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피디 맛집탐구(10)
일산 웨스턴돔 우동맛집
겐로쿠우동_ 대파향 강하고 불맛 감도는 진한 국물
요미우돈교자_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부드러운 식감
[고양신문] 나는 면요리를 좋아한다. 평양냉면, 콩국수, 막국수, 일본 라멘, 소바, 짜장면과 짬뽕, 우동, 스파게티, 쌀국수에 이르기까지 면발 음식은 다 좋아라 한다. 그중 오늘은 우동 이야기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중식당의 기본 메뉴는 짜장면과 우동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중식당의 우동은 얼큰하고 칼칼한 맛의 짬뽕에 밀려나고 만다. 기차역에서 팔던 우동도 이제는 보기 드문 존재가 되었다. 맛이 자극적이지 않고 SNS에 올릴 만한 감성적인 비주얼도 아닌 우동의 인기 하락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산 웨스턴돔에는 여전히 성업 중인 우동 맛집들이 있다. 겐로쿠우동과 요미우돈 교자가 그 주인공들이다.
웨스턴돔의 스테디셀러 맛집, 겐로쿠우동
일산 웨스턴돔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12년에 입점한 겐로쿠우동은 웨스턴돔을 찾는 발길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그 자리를 지키며 여전히 성업 중이다. 겐로쿠우동은 일본 큐슈 지방 오이타 현의 명물인 '지도리 우동(닭고기 우동)'을 모태로 창업자가 일본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2010년 홍대 본점을 시작으로 한국에 상륙했다.
겐로쿠라고 하는 우동집 이름은 일본 에도 막부 중기의 연호로 겐로쿠 시대(元禄時代, 1688~1704)를 의미하는데 이 시기는 일본 역사상 문화와 경제가 가장 화려하게 꽃피었던 황금기이다. 일본 경제가 발전하면서 집 밖에서 사 먹는 '외식' 문화가 본격화되었고 길거리 음식인 우동, 소바, 스시, 덴푸라 같은 메뉴들이 이 시기에 대중화되기도 했다. 우동도 이전까지는 면을 쪄서 먹거나 단순하게 먹었던 형태에서 진화해 겐로쿠 시대를 거치며 지금처럼 간장 베이스의 국물에 말아 먹는 형태가 널리 퍼졌다. 여기에 더해 겐로쿠우동은 일반적인 가쓰오부시 우동과 달리, 고등어, 말린 다랑어, 전갱이, 멸치 등 5가지 천연 재료와 구운 대파를 사용한다. 특히 대파를 태우듯 구워내는 불맛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이타의 지도리 우동은 닭의 잡내를 잡고 풍미를 돋우기 위해 후추와 유즈코쇼(유자후추)를 과감하게 사용하는데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칼칼함'과 '시원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초창기 레시피에서 후추의 비중을 전략적으로 강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육수에 밴 그을린 대파 향이 진한 후추 맛과 어우러져 중독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큐슈의 오이타, 미야자키 지역에서는 예부터 닭을 숯불에 구워 먹는 문화가 발달했으므로 구운 닭의 기름과 그을음이 국물에 녹아들면, 우리가 아는 맑은 우동과는 전혀 다른 어둡고 진한 육수가 탄생한다. 후추 향이 강하고 불맛이 감도는 진하고 칼칼한 국물이 등장하는 것이다. 맑고 부드러운 맛의 우동이 아니라 강렬하고 개성 강한 맛. 바로 이런 특징이 한국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게 되는 지점이다.
처음 홍대 본점이 문을 열자 기존의 맑고 담백한 우동 국물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구운 대파와 후추 향이 강하게 감도는 겐로쿠의 진한 국물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해장에 최고다"라는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막 활성화되던 시점과 맞물려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우동의 양도 동일한 가격으로 대, 중, 소 세 가지를 고를 수 있는 점 또한 인기의 비결. 홍대 본점 영업 초기 시절부터 두 곱배기(더블)', '세 곱배기(트리플)'를 추가 비용 없이 제공한다는 정책은 당시 대학생과 젊은 예술가들이 많았던 홍대에서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우동 대자를 주문하면 세수 대야만한 큰 그릇에 우동이 담겨져 나오는데 그 압도적인 비주얼이 사진 찍기 좋은 요소가 되어 초기 마케팅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고도 면 추가를 다시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손님 임장에서는 반갑기만 하다.
메뉴는 쫄깃한 닭고기가 고명으로 올라가는 지도리우동(1만원)과 달콤하게 볶아낸 소고기가 올라가는 니꾸우동(1만원), 두툼한 유부가 올라간 키즈네우동(9000원), 차가운 쯔유에 찍어 먹는 냉우동인 자루우동(9000원)이 있다. 키즈네우동의 이름에서 키즈네는 일본어로 여우를 의미하는데 일본 민담에서 여우가 기름에 튀긴 유부를 몹시 좋아한다는 설정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유부는 아주 달콤하게 졸여져 있어, 겐로쿠 특유의 맵싸하고 짠맛이 강한 국물과 만났을 때 완벽한 '단짠(달고 짠)'의 균형을 이룬다.
겐로쿠우동의 모든 따뜻한 국물 메뉴(지도리, 니꾸, 키즈네)는 면을 소바(메밀면)로 변경하여 주문할 수도 있다. 쫄깃함과 탄성으로 승부하는 우동과 달리 소바는 툭툭 끊어지는 특유의 식감과 은은한 곡물 향이 매력적이다. 강렬한 불맛의 육수가 소바의 거친 표면에 잘 스며들어, 우동보다 국물의 풍미를 더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
일산 웨스턴돔을 걷다 보면 유리창 너머로 “여긴 일본인가?” 싶은 공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요미우돈교자이다. SNS 친화적인 식당을 선호하는 요즘 외식 트렌드를 반영해 ‘일본 감성 + 퓨전 우동’을 정확히 구현한 식당이다. 매장 안에 들어서면 곳곳에 배치된 일본어 포스터와 신문, 오픈 키친, 바 테이블(다찌석)은 마치 도쿄 뒷골목의 맛집을 방문한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니 일단 사진부터 찍게 만드는 곳이다. 요미우돈교자는 정통 일본 우동집이라기보다는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우동 프랜차이즈’에 가까운 식당으로 일본의 히모카와(납작우동) 스타일을 중심으로 우동 + 교자 + 덮밥을 묶은 캐주얼 일식 브랜드이다. 전통 일본식 우동에만 머물지 않고, 한국인이 선호하는 육수(닭, 채수 등 3가지 조합)와 식재료(명란, 베이컨, 가지 등)를 접목해 누구나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맛'을 지향하는 것이 요미우돈교자가 내세운 특징이다.
이 집의 시그니처는 일본 군마현 키류 지역의 히모카와 우동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납작우동이다. 폭이 매우 넓은 면과 부드럽고 미끄러운 식감이 그 특징이다. 마치 하얀 비단띠를 가지런히 놓은 듯한 생소한 비주얼은 '사진 찍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니 먹기도 전에 이미 새로운 체험을 제공한다. 이곳의 시그니처 우동 메뉴들은 붓카케 우동(냉우동+소스), 크림 우동, 명란 우동으로 국물 우동이라기보다는 ‘비벼먹는 우동’에 가까워 파스타와 우동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크림, 명란, 매운 소스 등을 적극 사용하면서 간이 강하고 직관적이기에 ‘첫 입에 강하게 꽂히는 맛‘을 내세운다. 히모카와 납작우동(1만4500원), 투움바 납작우동(1만5900원), 갓튀김붓카게(냉)우동(1만2900원), 직화불고기 붓카케우동(1만3500원), 통베이컨크림우동(1만4900원), 명란크림우동(1만4500원) 등 이색적인 우동 메뉴들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국물 우동을 선호하는 이들을 위한 메뉴도 충분하다. 바지락에서 우러나온 천연의 감칠맛을 살려 자극적이지 않은 맑은 육수가 특징인 교토 바지락우동(1만2400원), 큐슈 스타일로 닭고기와 대파를 직화로 구워 넣고 불맛을 담은 지도리우동(1만2900원), 신선한 해산물에 매콤한 불맛을 입힌 카라이해물우동(1만4900원), 가쓰오부시 국물의 소고기듬뿍우동(1만2400원) 등이 있고 다양한 덮밥과 교자도 있어 선택 폭이 넓은 것도 큰 장점이다.
우동 한 그릇에도 시간이 쌓이고, 취향이 갈라진다. 겐로쿠우동의 검게 그을린 대파 향이 묵직한 맛을 제공하다면 요미우돈교자의 투명하고 넓은 면발은 새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웨스턴돔이라는 익숙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 두 빛깔의 우동이 있어 나와 같은 면요리 성애자는 즐겁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