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로 한국 현대사 읽어내는
김태호 전북대 교수
대안학교 인연으로 2016년 고양으로
통일벼·한글타자기, 일상의 과학 기록
"인류 실패와 오답, 문명 진보의 진짜 열쇠"
최초 질문으로 맥락 짚는 게 과학사의 묘미
[고양신문] "우리 현대사를 정치사나 경제사, 혹은 사회사 위주로만 다루면 채워지지 않는 빈틈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만든 힘 중에 사실 과학기술이 다른 것 못잖게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 과학사의 내용을 알아야 우리 역사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김태호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는 과학을 이야기와 재미로 설명했다. 올해로 11년 차 고양시민인 김 교수는 2016년 초 공동육아를 하던 서울 상도동에서 대안학교인 불이학교의 교육 철학을 접하고 덕양구 서정마을로 이주했다.
불이학교 학부모로 3년여 시간을 보내면서 김 교수는 주말에만 고양시에서 지냈지만 다양한 커뮤니티와 생동감있는 고양시의 공동체를 경험하며 ‘고양시민’을 자청하기로 했다.
지난 3일, 김 교수는 지역 문화 거점인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진짜 인문학’ 강연을 가졌다. 무더운 휴가철 월요일 저녁임에도 한양문고 데미안홀을 메운 50여 명의 시민들은 조는 사람 하나 없이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김 교수는 “월요일 저녁에 이토록 뜨겁게 호흡하는 시민들을 만나는 것은 무척 특별한 경험”이라며 “한양문고를 중심으로 오랜 시간 다져진 고양 시민사회의 저력을 생생하게 실감했다”고 감회를 밝혔다.
“과학사는 ‘이것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오늘날 과학 논문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와 수식이라는 ‘외계어’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갈릴레오나 뉴턴 시절에는 질문들이 우리의 상식적인 일상 언어로 표현됐다. '천체가 규칙적으로 도는 힘은 무엇인가' 같은 의문들은 밤하늘을 보며 떠올리는 원초적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이처럼 최초의 질문으로 거슬러 올라가 맥락을 짚는 과정이 과학사의 진짜 묘미다. “
많은 이들이 ‘과학사’를 따분한 암기 과목으로 여기지만, 김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이러한 질문의 힘은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절실하다. 대학 강단에서 AI를 매일 접하는 김 교수는 기술의 부작용에 대해 경고했다.
“학교 현장이 심각하다. 학생들이 모든 문제는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자판기식 태도를 갖고 있는데 이는 전 세대에 만연하는 일이다. 역사상 위대한 과학적 혁신은 답이 없는 막막한 문제와 끈질기게 씨름하는 과정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AI 네이티브 세대일수록 질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AI는 왜 이런 답을 도출했는가' '나는 왜 이것을 궁금해하는가'를 묻는 끈질긴 생각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여기에 그의 저서 『오답이라는 해답: 과학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의 통찰이 닿아 있다. 이 책은, 과학이 정답의 나열이 아니라 숱한 오답과 시행착오의 발자취임을 밝힌다. 김 교수는 책을 통해 ‘직관을 거부하는 용기’와 역사적 인물들이 보여준 ‘위대한 평범함과 평범한 위대함’을 역설한다. 당연하게 여겨온 사실에 끊임없이 '왜?'를 던져온 인류의 실패와 오답이야말로 문명을 진보시킨 진짜 열쇠였다는 것이 그가 건네는 핵심 메시지다.
“우리 현대사를 정치·경제사 위주로만 다루면 채워지지 않는 빈틈이 있다. 오늘날을 빚어낸 진짜 물질적 힘은 바로 과학기술에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의 학문적 애정은 한국 과학사 연구로 오롯이 이어진다. 그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주체적으로 이해하려면 한국 과학사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대표작 『근현대 한국 쌀의 사회사』에 실린 1970년대 ‘통일벼와 녹색혁명’ 연구가 단적인 사례다. 통일벼의 성공은 단순히 독재 정권의 강제나 지도자의 영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인 과학적 흐름 속에서 최신 농학 성과를 주체적으로 들여와 한국 기후에 맞게 밤낮으로 개량해 낸 농학자들의 땀방울, 그리고 매해 영농 상황에 맞춰 주체적으로 이 품종을 선택하고 가꾼 농민들의 역동성이 결합해 이룬 찬란한 과학적 성과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마트폰으로 한글을 편하게 치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한글의 ‘모아쓰기’를 기계로 치는 것은 난제 중의 난제였다. 초성과 종성에 따라 자모 크기를 기계식으로 맞춰야 하던 시절, 한글의 정보화를 위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치열하게 표준화 싸움을 벌였던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편리함이 가능했다.”
한국 과학사와 우리의 삶에 대한 그의 열정은 또 다른 저서 『한글과 타자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김 교수는 이들 선구자의 발자취를 온전히 기록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책무라고 여긴다.
일상을 가꾼 물질세계를 추적하는 그의 따뜻한 시선은 고양시 지역 사회와의 다정한 교류로도 번졌다. 서울 삼청동 전시회에서 『근현대 한국 쌀의 사회사』가 전시 참고 서적으로 놓인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놓고 온 명함 한 장이 인연이 되어, 고양의 토종벼 보존 운동 단체인 ‘우보농장’의 이근이 대표를 알게 된 것이다. 어느 가을 추수철에 주민들과 함께 땀 흘려 벼를 베고 막걸리를 나누며, 토종 벼 보존의 역사적 의미를 함께 나누는 열린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어려운 첨단 이론보다 한국인의 일상과 맞닿은 ‘의식주 물질문명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들여다보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김 교수는 1980년대 이후 밀집 사육용 오리 품종이 공급되면서 오리고기가 대중화되고, 참치캔이 식탁을 지배한 풍경처럼 먹거리 이면의 과학기술적 요소를 발굴해 한국 현대사를 채우고, 식습관 변화에 따른 의학적 영향을 확인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태호 교수는 11년 동안 살며 정든 고양시 지역 공동체 등의 부름에 언제든 화답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전 아이가 다니던 대안학교에서 학부모와 교사들을 대상으로 과학 특강을 진행하기도 했다"며 “이미 고양에는 훌륭한 풀뿌리 지적 자산이 잘 닦여 있다. 지역 주민들과 다양한 접점이 생긴다면 제 과학사 이야기를 통해 이웃들과 언제든 유쾌하게 소통하고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의 차가운 상자 너머로 따뜻한 인간의 온기를 복원해 나가는 그의 여정이 고양시민들의 삶을 한층 풍요롭게 하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