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 작가, ‘고부일기’ 저자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 조숙한 소녀 셀마

정말 내가 영화제에 갈 줄은 몰랐다. 그것도 국제영화제에.
며칠 전 11일자 고양신문의 12면 기사를 보았다.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에 대한 기사다. 고양시에서 영화제가 열린다는 말이 금시초문이요, 그것도 어린이 영화제라니? 어린이 영화제라고 하면 어린이가 주인공이어야 할 텐데 과연 그런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

그때 내 눈을 꽉 붙잡은 말이 ‘12살 소녀의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우유의 빛깔’. 개막 당일 첫 작품인 이 영화를 놓치지 말아야지. 내 마음은 급히 움직였다. 잊지 말아야지 8월 19일 금요일 오후 7시를.

드디어 그날, 친구 중 가장 마음이 순수하고 명랑해서 어린이영화제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이효순과 함께 덕양어울림누리에 갔다. 두근거리며 극장 안에 들어서니 개그맨 갈갈이 박준형이 마이크로 개막식에 온 우명배우 탤런트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박근형씨가 가족과 함께 일어나 인사를 하는 너머로 안성기 문성근 조형기씨도 보였다. 그리고 너무나 잘 아는 분인데 이름이 영 생각이 안나는 저분이 누구더라? 아, 잘 아는 이인데… 아하 오아시스의 이창동 감독이구나. 생각지도 않게 유명인들을 보니 너무 기뻐 입이 막 벌어졌다.

옆에 앉은 친구를 바라보며 “안성기씨 싸인 받을까요?” “그래요, 알아보는 것도 예의 아닐까요?”
용기를 얻어 수첩과 볼펜을 가지고 가서 “저 싸인 좀…” “아, 오늘 어린이들도 모두 싸인을 못해주었습니다”
정중한 거절,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대스타와 1대1로 대화를 해 봤다는 것이 어딘가.

잠시 후 도깨비 스톰의 현란하고 열정 넘치는 공연이 끝나고 집행위원장 정지영 감독의 개막 인사가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영화 ‘우유의 빛깔’.

초등학교 4학년 쯤 돼 보이는 노르웨이 소녀 셀마 이야기. 태어나면서 엄마를 잃은 셀마는 엄마에게는 자신이 천재지변이라고 여기며 늘 죽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다. 그래서 일까. 곱상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시체놀이를 즐기고, 수영을 해도, 자전거를 타도 결코 남학생에게 뒤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남학생 보기를 돌같이 한다는 세 소녀 그룹의 대장일까. 사춘기여서 사사건건 아빠에게 신경질 짜증을 부리며 화도 잘 내지만 자신도 모르게 남학생에게 향하는 호기심과 관심을 어쩔 수가 없다.

푸른 바다와 녹색 초원을 배경으로 소년소녀들이 티격태격 싸우며 성장해 가는 영화는 웃음을 아주 많이 준다. 늘 심각하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일까 탄생일까, 인생의 가장 큰 천재지변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셀마의 마지막 고백이 달콤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도 아니고 탄생도 아니고 사랑이다. 또 인생의 가장 큰 천재지변은 바로 사랑이다”
남학생에게 지기 싫어 오기로 뱀을 손에 쥐고 집까지 걸어가는 셀마의 용감무쌍한 모습은 귀엽고도 매력이 넘친다.

영화가 끝난 후 광장에서 생전 처음 묘한 광경을 보았다. 레이저 쇼다. 레이저 쇼는 형형색색으로 갖가지 동물과 식물을 공중에 만들어 내어 환상의 세계로 빠트렸다. 어린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레이저 빔 사이를 뛰었다. 그리고 모여 하늘에 커다란 풍선을 띄웠다. 수많은 이들의 싸인이 들은 깃발과 함께, 이렇게 외치면서.

“어린이 날개 달다!!”
그리고 쏘아 올린 폭죽이 캄캄한 하늘에 넓게 퍼지며 화려한 수를 놓고 또 놓는다. 어린이도 어른도 고개를 하늘로 하고 멀리 바라본다. 야! 멋있다. 어, 무서워. 여러 소리가 뒤범벅이 되면서 어울림누리의 밤은 깊어갔다.

돌아보며 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도대체 누구일까? 이렇듯 꿈같은 행사를 처음 생각해 낸 이는. 이 일을 남모르게 준비한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어린이를 위해 이렇듯 찬연한 색깔을 입힌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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