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에서 트럼프를 봤다.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라는 미국 드라마에서다. ‘센트럴파크 파이브’로 알려진 미국 실화를 그렸다. 1989년 백인 여성이 잔혹하게 구타당하고 강간당한 범죄가 발생했고, 흑인과 히스패닉계 청소년 5명이 기소되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와 협박으로 범죄자가 된 이들은 6년에서 13년 형을 받았고, 판결 뒤 13년이 흐른 2002년에서야 진범이 자백해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물리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는데도 범인이 된 것은 인종차별과 부정의한 사법 시스템 때문이었다. 드라마에서 트럼프가 유명한 토크쇼에 출연해 실제로 말한 장면이 마치 자료 화면처럼 드라마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었다. 트럼프는 말했다. 누군가는 흑인이 불이익을 받는다고 말하는데, 요즘 세상은 정말 흑인들이 살기 좋다고. 그 당시 트럼프는 무죄를 주장하는 청소년 5명을 사형시켜야 한다며 증오를 선동했고, 큰돈을 들여 사형제 부활을 내건 광고까지 냈다.
드라마는 사건 발생 뒤 30년 뒤인 2019년에 공개됐는데, 당시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였다. 이제는 흑인을 넘어 성소수자와 이주민 등을 향한 차별적인 말로 증오를 선동하는 그의 현재가 30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차별이 만연할수록 당신도 그 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듯하다. 드라마에서 트럼프의 등장으로 30년 전 사건을 그저 반복하지 말아야 할 부끄러운 역사로 끝낼 수 없는 지금의 현실과 연결된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실까지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장에 안창호 후보자를 지명했다. 사랑을 외치며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과 달리 성소수자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설파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데 앞장서 온 이가 안창호 후보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국제 인권 규범에 따라 2000년대 중반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혐오를 선동하며 이를 반대해 온 인사를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로 지목한 것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다.
‘센트럴파크 파이브’ 사례와 같이 무고한 이들을 범인으로 몰아 감옥에 가둔 것이 인종차별이다. 차별을 선동했던 이가 일상에서의 차별로 상처받거나 경험한 피해를 구제할 노력이나 하겠는가.
또한 ‘센트럴파크 파이브’를 감옥에 가두고 출소하고서도 범죄자 낙인으로 고통받게 만든 것은 부정의한 사법시스템이다. 이를 시정할 인권을 위한 법을 만들도록 정부와 국회가 일하게 해야 하는 기관이 국가인권위원회다. 하지만 안 후보자는 그나마 인권 증진을 위해 조금씩 진보해 온 법을 만들 때마다 반대 의사를 피력해 왔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역 도입이나 아동피해자 진술녹화영상 증거능력 인정 등이 대표적이다. 안 후보자 지명은 인권 증진을 위해 일해야 할 국가인권위를 사법시스템마저 퇴행시키도록 앞장서는 기관으로 활용하겠다는 선전포고인가.
안창호 후보자 지명은 차별 선동했던 트럼프를 국가인권위원장 자리에 앉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관의 존재 의미를 뒤흔드는, 맞지 않는 옷을 입히는 인사는 인권 퇴행뿐만 아니라 국민을 절망하게 만들 뿐이다. 지금이라도 철회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