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의 장군 은지 등 항일 충신의 얘기 오롯이 담겨있어
흥도동은 원흥동과 도내동 그리고 성사동 일부가 합쳐진 법정동이다. 흥도동 전지역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설정돼 있어 지난 34년간 개축 및 재산권 행사가 막혀있었다. 이곳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짓고 있으며 논농사와 시설채소 그리고 선인장 등의 화훼농업이 주를 이룬다.
고양대로 북쪽에 위치한 3통과 5통은 삼송신도시개발지역에 포함되어 이곳 주민들은 수백년간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옮기게 될 예정이다. 그러나 토지보상문제와 함께 세금과 관련한 농지대토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이 농토를 구입하려고 하는 고양시 인근의 농지값이 너무나 많이 올라 적당한 농지를 대토하기가 힘들어졌다.
흥도동의 대부분은 자연마을로 이뤄져있으며 마을의 역사는 남아 있는 기록만으로도 고려시대에까지 이르고 있다. ‘서울의 무악재 영천 너머에 도래울이 있다’라는 조선조 기록을 보더라도 이곳이 큰 동네였음을 알 수 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그래서 마을마다 유래가 많고 각종 문화재가 즐비하다. 또한 도당굿이나 산제 등 마을행사들도 다양하게 전해오고 있다.
특히 도내동에 있는 봉제산(奉祭山) 산제는 산이름 자체에서 산제의 뜻을 담고 있으며 마을에서 소를 잡는 것을 엄격히 통제했던 일제시대에도 이곳 산제에서는 허용되었다고 한다. 산제를 지내는 단은 거북바위 앞에 놓여있으며 주변히 그 모습이 특이한 소나무들이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도내동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 지역의 영웅 이신의 장군과 관련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신의 장군은 창릉천을 사이에 두고 왜적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왜군의 수가 아군에 비해 훨씬 많은지라 묘책을 내었다. 아군 병사 3백명을 이끌고 몇일 동안 산을 계속 돌아 병사가 많음을 보여 적의 전의를 꺾고 왜적을 물리친 데에서 도래울이라 불렀고 도내리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서는 3ㆍ1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해방 이후 3월 1일이면 학생들이 흥도초등학교에서 이신의 장군묘와 장군대를 한바퀴 돌며 만세를 불렀다고 이세존 고양향교 전교는 들려준다. 그리고 1960년대 초까지도 서재동 서당이 있어 이장우 훈장이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이 전교는 들려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