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게 나무에 부처 새기는
'불모' 허길량 목조각장
500문수동자·500문수보살부터 33비천까지
58년간 전국 사찰에 불상과 목각탱 조성
벽제동에 장인·시민 함께하는 전통공예촌 꿈꿔
[고양신문] “아침에 기분이 안 좋으면 부처님 얼굴은 조각하지 않아요.”
반세기 넘게 나무에 부처와 보살을 새겨온 목조각장 허길량(73). 그는 불모(佛母)다. 불상과 불교조각을 만드는 장인을 이르는 말이다. 열다섯 살에 조각칼을 잡은 그는 1977년 ‘천수천안관음보살상’으로 불교미술대전 대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고,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보유자로 인정됐다. 오대산 중대사자암의 ‘500문수동자·500문수보살 목각탱’과 10여 년에 걸쳐 완성한 ‘33비천’ 연작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전국 사찰에 불상과 목각탱을 조성해 온 그는 15년 전 고양시 벽제동에 자리를 잡고, 일흔을 넘긴 지금도 파주의 공방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반세기 동안 전통의 도상과 조형을 익혀온 그의 시선은 이제 ‘아직 없는 작품’을 향한다. 경전에는 기록돼 있지만 형상을 얻지 못한 존재를 찾아 나무에 새기는 것이다.
“있는 것을 답습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에 없는 작품을 탄생시키는 겁니다. 그런 작품이 100년 후에 문화재가 되는 것이지요.”
또 하나의 시선은 다음 세대를 향한다. 그가 구상하는 공간은 벽제동의 ‘전통공예촌’이다. 목조각·불화·단청·도자 등 여러 분야의 장인들이 한곳에서 작업하고, 시민들이 장인의 손을 가까이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다.
열다섯에 잡은 조각칼, 불모(佛母)가 되기까지
1953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허길량과 조각의 인연은 어린 시절 시작됐다. 가난 때문에 잠시 산사에서 지내며 스님들이 흙으로 형상을 빚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 손재주를 눈여겨본 한 스님은 어머니에게 기술을 가르쳐보라고 권했고, 초등학교를 갓 마친 열다섯의 소년은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공예사가 밀집한 을지로를 찾아 들어가 문을 두드린 곳은 목공예가 서수연이 운영하던 공예사였다. 숙식을 해결하며 낮에는 심부름과 사포질을 하고 선배들의 손놀림을 어깨너머로 익혔다. 모두 퇴근한 밤이면 혼자 조각칼을 들었다. 하지만 나무를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자에서 불교조각을 하는 불모가 되기까지는 또 다른 배움이 필요했다.
전환점은 범종에 들어갈 비천상 목형 제작이었다. 솜씨를 알아본 이의 권유로 불교미술가 이인호 선생에게 초본을 배우고, 이후 우일 스님의 문하에서 불교조각을 익히며 금호에서 보응·일섭으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 불교미술의 맥을 이었다.
배움은 도제식이었다. 스승이 “인중이 너무 길다”, “턱은 얼굴 전체를 받쳐줘야 한다”고 한마디씩 짚어주면 다시 나무를 깎으며 비례와 조형감각을 익혔다.
평면의 비천을 입체로 일으켜 세우다
그의 작품세계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33비천’이다. 성덕대왕신종과 상원사 범종, 사찰 건축과 석조물 등에 남아 있는 전통 비천의 도상을 연구해 평면과 부조에 머물던 비천을 독립된 입체 목조각으로 옮겼다.
큰 소나무 통목을 여러 조각으로 이어 붙이지 않고 한 덩어리 그대로 깎아 얼굴과 손, 악기와 바람에 날리는 천의까지 빼냈다. 단단하고 무거운 나무에 비천 특유의 가벼운 움직임을 담았다.
작품은 나무를 고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한 번 칼을 대면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재료를 고르는 일도 신중하다. 나이테를 살피고 곧게 자랐는지, 속에 흠은 없는지를 꼼꼼히 본다.
“나무가 결국 부처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지요.”
오대산 중대사자암의 대형 목각탱에는 500문수동자와 500문수보살, 모두 1천 존을 새겼다. 수많은 존재가 한 화면에 등장하지만, 같은 얼굴과 몸짓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았다. 설악산 오세암의 오세동자상처럼 작은 형상에서도 각 존재의 표정과 성격을 살리는 데 공을 들였다.
불상의 얼굴을 새길 때는 더 신중하다. 그에게 불상은 단순한 조각품이 아니라 누군가 절하고 기도하며 오래 바라볼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예술성과 신앙성 사이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그래서다.
그가 좋아하는 얼굴은 지나치게 갸름하고 매끈한 얼굴보다 조금 크고 둥글며 넉넉한 인상의 조선시대 불상이다. 마음이 흐트러진 날에는 아예 얼굴에 칼을 대지 않는다. 조각하는 사람의 마음이 칼끝을 타고 형상에 남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반세기 동안 이어온 그의 작업에는 이제 다음 세대를 위한 자리도 커지고 있다. 벽제동에 구상 중인 전통공예촌은 자신이 익혀온 전통을 후대에 건네기 위한 또 하나의 작업이다.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혀야 했던 어린 시절과 달리, 다음 세대가 장인의 손을 가까이에서 보고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목조각은 제 인생입니다.”
열다섯에 조각칼을 잡은 뒤 반세기 넘게 나무에서 부처와 보살, 비천을 찾아온 허길량. 이제 그에게는 100년 뒤에도 남을 작품을 만들고, 자신이 이어온 전통을 다음 세대에 건네는 일이 남아 있다.
[주요 약력]
1953 전남 순천 출생
1977 ‘천수천안관음보살상’ 불교미술대전 대상 수상
1979 신라미술대전 특선
1990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2001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보유자 인정
2002 첫 개인전 「33관음 속으로」
2014 두 번째 개인전 「소나무 비천되어」(예술의전당)
2022 세 번째 개인전 「박달 다듬이목 53선재동자·동녀 되다」
2025 네 번째 개인전(세종문화회관) 개최
밀라노·프랑스·뉴욕 등 해외 박람회 및 전시 다수 참가
(사)불교미술일섭문도회 이사장 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