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일(시청 문화재 전문위원)

지난 1일 서오릉의 명릉이 전면 개방되어 34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 왔다.
 
서오릉에는 세조의 아들인 덕종(추존 왕)을 모신 경릉을 비롯하여 창릉(예종과 안순왕후) 홍릉(영조 비 정성왕후) 익릉(숙종 비 인경왕후) 명릉 이렇게 다섯 기의 능이 있으며 이외에 장희빈으로 알려진 대빈 묘소와 수경원, 순창원이 포함되어 있다.

이 다섯 능 중에서 가장 면적이 넓고 특이한 능상 배치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 바로 명릉으로 19대 숙종과 그의 계비 인현왕후와 제2계비인 인원왕후를 모신 곳이다.

명릉은 그동안 군 보안상의 이유로 비공개 능역 이었으나 시의 계속된 개방 요구와 문화재청, 군 당국의 협의로 전면 개방되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렵게 개방된 이곳 서오릉의 명릉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화적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첫째 명릉은 우리나라의 여러 능역 중에서 그 크기가 가장 작은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둘째, 우리나라 조선시대 왕릉 조성의 분기점이 되는 중요한 능역이다. 명릉의 여러 조각 수법이나 왕릉 조성 방식이 전기와 후기의 능 제도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셋째, 특이한 왕릉 배치인데 숙종이 왕비가 아닌 계비와 함께 하나의 능역을 이루고 있으며 인원왕후의 경우 숙종의 뒤편에서 그 방향을 서향으로 자리한 특이한 배치 방법을 보이고 있다.

넷째, 능상 위의 여러 석물과 난간석 등을 자세히 보면 그 금석문적인 가치가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무인석의 귀면이나 옷의 무늬, 얼굴의 세밀함, 생동감 넘치는 조각 수법은 과히 뛰어난 당대 최고의 장인이 만든 예술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밖에도 명릉은 다른 능과는 달리 무덤 바로 앞 지점인 능상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능상 개방은 능 아래 50-100m 아래에서 석물과 같은 유물을 관람하던 것과는 달리 바로 앞에서 만지거나 세밀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34년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명릉.  단순한 무덤의 개방이라는 의미보다 살아있는 왕릉얘기를 전할 수 있는 해설사의 배치와 왕릉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우리 가까이에 있는 역사교육의 현장-명릉으로 남길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