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호의 BOOK회귀선(16)
-이규원(92년생, 대자동)


무연고 사망자 마지막 지키는 활동가
매일 무언가 사라진다는 걸 인지하며
삶의 순간들이 오히려 선명해져

누군가 수류탄을 집어 던지고 싶을 때
당신과 내가 망고를 깎을 수 있기를…
그 힘을 잃어버릴 때 인류는 끝날 것

사회적 장례지원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의 이규원 활동가.
사회적 장례지원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의 이규원 활동가.

[고양신문] 입추가 지나자 무더위가 거짓말처럼 한풀 꺾였습니다.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제때가 되면 물러나고, 계절은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요즘 저는 죽음 앞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한 사람의 삶이 끝난 자리에도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는 것.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돕는 이규원씨를 만났습니다.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에서 일하는 그는 고인의 제사를 마치고 잠시 시간이 난 틈에 『망고와 수류탄』을 읽고 있었습니다.

책 제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수류탄을 받았던 한 오키나와 여성이 훗날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학생들에게 망고를 내어주었다는 일화에서 비롯됐습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품은 사람이 오늘날 다른 이에게 다정함을 건넬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몇 가지 정보만으로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을 하나의 사건이나 이름으로 남겨두지 않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규원씨에게 이 책은 어떻게 읽혔을까요. 그리고 그는 매주 만나는 고인들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이번 북회귀선에서는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는 규원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요즘 이규원 씨의 하루를 채우는 것은 무엇인가요?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장례지원, 시민교육 및 정책제안 활동을 펼치고 있는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에서 활동가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났고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서울시립승화원에 있는 공영장례 전용빈소를 방문해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진행합니다. 사별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서,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에 저만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행운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쉴 때는 누워서 뭘 봤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 쇼츠를 보거나 종종 책을 읽으려 시도합니다. 얼마 전 시인이자 평론가인 강보원 선생님의 문학읽기 수업을 들었는데, 이 6번의 월요일이 최근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문학 작품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으로 작품 안에서 반복되는 모티프에 주목하기를 연습시켜 주셨고, 막연한 좋음을 구체적이고 내재적인 요소들로 설명하는 방법을 알고 나니, 작품을 이전보다 깊이 읽게 되고 더 좋아할 수 있게 되었어요. 『망고와 수류탄』도 수업 때 선생님께 추천받았던 책인데, 발화자의 말을 믿을 수 없을 때 우리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해 조금 더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일을 하면서, 오히려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일상이 있나요?

"현장이 바쁘게 돌아가긴 해도 사이사이에 긴 대기시간이 있습니다. 예컨대 화장로에 고인을 모시고 나면 1시간 10분 정도 기다려야 해요. 사별자도 자원봉사자도 없는 날에는 신경 쓸 것이 적어 유족대기실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어느 날엔 혼자 대기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는데 맞은편의 벽지에 남은 얼룩이 눈에 들어왔어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흔적이구나 싶었고 나 역시 누군가의 몸이 사그라들길 기다리며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누군가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져 생경한 안도감이 불쑥 생길 때도 있었습니다.

'나눔과나눔'에서 일하기 전에는 지방에 있는 작은 장례식장에서 근무했습니다. 상가가 하나도 없는 날도 많았어요. 할 일이 너무 없으면 공연히 장례식장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하며 죽은 동물들의 몸을 많이 봤습니다. 죽은 참새나 비둘기를 들어 올렸을 때는 예상보다 훨씬 더 가볍고 털이 너무너무 부드러웠어요. 손을 통해 느꼈던 감각이 생생합니다. 또 눈을 감겨 주고 싶은 마음이 반사적으로 든다는 게 신기했고, 비둘기의 눈꺼풀은 위에서 아래로 덮이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덮인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양방향으로 서로 알려고 애쓴 만큼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망고와 수류탄』에도 참고할 만한 글들이 실려 있는데요, 피차별 당사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차별 받은 적 없다’는 구술을 마주했을 때 ‘구술자가 현실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고 해석해 구술자의 판단 능력을 폄하하거나 ‘그 구술자는 정말 차별받은 적이 없다’고 해석해 차별이 존재한다는 중대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해요. 그러면서 우리는 그 사람들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기록해야만 한다고, 어쩌면 무엇을 말했느냐보다 어떻게 말했느냐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덧붙이고 있습니다. 같은 질문이어도 질문자가 누구인지, 대답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땠는지, 대화를 주고받은 공간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등에 따라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온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겁니다. 그렇다면 더 많이 다양하게 궁금해하고 질문하고 대화를 주고받는다면 더 많이 깊이 알 수 있게 될 거예요. 

한편 무연고 사망자분들에게는 더 이상 질문할 수 없습니다. 알 수 있는 것은 이름과 생년월일, 사망지, 사망 원인 정도가 다예요. 거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로 장례를 치르면서 저는 ‘누군가의 삶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채로도 애도할 수 있을까? 애도의 시간이 무언가를 잃은 후에 시작된다면, 내가 무연고 사망자의 죽음으로 인해 잃은 것은 무엇일까? 살아 있을 때 대화 한번 해보지 않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나는 왜 슬픔을 느낄까?’와 같은 질문들을 갖게 되었고 아직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런저런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고, 오래오래 공부하고 싶습니다."

사회적 장례지원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의 활동가 이규원씨.
사회적 장례지원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의 활동가 이규원씨.

- 『망고와 수류탄』은 규원씨에게 어떻게 읽혔나요?

앞서 짧게 설명해주신 바와 같이 표제작의 제목은 수류탄을 건네받았던 여성이 먹기 좋게 자른 망고를 건넨 일화에서 비롯됐고, 해당 내용은 표제작의 말미에 실려 있습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친언니에게 해당 내용을 공유한 적이 있었는데, 망고를 잘라서 나눠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 그렇게 대답해서 웃음이 났어요. 그런 반응도 참 좋았습니다.

누구나 상처를 받으면서 사는데 왜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이유로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아물게 만들고 싶어 하는 걸까요. 그야말로 답이 없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매 순간 예쁘게 자른 망고를 건넬 수는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내가 수류탄을 집어 던지고 싶어만 질 때는 당신이 망고를 깎고, 당신이 수류탄을 손에 쥐었을 때 내가 망고를 깎을 수는 있을 겁니다. 모든 인간이 망고를 건넬 힘을 잃어버릴 때 인류의 역사가 끝나겠지만, 그 전에 지구가 먼저 뒤집힐 것 같아요. 이번 여름은 정말 더웠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일조한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세상이 너무 못나 보여서 한없이 가라앉을 때 펼치기만 하면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수 있는 책들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로베르트 발저의 책들과 강보원 시인의 시집이 그렇습니다. 『완벽한 개업 축하 시』는 ‘슬프지 않아도 괜찮으면요’라는 시인의 말로 시작되고,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그는 결코 성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멋지고, 멋지고, 또 멋지다고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합니다. 이십 대 중반,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생각이 크게 전환됐던 시기가 있었어요. ‘I prefer not to’라는 말만 반복하는 바틀비, 그리고 결국 바틀비를 이해하는 데에 실패하고 마는 법조인의 이야기를 만난 후부터는 무언가를 해내고 이겨내고 성장하는 것보다 지지부진하고 맴돌고 실패하는 것 가까이에 있는 게 좋아졌습니다.

-죽음과 가까워진 뒤, 삶에서 더 소중해진 것은 무엇인가요?

"모자람이 하나도 없이 완벽한 순간이 가끔 있습니다. 지난 봄에 좋아하는 친구와 일산호수공원에 자전거를 타고 놀러 가서 노래하는 분수대 근처의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었던 저녁 시간이 그랬어요.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문장 그대로 생각했었거든요. 공원 편의점에 파는 라면이 맛있으니 먹어보라며 라면을 사러 간 친구, 누군가를 좋아하는 나의 마음, 맛있는 김밥, 선선했던 날씨, 보라색 하늘, 율동하는 어린이들,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약간 멍한 정신, 대중가요의 리듬에 맞춰 솟아오르는 기특한 물줄기, 그 많은 요소들이 하나의 순간에 우연히 모여서 큰 기쁨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쁜 순간이 곧 끝날 거라고도 함께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순간의 기쁨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어요.

실제로 매일매일 곳곳에서 누군가 죽지만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그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 이후로는 애쓰지 않아도 매일매일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것을 인지한 채로 지낼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죽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큰 안정감을 주기도 합니다."

-올여름이 지나고 새로운 계절을 맞으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나요?

"예전에는 홀린 듯이 우러러보게 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누구도 특별히 대단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제 몫으로 주어진 삶을 제 나름대로 살아갈 뿐인 것 같고요.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치르면서도 마지막에 남는 말은 언제나 ‘고생하셨습니다.’ 정도, 조금 더 솔직해 보자면 ‘모든 게 끝나셨다니 부럽습니다.’ 정도입니다.

제 나름대로의 삶을 제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만들어 나가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최선을 다한다는 말과는 다른 것 같아요. 내 몸과 마음의 힘이 바닥나지 않는 선에서, 긴급할 때는 내가 망고를 깎아 건네야 할지도 모르니 항상 여유분을 남겨둔 채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제가 할 수 없는 일들은 하지 않으면서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눔과나눔 홈페이지 : http://goodnanu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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