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몽골 여행을 다녀와서

이종선
이종선

[고양신문] 쿠부치 사막의 모래언덕에 올라 숨을 고르다 문득 궁금해졌다. 여기는 왜 ‘내(內)몽골’이고, 고비사막 너머는 왜 ‘외(外)몽골’일까. 우리는 남한과 북한이라 부른다. 같은 민족이 갈라져 사는데 한쪽은 안과 밖으로, 한쪽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다. 모래를 밟으며 그 차이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자료를 찾아보니 몽골 사람들은 애초 자기 땅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내몽골을 가리키던 말은 ‘우부르 몽골’, 곧 ‘앞의 몽골’이었다. 산의 볕드는 남쪽을 뜻한다. 북쪽은 ‘아르 몽골’, ‘뒤의 몽골’이었다. 고비 사막을 등지고 선 사람의 시선이 그대로 담긴 이름이다. 한자에도 막남(漠南)과 막북(漠北)이란 이름이 있었다. 사막의 남쪽과 북쪽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이름들은 점차 밀려났다. ‘내몽골’과 ‘외몽골’은 방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중심으로부터의 거리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그 중심은 몽골이 아니라 베이징이었다. 몽골을 편입해 가는 과정에서 청나라 조정이 매긴 순번이다.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바꾼 1636년, 홍타이지가 고비 이남의 몽골 세력에게 대칸으로 추대됐고, 고비 이북의 할하 몽골은 훨씬 뒤인 1691년에야 청의 강희제에게 복속했다. 55년의 시차를 두고 먼저 들어온 쪽이 ‘안’이 되고 나중에 들어온 쪽이 ‘밖’이 됐다. ‘내’와 ‘외’는 나침반의 말이 아니었다. 궁정에서 매긴 순번과 거리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청의 문서는 앞의 무리를 두고 창업을 도운 공신이며 유목지가 도성 가까이 있다 적었고, 뒤의 무리를 두고 나중에 귀부해 막북 멀리 있는 자들이라 적었다. 심지어 ‘외몽골’이라는 말 자체가 청나라 초기에는 없었다. 청 말에 이르러서야 굳어진 행정 용어다. 어느 쪽도 ‘몽골 그 자체’로 불리지 못하고, 둘 다 궁정에서 몇 번째냐로만 호명됐다.
그렇다면 오늘날 왜 한쪽은 몽골이라는 독립국이 되고, 다른 한쪽은 중국의 자치구가 됐을까. 
여기에는 지리와 인구, 그리고 국제정치가 함께 작용했다. 내몽골의 남부에는 농사가 가능한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청 말 재정난 속에서 초지가 개간되면서 한족 농민의 이주가 확대됐다. 농경지와 목축지의 경계가 점차 달라졌고, 사람의 구성이 달라졌다. 오늘날 내몽골의 인구 2400만 명 중 몽골족은 5분의 1에도 못미친다.(2020년 기준 한족 78.74%, 몽골족 17.66%). 
반면 고비 이북의 할하 몽골 지역은 러시아와 가까웠고, 청의 지배가 무너진 뒤 러시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1911년 청이 무너지자 외몽골은 곧바로 독립을 선언했다. 1921년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혁명이 성공했고, 1924년 몽골인민공화국이 수립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소련은 몽골의 현상 유지를 요구했고, 결국 중국도 이를 인정했다.
내몽골에는 그런 후원자가 없었다. 러시아가 원한 것은 중국과 사이의 완충지대였지 중국을 잘라내는 일이 아니었다. 완충지대는 하나면 충분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여행 마지막 날 왕소군의 무덤 앞에 섰다. 무덤으로 이어지는 긴 신도는 남북으로 곧게 뻗어 있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과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봉분이 한 직선 위에서 마주 보는 듯했다.
무덤 주변의 배치도 중원 농경문화와 북방 유목문화를 나란히 보여준다. 한식 건축과 북방의 천막형 건축, 한식(漢式) 묘표와 흉노의 사슴돌이 서로 마주 서 있다. 두 문명을 대칭으로 놓은 듯한 공간이다. 두 문명을 저울 양쪽에 똑같은 무게로 얹어놓은 듯한 이 대칭은 대부분 20세기 후반에 완성됐다. 
그 대칭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인 역사가 숨어 있다. 왕소군은 흉노에 시집간 한나라 궁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나라와 흉노의 관계가 처음부터 ‘문명과 야만’의 대결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나라의 개국 황제 유방은 기원전 200년 백등산 전투에서 흉노에게 포위됐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이후 한나라는 오랫동안 종실 여인과 비단, 술, 곡식 등을 보내며 흉노와 화친했다. 무제가 적극적인 대외정책으로 전환하기 전까지 65년 동안 한나라는 돈으로 평화를 샀다. 오랑캐라는 이름은 그 기억이 정리된 뒤에 붙여진 것이다.
이제 우리 이름을 다시 보자. 우리의 남과 북은 대칭이다. ‘남’과 ‘북’에는 중심이 없다. 남쪽에서 보면 북쪽이 북쪽이고, 북쪽에서 보면 남쪽이 남쪽이다. 나침반 위의 방향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남한도 북한도 서로에게 ‘바깥’이 아니고, 양쪽 다 자기가 전체라고 주장한다. 국호에 남북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둘 다 온전한 이름이다.
몽골의 분단은 수직으로 갈렸다. 한쪽은 나라, 한쪽은 성(省)이다. 우리의 분단은 수평으로 갈렸다. 나라 대 나라다. 삼팔선 역시 1945년 8월 미국 대령 둘이 지도를 놓고 삼십 분만에 그은 선이니 남이 그은 것은 매한가지다. 
비대칭으로 갈린 이름은 언젠가 지워진다. 몽골국은 스스로를 ‘외몽골’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자신들의 나라가 그냥 몽골이다. 내몽골에서 일부 민족운동 진영에서는 ‘남몽골’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지리의 이름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곧 중심을 부정하겠다는 것이다.
왕소군의 무덤 앞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고비의 앞과 뒤라는 말에는 사람이 서 있다. 어느 쪽이 앞인지는 서 있는 사람이 정한다. 안과 밖이라는 말에는 사람이 없다. 궁정만 있다. 이름을 누가 지었는가를 물으면 그 시대의 권력 배치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남과 북이라는 이 밋밋한 나침반의 말이 새삼 다행스러웠다. 아직 아무에게도 중심을 내주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부르는 이름만큼은 우리가 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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