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간혹 친구들을 만나면 아직도 일산에 사느냐며 의아해한다. "아니, 일산이 어때서? 일산이 얼마나 좋은데" 그럴 때마다 한 마디로 일축을 해버리지만 가끔씩은 씁쓸할 때가 있다.

분당에 살면 사모님, 일산에 살면 아줌마라던가? 아마 턱없이 차이가 나는 아파트값 때문에 생긴 우스개 소리일 것이다.

하기야 때로는 이런 물질의 유혹에 마음이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이 꼭 물질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 때문에 서울에 살다가 이곳 고양시에 들어온 지가 1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누가 뭐래도 나는 이 고양시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맑은 공기와 투명한 바람, 그리고 비 내리는 저녁무렵 멀리서 들려오던 기적소리에 얼마나 가슴이 뭉클하던지. 어디 그 뿐이던가 자유로를 달리다보면 광할하게 펼쳐지는 하늘은 또 어떤가.

그 풍경을 보노라면 답답하던 가슴이 확 트이기도 하지만 마치 낯선 나라로 여행을 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입던 차림 그대로 나서는 드라이브 길에도 낭만이 넘치는 곳.

아마 그래서 이곳 고양시에는 유난히 예술가들이 많이 모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물질만능시대라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정서는 물질보다 정신적인 것을 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역사가 깊은 고양시에는 많은 문화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다만 지면관계로 여기에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음이 아쉽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교육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지난 시대의 역사와 역동하는 현재와 꿈꾸는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우리 고양시가 아닐까 싶다.

얼마전, 새로 개관된 문화센터인 덕양어울림누리에서 본 한편의 오페라가 아직도 여운으로 남아 있다. 마침 고양시 문인협회 시.수필 낭송회와 시화전이 함께 열려 가을의 낭만을 한껏 즐길 수 있었지만 그 날 본 '행주치마 전사'라는 오페라는 가히 감동적이었다.

임란 때 위기에 처한 행주산성을 지키기 위해 관과 민초들이 힘을 합쳐 장열히 싸워 이긴 그 역사적인 싸움이야 모두 잘 알고 있겠지만 내가 정작 감동을 받은 것은 이렇게 훌륭한 오페라를 고양시의 예술가들이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이런 작품을 올릴 수 있는 완벽하게 갖춰진 시설이 이 고양시에 있다는 것에 얼마나 큰 자부심이 일던지. 아! 이제는 공연을 보기 위해 멀리 있는 예술의 전당까지 갈 필요도 없겠구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한달음에 달려 올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아. 이렇게 날로 문화적인 마인드가 높아지는 고양시가 이제는 서울의 사람들을 불러모으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이런저런 이유를 불문하고라도 나는 분당사모님도 좋지만 일산 아줌마로 불리는 것이 더 자랑스럽다.

사실 이 나라를 그나마 지탱하고 있는 건 손가락으로 물만 튕기고 있는 사모님들이 아니라 억척스럽게 몸을 놀려 자식들을 키워내는 아줌마들이 있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 아줌마들이 살기에는 이곳만큼 좋은 곳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 일산 아줌마라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노을이 지는 호수공원와 황금빛으로 빛나는 들판을 본다면, 여울져 흐르는 저 한강의 물줄기와 강가에 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의 운무와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비록 돈은 되지 않지만 돈으로는 환산할 수도 없는 이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들에 감탄하기나 할까?

이 모든 것들이 아직도 나를 이곳 고양시에 머물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밖에도 이곳에 사는 재미가 많겠지만 나로선 이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김복수/고양시문인현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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