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이 객원기자의 책읽는 사람들
돌봄 주거 활동가 김수동씨 에세이
‘이러다가 100살까지 살면 어떡하냐’
98세 어머니 영주씨와 유쾌한 수다
[고양신문] “아들이 가자길래 남자들만 우르르 오는 줄 알고 망설였지!” 지난 5월 25일, 서로돌봄안녕커뮤니티 모임의 강사로 참석한 신영주씨. 오지 않으려 했지만 일단 왔으니 좌중을 사로잡는 ‘노인력’ 자랑에 20대부터 다양한 연령층의 참석자들은 ‘웃다 웃다’를 반복했다.
북한산 자락의 공동체주택 ‘여백’에 아들 부부와 사는 영주씨는 백내장 수술을 하고 보청기와 보행기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홀로 외출해 새로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스마트폰 때문에 손 근력이 떨어지자 ‘뽁뽁이’를 터뜨리며 재활을 하는 아흔여덟의 ‘명랑 노인’이다. 남들은 쉬라고 할 나이에 그는 당당히 말한다. “지금이 제일 좋아!”
자기답게 하루를 살아가는 이 유쾌한 노인의 일상을 그의 아들이 에세이에 담아냈다. 신간 『이러다 100살까지 살면 어떡하냐?』는 삶의 중심을 당차게 지키는 어머니 영주씨와 그 곁에서 티키타카를 나누는 아들 김수동 저자의 이야기다. 늙어감을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상실’이 아니라, 세월과 함께 새롭게 채워지는 ‘힘’으로 바라보는 영주씨의 일상은 초고령사회를 앞둔 우리를 위로하고, ‘100살까지 살아도 꽤 괜찮다’고 말한다.
이 유쾌한 기록을 쓴 김수동 저자의 이력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다. 원래 그는 0과 1의 디지털 세계에서 밤을 새우며 버그를 잡던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IT 벤처기업 CEO였다. 그러다 도시 한복판에서 홀로 외롭게 늙어가는 어르신들의 풍경을 목도한 뒤, 컴퓨터 코드의 오류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 사회적 ‘외로움과 고립’임을 깨달았다. 그는 미련 없이 돌봄주거 활동가로 인생의 진로를 틀고,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지는 공동체주택에서 10년째 이웃들과 다정하게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수동씨에게 가장 위대한 인생 스승은 책 속 이론이 아니라, 한집에 사는 ‘찐노인’ 어머니 영주씨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어머니와 단둘이 지내며, 그는 예순이 넘어서야 어머니라는 한 사람의 깊은 내면을 비로소 바라보게 됐다. 큰아들의 사고와 가계의 몰락이라는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도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삶을 견뎌낸 영주씨. 그 담담한 ‘냉정함’ 속에는 기초노령연금을 아껴 모은 돈으로 청년 공동체주택 기금 ‘터무늬있는 소셜예금’에 최고령 시민출자자로 참여하는 깊은 온기가 숨어 있었다. 효도라는 거창한 의무감 대신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친구 같은 모자의 이야기는 돌봄이 희생이 아닌 일상의 다정한 동행임을 증명한다.
2년 4개월여 동안의 원고 작성과 편집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 신간 『이러다 100살까지 살면 어떡하냐?』(생각비행)는 영주씨가 보여주는 네 가지 삶의 힘을 담아냈다. ‘최고령 시민출자자’로서의 자존력, 가족 밴드와 다정한 이웃 울타리 속에서 다져진 관계력, 변화하는 몸과 디지털 세상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적응력, 그리고 소유보다 공유를 택하며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생력이 그것이다.
이 책은 노인을 단순히 ‘돌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질문을 던진다. 영주씨의 삶이 증명하듯, 노인은 의존적인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의 당당한 주체이며, 돌봄이란 시설이나 희생이 아닌 ‘친구 같은 관계 속 일상의 동행’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책의 제목은 출판사 편집자가 원고를 읽고 제안한 한마디에서 탄생했다. 자칫 어둡고 무겁게 흐르기 쉬운 노년의 담론을 해학적이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명랑함으로 바꾸어 놓은 결정타였다.
저자는 “이 책은 나만의 책이 아니라 영주씨의 책이자, 나이듦을 함께 고민해 준 이웃과 공동체 덕분에 만들어진 책”이라며 “안티에이징과 노인 혐오가 일상인 세상에서, 100세 시대를 맞이할 중장년들에게 두려움 없이 나이 드는 법을 알려주는 ‘선행학습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각박한 도시 속에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다 떠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아흔여덟 영주씨와 아들 수동씨가 나누는 담백한 일상의 수다는 따뜻하고도 강렬한 답을 건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