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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겨울 숲을 걷는 재미, 비밀의 정원 ‘율곡수목원’<유경종 기자의 하루 여행>
  • 유경종 기자
  • 승인 2020.02.21 12:28
  • 호수 1457
  • 댓글 0

올여름 공식 개장 앞둔 파주 ‘율곡수목원’
양지는 낙엽 이불, 응달은 눈 이불 덮고...
가을과 겨울 어깨동무한 채 봄을 기다리네

 

가을 풍경과 겨울 풍경이 사이좋게 머무는 파주 율곡수목원.


[고양신문] 어쩌다 이런 일이…. 명색이 겨울인데, 눈 한번 제대로 밟지 못하고 2월이 다 가고 있다. 며칠 전 잠깐 내린 눈도 한낮의 햇살에 힘없이 녹아버렸다. 어딘가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잔설을 찾아 자유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렸다. 당동아이씨에서 문산·적성방면으로 진출해 37번 국도를 따라가니 왼편으로 임진강 물줄기가 시원하게 굽이친다. 목적지는 임진강변 야트막한 산자락에 아늑하게 숨은 쉼터, 율곡수목원이다.

올여름 문을 열게 될 율곡수목원은 아직 정식 개장을 하지 않은 미완의 정원이다. 하지만 7년 전부터 차근차근 공간을 조성하고 다양한 나무들을 식재해 일찍부터 수목원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풍광을 넉넉히 갖췄다. 몇 해 전부터는 임시개방을 해 성급한 나들이꾼들을 맞고 있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기엔 정식 개장 전인 지금이 오히려 안성맞춤이다.

바스락거리는 가랑잎 위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는, 영락없는 가을 분위기다.


겨울 가기 전 눈 한번 밟아보자!

넓은 주차장엔 주차된 차가 기자가 몰고 간 것까지 달랑 두 대. 주변의 산기슭을 유심히 살펴보지만 잔설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허탕이구나. 마음을 비우고 느긋한 마음으로 완만한 경사를 따라 수목원을 향해 걷는다. 한겨울에도 하늘하늘한 맵시를 자랑하는 핑크뮬리와 수크령의 마른 덤불이 실망한 방문객에게 위로 인사를 건넨다.

실개천을 따라 골짜기로 들어서니 비로소 수목원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짧은 감탄사가 나온다. ‘있구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부채꼴 모양의 한쪽 기슭이 하얗게 빛난다. 북향의 그늘진 사면에 아직 채 녹지 않은 눈밭이 펼쳐져 있었던 것. 미션 성공이다.

떡갈나무와 신갈나무가 둘러선 남향 사면은 바스락거리는 낙엽이불을 덮고 있어 영락없는 가을 풍경이다. 반면 키 큰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북향 사면은 하얀 눈 이불을 덮고 있는 겨울 풍경, 두 계절이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는 듯하다.
 

뒷산에서 수목원으로 이어지는 작은 골짜기.


겨울의 푸르름 가득한 침엽수정원

수목원에는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둥글게 감싼 능선 아래로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수목원 경내를 좌우로 길게 연결하는 수평산책로가 있는가 하면,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계단과 데크도 적절하게 설치됐다. 무엇보다도 잔설이 남아있는 소나무숲 아래 경사면에는 아늑한 오솔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져 있어 숲길을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율곡수목원은 단풍나무원, 사계정원, 유실수원, 참나무원, 방향식물원 등 다양한 테마정원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린 채 서 있는 까닭에, 나무이름표를 하나하나 읽으며 수종을 상상해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유일하게 한겨울에도 싱싱한 푸르름과 아름다운 수형을 과시하는 나무들이 모인 정원이 하나 있다. 침엽수원이다. 이곳에는 소나무, 향나무, 삼나무, 측백나무, 편백나무 등 여러 종류의 침엽수들이 모여 있는데, 크기도 색깔도 제각각이다. 잎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방석처럼 땅바닥으로 넓게 퍼지며 자라는 녀석도 있다. 수목원 전체의 첫인상을 ‘가을과 겨울이 나란히 있는 풍경’이라고 말했지만, 푸르른 침엽수원만 놓고 보면 ‘여름 풍경’ 하나를 슬쩍 추가해도 좋을 것 같다.

한겨울에도 푸르른 칩엽수원. 각양각색 신기한 침엽수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몸과 마음이 살아나는 ‘사임당 치유의 숲’

수목원 중앙의 정원에는 ‘사임당 치유의 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을에는 이곳이 하얀 구절초로 뒤덮여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사임당은 당연히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을 말한다. 율곡 이이는 1536년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났지만 여섯 살 되던 해 본가인 파주에 올라와 성장했다. 벼슬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여생을 마친 곳도 파주다. 그런 까닭에 파주에는 율곡수목원을 비롯해 율곡습지공원, 자운서원, 화석정 등 율곡 이이를 기리는 장소들이 많다.

사임당 치유의 숲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수목원 중앙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나무그늘 아래 여러 개의 평상이 놓인 쉼터가 나타난다. 삼림욕을 즐기며 수목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다. 오후 햇살이 따사롭고, 이름 모를 산새들도 멋진 배경음악을 깔아준다. 잠시 돗자리를 펴고 앉아 보온병에 담아 온 차를 마시며 온기를 보충한다.

눈이 녹지 않은 북향 사면을 지키고 있는 벤치.


꽃피는 봄날의 재회를 기대하며…

어느덧 짧은 겨울해가 모습을 감추려 한다. 떠나기 전에 겨울 영역으로 한 번 더 발길을 향한다. 하얀 눈 깔린 산책로에 발자국도 꾹꾹 남겨보고, 벤치에 내려앉은 눈을 다져 눈뭉치도 만들어 보며 올겨울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눈길 나들이의 아쉬움을 달랜다. 하얀 눈아, 내년에는 비싸게 좀 굴지 말고 자주 좀 보자꾸나.

사실 율곡수목원을 찾는 이들에게 선물 같은 포인트가 한 곳 더 있다. 수목원 뒤편으로 이어진 군용도로를 따라 등성이로 올라가면 임진강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그리고 전망대를 기점으로 율곡수목원 주변을 크게 감싸고 도는, 5km 길이의 도토리 둘레길이 이어진다. 임진강 전망대와 도토리 둘레길에 대해서는 두어 달 후에 소개하려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들이 취재를 핑계 삼아 봄꽃이 피는 율곡수목원에 한 번 더 들르고 싶기 때문이다.

율곡수목원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95-7
 

■ 주변 가볼만한 곳 
앞서 말한 자운서원, 화석정 외에 황희정승이 머물렀던 반구정과 임진각 평화누리도 가깝다. 임진강을 끼고 있는 파평면 주변에는 매운탕집과 장단콩 두부요리집이 많다. 율곡수목원 주차장 안내간판 하단에는 인근 맛집들의 연락처를 적어놓았다.

 

여러 종류의 단풍나무들이 숲을 이룬 단풍나무원.

 

생태학습장 뒤편의 나무데크와 벤치.

 

키 큰 소나무숲 사이로 걷기 좋은 오솔길이 연결돼 있다.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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