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의 골목나들이] 토당로 뒷골목

고양시 유일 관광호텔 운영됐던 중심상권
신도시 개발 이후 유동 인구 빠지며 쇠락 
‘능곡6구역’ 주택재개발 사업 “재설계 중” 

 
[고양신문] 능(陵)은 임금의 무덤을 일컫는 글자다. 하지만 서울 주변부 지역에는 임금의 능이 없음에도 지명으로 사용한 동네들이 있다. 마치 능을 연상케 하는 왕족이나 권신들의 커다란 무덤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양의 오랜 마을 능곡(陵谷)도 그런 경우다. 1904년 경의선 철로가 놓였고, 야산 기슭 큰 무덤들이 많았던 능골마을 인근 기차역을 능곡역(陵谷驛)이라 명명하면서 주변 일대를 ‘능곡’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산신도시가 개발된 90년대 이전까지 능곡은 일산, 원당과 함께 고양군의 3대 도심이었다. 인구가 팽창하던 80년대 후반 고양군은 가칭 ‘일산시’와 ‘원능시(원당+능곡)’로 각각 분리 승격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신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개발되면서 1992년 전국 최초로 군 영역 전체가 시로 승격하는 1호 도농복합시가 됐다.   

가게와 주택들이 뒤섞여 있는 토당로 뒤편 골목길.
가게와 주택들이 뒤섞여 있는 토당로 뒤편 골목길.

평지로 뻗은 시장길, 언덕 이어진 토당로 

앞서 언급했듯 능곡 구도심의 중심은 현재의 경의중앙선 능곡역보다 250m 위쪽에 남아있는 옛 능곡역(현 토당문화플랫폼 1904)이다. 기차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고, 서울에서 들어오는 버스 종점도 있었기에 능곡역전을 출발점 삼아 신작로가 뻗어나갔다.

지도를 보며 옛길과 새 길을 구분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 지형을 따라 곡선으로 이어진 길이 옛길이고, 직각으로 교차하는 길 사이에서 사선으로 뻗은 길이 옛길이다.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구 능곡역 앞 지도를 살펴보면 2개의 옛 도로를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역전 오른쪽 45° 방향으로 뻗은 능곡시장길(지도로 35번길)이고, 다른 하나는 왼쪽 45° 방향으로 언덕을 향해 오르는 토당로78번길(편의상 토당로 본 도로와 구분해 ‘토당로 뒷골목’이라 칭하자)이다.  

둘 중 과거의 흔적이 더 많이 남아있는 길은 토당로 뒷골목이다. 평지로 이어진 능곡시장길 주변은 새 빌라들이 순차적으로 들어섰지만, 낮은 경사를 따라 언덕길을 오르는 토당로 뒷골목에는 여전히 70~80년대에 들어선 상가와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번성했던 옛 시절을 추억하고 있다. 

사뫼 언덕에 세워진 교회와 성당 

능곡역전에서 시작되는 토당로 뒷골목은 나지막한 언덕길을 따라 400m가량을 올라가 토당로104번길을 만나며 끝난다. 이 언덕을 마을 사람들은 ‘사뫼’라 불렀다. 이름의 유래는 일산-이산포-삼성당에 이어 네 번째 산(四山)이라는 설과 한강 모랫벌에 솟은 언덕(沙山)이라는 설이 함께 전해온다. 

골목길 주변에는 능곡의 대표적인 종교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골목길이 끝나는 사뫼언덕 중턱에는 무려 130년의 역사를 간직한 능곡교회(1893년 창립)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고, 골목 중간에는 1980년대 봉헌된 천주교 능곡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능곡교회 130년사』에는 개신교 초기 선교사에 의해 개척된 교회의 첫 이름이 ‘사뫼교회’였다고 밝히고 있다.   

사뫼언덕길 끄트머리에 자리한 능곡교회. 무려 19세기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 중 하나다. 
사뫼언덕길 끄트머리에 자리한 능곡교회. 무려 19세기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 중 하나다. 

짧게 끝나버린 유흥업소 전성기  

두 개의 종교건물이 품는 성스러움과는 상반되게, 골목길 전반에는 세속적 일상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주점, 모텔, 다방, 노래방 등 유흥 관련업종 간판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고양신문 지면을 들춰보면 “능곡역 부근의 유흥업소 난립이 지역사회의 골칫거리로 대두되고 있다”는 기사가 종종 눈에 띈다. 인구가 폭증하고 변변한 휴식과 레저 수단이 없던 시절, 고강도 노동의 스트레스를 음주와 유흥으로 해소했던 게 80~90년대의 흔한 풍경이었던 것 같다. 

그 정점을 상징하는 건물은 옛 능곡역전 왼편의 행주관광호텔이었다. 고양군 최초의 관광호텔이었던 이곳에는 나이트클럽과 커피숍, 사우나, 연회장 등 번듯한 시설을 자랑하며 경기서북부를 대표하는 호텔로 한동안 유명세를 누렸다. 

지금은 요양병원으로 운영되는 옛 행주관광호텔 건물.
지금은 요양병원으로 운영되는 옛 행주관광호텔 건물.

하지만 불야성 같았던 토당로 뒷골목의 호황은 짧게 끝났다. 90년대 일산·화정에 상업지구가 개발되며 유동 인구가 빠져나갔고, 2001년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며 김포공항과 가깝다는 행주관광호텔의 장점도 사라져 버렸다.       

규모와 입지가 양호한 행주관광호텔 건물은 현재 요양병원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토당로와 뒷골목에 즐비하게 늘어선 소규모 유흥업소들은 새로운 용도로 변신하지 못한 채 여전히 낡은 간판을 내걸고 있다. 

수십년 전 문을 연 소규모 유흥업소들이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다.
수십년 전 문을 연 소규모 유흥업소들이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다.

레트로 감성 타고 입소문 난 가게들  

물론 골목에 유흥업소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천쌀상회, 은혜떡집, 재오철물, 백마할렐루야한복 등 시장 상권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소매 업종들을 지금도 만나볼 수 있다. 상호를 살펴보면 능곡유리, 능곡수선, 능곡다방 등 ‘능곡’을 붙이 이름들이 많다. 반면 주교동과 성사동의 구도심에서 흔히 발견되는 ‘고양00’과 같은 이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군청·시청이 있었던 원당에서 ‘고양의 중심 동네’라는 자부심이 읽힌다면, 능곡에서는 ‘독자적 상권’이라는 자의식이 읽힌다.

상호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가게가 문을 열던 시절의 유행 업종과 작명 트렌드를 만나는 재미가 있다. 백만불양복점, 실비식당, 금성양품샵, 메리야스, 신문지국, 바둑교실, 속셈학원 등은 신도시 상업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간판들이다.    

70~80년대 맞춤양복 명소였던 백만불 양복점.
70~80년대 맞춤양복 명소였던 백만불 양복점.

이들 중에는 레트로 감성과 맞물려 유명세를 얻은 매장도 몇 곳 있다. 역전과 가까운 골목 초입의 능곡할머니북어탕은 1970년대 초에 장사를 시작해 반세기가 넘는 업력을 자랑하는 집이다. 반건조 북어를 푸짐하고 칼칼하게 끓여내는 솜씨가 SNS를 타고 알려지며 한때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또한 백만불양복점 바로 옆에 간판도 없이, 탁자 4개 놓고 전화 예약만 받아 장사를 하는 실비식당은 ‘반찬이 무려 25개 나오는 초가성비 식당’으로 은근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중소벤처기업부 선정 ‘경기노포 백년가게’로 선정된 기름집 백양상회는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50년 전통을 자랑하며 입소문이 난 ‘능곡할머니북어탕’.
50년 전통을 자랑하며 입소문이 난 ‘능곡할머니북어탕’.

80년대 능곡 대표 건물 ‘허스프라자’ 

상호 중에는 쌀과 담배를 함께 파는 ‘깃발쌀상회’, 할인마트였다가 문을 닫은 ‘베스티즘’ 등 궁금증을 동시에 자아내는 재미난 이름들도 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옛 지명을 사용한 간판들도 지나치면 아까운 도시화석들이다. 토당로 큰길 중턱 ‘지도식당’은 1992년 시승격 전까지 사용됐던 행정구역명인 지도읍(知道邑)의 기억을 호출하고 있고, 토당로 북쪽에 신축된 롯데캐슬아파트 사이에 남아있는 옛 건물 허스프라자에 자리한 ‘사뫼순대국’은 토박이들만 아는 지명을 상호로 삼았다.     

사뫼순대국이 있는 허스프라자는 80년대 초 능곡 상권이 북쪽까지 확장됐음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원일산, 토당동, 관산동 등 고양 구도심 곳곳에 인상적인 디자인의 공동주택(허스맨션, 허스아파트)을 지었던 허스산업개발이 당시로서는 고양군 최고층인 5층 상가로 지어 올린 건물이 허스프라자다. 한때 허스예식장과 연회장 등이 성업했던 이 건물은 43년이 지난 지금도 붉은 벽돌로 지은 단정한 외관을 유지하고 있다. 외벽에는 ‘허스예식장·회관’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여전히 선명하고, 자세히 보면 벽돌을 입체적으로 붙여 디자인한 특유의 ‘HURS’ 로고도 찾을 수 있다. 허스프라자는 고양신문에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데, 1989년 고양신문이 창간호를 낸 첫 사무실이 바로 이 건물 지하였기 때문이다.

능곡의 랜드마크 건물 중 하나인 허스프라자.
능곡의 랜드마크 건물 중 하나인 허스프라자.

도시기능과 조합 사업성, 해법 찾아질까

현재 능곡역 앞을 지나는 메인도로는 토당로다. 앞서 살펴본 길들보다 늦게 만들어졌지만, 토당로 역시 수십 년 전에 닦은 옛길이기는 마찬가지다. 옛 능곡역을 기준으로 행주대교 방향으로는 4차선으로 확장됐지만, 북쪽으로는 여전히 편도 1차선의 좁은 찻길이 언덕을 오른다. 길 양편으로는 가로수로 심은 플라터너스들이 주변 건물 두세 배 높이로 훌쩍 자라서 어딘지 불균형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오늘 살펴본 토당로 뒷골목도 마찬가지다. 동쪽으로는 성원상떼빌, 서쪽으로는 한라비발디, 북쪽으로는 롯데캐슬엘클라씨 등 신축 고층아파트들이 순차적으로 들어섰지만, 골목의 풍경은 변화에 한참 뒤처진 채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토당로 거리 풍경. 오래 전 심은 플라터너스 가로수들이 커다랗게 자랐다. 
토당로 거리 풍경. 오래 전 심은 플라터너스 가로수들이 커다랗게 자랐다. 

‘도시기능+사업성’ 절충 고심하는 능곡6구역 

오늘날 능곡 구도심은 십수년 전 설계된 원도심 주택재개발(뉴타운) 사업지역에 따라 영역이 구분된다. 오늘 살펴본 토당로 일대는 ‘능곡6구역’에 속한다. 고양시 주택재개발 사업은 이주가 거의 마무리된 능곡2구역, 능곡5구역 사례에서 보듯 최근 들어 조금씩 활기를 되찾는 분위기지만, 능곡6구역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상업기능을 확대하라는 고양시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시행계획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도시기능 회복과 상권활성화, 조합 측의 사업성을 균형 있게 아우르는 계획이 모습을 드러내게 될까. 토당로 뒷골목의 수년 후 풍경이 궁금해진다.     

소규모 상업건물들이 이어지는 토당로 뒷골목.
소규모 상업건물들이 이어지는 토당로 뒷골목.
백년가게로 선정된 기름집 '백양상회'. 
백년가게로 선정된 기름집 '백양상회'. 
사뫼언덕 오르막길 중턱에 자리한 능곡성당  
사뫼언덕 오르막길 중턱에 자리한 능곡성당  
능곡 구도심의 중심이었던, 구 능곡역 건물. 지금은 리모델링을 거쳐 토당문화플랫폼(능곡 1904)으로 사용되고 있다. 
능곡 구도심의 중심이었던, 구 능곡역 건물. 지금은 리모델링을 거쳐 토당문화플랫폼(능곡 1904)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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