정상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것이 정상일까?”
혹시 반전이 있을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모두 진지하게 다른 것이 정상이라고 크게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정상인 상황에서 서로에게 실망하고 비난했는지를 물어봅니다. 

한참 대답이 없습니다. 다른 것이 정상인데, 서로 같아지려고 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같아 지면 나에게 돌아올 이익이 있으니 다름은 정상임에도 비난의 대상이 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세종대왕’께서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폼나게 한 방을 더 날려봤습니다. 

“가장 황당한 일은 뭔지 알아요? 여러분은 정작 내가 가장 존경하는 위인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다른 학생들이 문자로 보낼 위인만을 생각했을 뿐. 여기에 다른 게 정상인 ‘나’는 없었어요. 자~ 다른 ‘나’를 위해 필요한 ‘인권’에 대해 3월 한 달~ 달려봅시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는 그들을 두고 저는 교실 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이미지출처=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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