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는 ‘필통’ 동호회

[고양신문]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스크린이 온통 상업영화들로 도배되는 요즘, 개성을 품은 예술영화와 선명한 주제의식을 담은 필름들을 만날 수 있는 모임이 있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해졌다. 고양시의 대표적인 지역서점인 한양문고 주엽점에서는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영화감상동호회 ‘필통’ 이 개최하는 무료영화상영이 열리는 것. 지난 16일 저녁, 설레는 마음으로 ‘필통’ 모임의 문을 두드렸다.
 

매 주 화요일 한양문고 주엽점에 모여 영화를 감상하는 '필통' 멤버들. 앞쪽에 앉은 이가 안종탁 대표. 맨 왼쪽은 이날 처음으로 영화감상모임에 참석한 정범구 전 국회의원.


매주 화요일 한양문고에서 다양한 영화 감상

상영시간이 가까워지자 한양문고 주엽점 한강홀에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롤 블라인드가 내려지고 조명이 소등되자 강의실 전면 스크린에 영상이 펼쳐진다. 기자가 찾은 날의 상영작은 18세기 계몽철학자 디드로의 원작 소설을 필름으로 옮긴 프랑스 영화 ‘베일을 쓴 소녀’다. 억압적인 종교와 사회의 권위에 저항하는 한 소녀의 극적인 삶을 인상적으로 그리고 있는 영화는 필통이 선정한 5월의 테마인 ‘국제영화제 화제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이날 함께 본 프랑스 영화 '베일을 쓴 소녀'(감독 기욤 니클루, 2013년 작품)

100분의 러닝타임이 흐르는 동안 관객들은 강렬한 주제의식과 색다른 영상미로 채워진 화면에 숨을 죽이며 몰입한다.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고 조명이 켜지면 비로소 ‘사람들’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함께 영화를 감상한 이들은 10여 명 남짓. 조금 많은 날도 있고 적은 날도 있단다. 직장인, 프리랜서 작가가 있는가 하면, 영화를 보고 싶은데 혼자 오기가 쑥스러워 아들을 졸라 함께 찾아왔다는 중년의 주부도 있었다.

토론 진행자인 안종탁 대표가 누구든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최대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끈다. 필통의 단골 멤버라는 70대 부부가 각자의 생각을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고양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던 정범구 전 의원도 이날 처음 참석했다며 인사를 나눴다. 함께 감상한 영화라는 매개체가 있어서인지 30분 남짓 이어진 이야기는 자연스레 흐름을 탄다.

만남은 뒤풀이 자리로 이어졌다. 가까운 식당에서 막걸리 잔을 주고 받으며 ‘영화’에 대한 감동은 진폭을 더하고, ‘사람’에 대한 탐색은 무르익는다. 혼자서 영화를 감상했더라면 미처 얻지 못했을 사유와 감동의 결을 각자의 몫으로 챙긴다.
 

필통 멤버들이 영화 감상에 몰입하고 있다.


"영화, 사람과 세상 이어주는 매체”

필통 멤버들이 감상모임을 시작한 건 지난해 5월부터다. 영화를 뜻하는 ‘필름’과 소통할 ‘통 (通)'을 합쳐 만든 이름은 모임의 성격을 정확히 설명해준다. 영화를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세상과 소통의 창을 넓히자는 것.   

모임을 이끌고 있는 안종탁 대표는 ‘트래북스’라는 여행 콘텐츠 브랜드를 운영하는 문화기획자다.
“지인의 소개로 파주 헤이리의 예맥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명품 영화 감상회에 우연히 참여했다가 ‘일산에서 모임을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주변의 지인들을 끌어모아 필통 모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스스로를 ‘영화의 문외한’이라고 소개하지만, 특유의 추진력과 친화력 덕분에 지난 1년 동안 필통은 ‘믿고 찾는 영화감상 모임’이라는 평을 얻으며 내실 있게 자리를 잡았다. 초창기에 많은 조언을 해 준 씨네쿱 조진화 이사장 등의 도움도 큰 힘이 됐다. 현재 필통 밴드 멤버만도 160여 명에 이른다.                

처음에는 작품성을 인정받은 명화 위주로 상영작을 고르다가 특정한 테마에 맞는 작품들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가능하면 사회적 이슈를 다룰 만한 주제를 골랐다. 필통이 단순한 영화 동호회가 아니라,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을 얻게 하는 둥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주제가 정해지면 해당 주제를 다룬 다양한 시각의 영화를 선정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특히 헐리우드 위주의 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와 지역의 안배에도 신경을 쓴다. 가능하면 한국영화도 한 작품을 편성한다.

여행 콘텐츠 생산자인 안 대표는 영화와 여행 사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둘 다 공간을 다루는 장르이고,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여행을 떠나는 것은 무척 닮았습니다.”

그는 함께 여행을 다녀온 사람끼리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나누듯, 영화 역시 감상을 한 후 서로의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각자의 감상과 느낌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보지 못했던 점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기 때문에 그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된다는 것.  
“하나의 주제를 함께 생각하게 하면서도 다양한 해석의 자유를 열어주는, 영화처럼 매력적인 매체가 또 있을까요?”
안 대표의 말에 공감한다면, 스마트폰 플래너를 열어 화요일의 스케줄을 체크해보자. 
 

영화감상모임 '필통'을 이끌고 있는 안종탁 대표는 여행과 책, 영화를 아우르는 '소통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문화기획자다.


영화감상동호회 필통 5월 상영작

- 5월 23일(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이란)
- 5월 30일(화) ‘위켄즈’(한국)
장소 : 한양문고 주엽점 한강홀
상영시간 : 오후 7시
문의 : 010-7477-0077

영화감상모임 필통의 5월 주제는 '국제영화제 상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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