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통해 동티모르 발전에 기여”


동티모르의 첫 국가연구소
한국-동티모르 가교 역할
동티모르는 450여 년 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그 후 25년간 또다시 인도네시아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분리 독립투쟁을 진행하면서 호세 라모스오르타와 카를로스 벨로 카톨릭 주교가 비폭력 독립운동을 이끈 공로로 1996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200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독립국가가 됐다. 강원도 크기의 국토면적에, 인구가 고양시 보다 조금 많은 118만 명으로, 사회경제적 인프라는 우리나라의 1950~60년대의 상황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 제 2의 인생을 열어가며 동티모르의 ‘언더우드’를 꿈꾸고 있는 고양시민이 있다. 지난해 11월 동티모르국립대학교 경영경제학부의 첫 번째 외국인 종신교수로 임용된 최창원 교수다.
“교육은 미래를 여는 창입니다. 교육을 통해 동티모르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죠. 우리나라의 탁월한 정보통신 인프라 서비스를 동티모르에 도입해서 최고의 사이버대학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 교수는 1997년부터 고양시에 거주하며 호프셀러리더십센터(Hopeseller Leadership Center)를 만들어 리더십과 개발학 연구를 진행했다. 그가 동티모르에서 새로운 삶을 열게 된 것은 운명이었다.
2008년 여름에 한국 기업들이 사업타당성 조사를 위해 동티모르를 방문했을 때 그는 3일간 현지에서 통역관으로 활약했다. 2주 동안 동티모르 곳곳을 여행하며 이름뿐인 국제NGO 활동의 실상에도 눈을 떴다. 그런 중에 동티모르국립대 총장으로부터 한국어와 리더십 강좌를 맡아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고 흔쾌히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
“One of Them이 아니라 The only One이 되고 싶었어요. 동티모르에서 교육을 통한 발전 이론을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도 구현해보고 싶은 도전 의식이 샘솟았죠.”
2008년 가을 모든 짐을 정리해서 동티모르로 떠났다. 동티모르국립대에서 당초 약속했던 한국어, 리더십 강의뿐만 아니라 정책학, 조직경영론, 영어 등 9개 과목의 수업을 진행했다. 유일한 국립대학이지만 턱없이 부족한 교수진 때문에 학교 측의 추가 강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동티모르국립대 총장이 한국학연구소 설립을 처음으로 제안한 것은 2011년이다. 1년 동안준비해서 지난해 11월 드디어 한국학연구소의 설립 승인을 받았다.
“한국학연구소는 동티모르에서 최초로 생긴 국가단위 연구소입니다.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발전 경험을 동티모르의 개발과 발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할 것입니다.”
최근 그는 한국국제교류재단 등 국내 여러 기관을 방문해서 한국학 진흥을 위한 기금마련에 대해 협의했다. 여러 방송에도 출연하여 동티모르를 알리는 외교 사절 역할도 했다.
“한국에 유학 온 10명의 동티모르 학생이 귀국하면 자연스럽게 연구소의 핵심 멤버가 되겠죠. 동티모르에 관심 있는 한국인도 누구나 연구소의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최 교수는 “한국학연구소가 동티모르 내에서 한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기업투자의 밑바탕 형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양국 간 경제 교류와 산업 협력에도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관심을 당부했다. 인터뷰 말미에 최 교수는 고양시민으로서 한 가지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동티모르 국가발전 전략분야 중 하나인 관광산업은 현재 천연자연관광으로만 한정되어 있어서 그 생산성이 매우 떨어져요. 전시·컨벤션 산업이 발달한 고양시의 노하우를 전수해준다면 동티모르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