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교통안전 칼럼
[고양신문] 새 차를 계약하고 나면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색상이다. 어차피 달리면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연비, 사고율, 유지비, 나중에 팔 때 받는 가격까지 색 하나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좌우한다.
파란 차를 산 뒤 유독 추돌 사고가 잦아졌다는 운전자들의 경험은 우연이 아닐 수 있다. 경찰청이 공식 블로그에서 공개한 색상별 사고율 조사에 따르면 파란색 차량의 사고 관련 비율이 25%로 가장 높고, 녹색이 20%로 그다음이다.
원인은 눈의 굴절률에 있다. 파란색은 빛의 굴절률이 커 망막보다 앞쪽에 상이 맺힌다. 파란 물체는 실제보다 더 멀고 작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다른 운전자 눈에 파란 차가 실제보다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면 차간 거리 판단이 흐트러지고 추돌 위험이 커진다. 야간이나 우천 시에도 어두운 계열의 차는 시인성이 떨어진다. 흰색이나 밝은 회색 계열이 상대적으로 사고율이 낮게 나오는 이유다.
색상은 연비와도 연결된다. LG화학 자료에 따르면 여름철 에어컨을 가동하면 차량 에너지 효율이 5~20% 하락하는데, 햇빛을 반사하는 흰색 차량은 태양열을 잘 흡수하는 검은색보다 실내 온도가 낮아 연비를 5% 정도 절감할 수 있다. 여름철 주차 후 차에 올라탔을 때 색상에 따라 실내 온도 차이가 나고, 그 차이가 에어컨을 얼마나 오래 켜두느냐를 결정한다. 겨울에는 검은색이 태양열 흡수에 유리하지만, 히터의 연료 소모율이 에어컨보다 훨씬 적어 연간 전체 효율을 따지면 흰색이 경제적이다.
유지 관리도 색상마다 다르다. 검은색은 작은 스크래치도 바로 드러나고 먼지와 빗물 자국이 쉽게 보여 세차 주기가 짧아진다. 흰색은 전반적으로 관리가 쉬운 편이지만 빗물 얼룩이 남기 쉽다. 은색이나 회색 계열은 오염이나 흠집이 상대적으로 덜 눈에 띄어 관리 부담이 가장 적다. 사고 후 도색 수리를 할 때도 무채색 계열은 색 맞추기가 쉬워 원상 복구가 수월하고, 유채색은 같은 색이라도 음영과 광택이 달라 완벽하게 맞추기 어렵다.
중고 처분 시에도 색상은 따라온다. 흰색, 회색처럼 수요가 꾸준한 무채색 계열은 처분할 때 제값을 받기 유리하다. 파란색, 빨간색 같은 유채색은 취향을 타는 색상이라 매수자가 줄고 가격 협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같은 연식, 같은 모델이라도 색상에 따라 중고 거래 속도와 가격이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전기차를 선택한 경우라면 색상의 영향이 더 직접 느껴질 수 있다. 전기차는 배터리 효율이 실내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검은색 전기차는 여름철 실내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 에어컨 가동 시 배터리 소모가 더 빨라진다. 주행 가능 거리가 이미 줄어드는 겨울철에 냉방 부담까지 더해지면 배터리 소모가 더 빨라진다. 흰색이나 밝은 색상이 배터리 효율 관리에 유리한 이유다.
연비, 안전, 유지 관리, 재판매 가치를 종합하면 흰색이나 회색 계열이 가장 실용적이다. 액솔타가 발표한 '세계 자동차 인기 색상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색상은 흰색(33%), 회색(26%), 검정(14%) 순으로 무채색이 압도적이다. 수요가 많다는 것은 나중에 처분하기도 그만큼 쉽다는 뜻이다.
취향을 완전히 무시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차는 수년을 함께하는 자산이다. 연비 5% 차이, 사고율 차이, 세차 주기 차이, 중고 처분 가격 차이가 몇 년을 타다 보면 작지 않은 금액이 된다. 무채색 계열 안에서 취향을 찾는 것이 가장 실속 있는 선택이라는 사실, 차를 고르는 순간에 한 번쯤 떠올려볼 만하다.
이광수 일산서부경찰서 경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