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골이 능곡으로 사용돼
경의선과 교외선의 능곡역이 있는 인근을 우리는 흔히 능곡이라 부른다. 이 능곡은 본래 지도면에 속한 작은 마을이었는데 1900년대 초반에 역이 만들어지면서 능곡이란 명칭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 능곡과 관련된 지명은 현재의 능곡중ㆍ고등학교가 있는 능골마을이었다. 이곳은 토당동에 속한 마을로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흔히 능골이라 불렀다. 능골은 이곳에 본래 왕릉을 쓰려고 하였으나 골짜기가 부족하여 능을 사용하지 못하고 이를 대신하여 임금의 사위에게 주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임금의 사위인 부마 정응두 선생의 묘가 오랜 기간 있다가 개발에 의해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진 상태이다. 이 능곡이란 이름은 이렇듯 왕릉과 같은 큰 무덤과 묘가 있어 붙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생육신 남효온의 유적이 남아 있어
능곡동 관할지역에는 도시화가 추진된 토당동을 비롯하여 총 4개의 법정동 마을이 있다. 이중 능곡역 부근의 토당동은 개발이 이루어져 옛 모습을 보기가 매우 어려우며 나머지 사뫼, 빙석촌 지역도 도시개발로 인하여 그 모습이 크게 변형됐다. 토당동의 마을 중 경의선 너머 삼성당 마을은 비교적 옛 모습이 잘 남아 있다. 마을 중앙으로 일산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마을을 양분하고 있는데 곳곳에 한옥형태의 고가는 물론 나머지 건물들도 단독주택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토당동의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 바로 대장동이다. 크게 웃대장, 중대장, 갈머리(하대장)로 나눠지는데 개발된 지역이 전혀 없는 농촌마을이다. 오래전에 생육신의 한분인 추강 남효온 선생의 유적이 있던 유서 깊은 마을이며 흔히 대재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마을이다.
대장동에서 일산 신시가지 방향에 있는 마을이 내곡동이다. 내곡동은 안골, 뒤꾸지 마을로 나뉘며 영주산과 관련된 산신제와 깻잎, 그리고 곡산이 있는 농촌마을이다. 최근에 외곽순환고속도로가 마을을 지나고 개발제한구역의 해제 등으로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신평동은 한강 자유로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전 지역이 한강 제방보다도 아래에 있는 농촌 마을로 본래는 김포지역이었으나 홍수로 인하여 한강의 물길이 바뀌어 1920년대에 새로이 고양 땅에 편입된 마을이다.
철도 3개 노선이 대곡에서 만나
능곡동에는 경의선을 따라 2개의 기차역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대곡역이며 고양시 유일의 대형 환승역이다. 이곳에서는 북으로 이어진 경의선과 서울방향으로 연결된 일산선 전철이 만난다.
이밖에도 능곡동 지역에는 덕양구에서 가장 크고 넓은 능곡평야가 있고 도시와 농촌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하루가 다르게 고층의 건물과 아파트가 들어서고 새로운 사람들이 이곳 능곡동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곳곳에 옛 우리의 인심이 살아 있고 미래에 대한 발전성을 우리는 이곳 능곡동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앞으로 대곡역과 능곡역에서 북으로 가는 통일의 열차를 만나고 싶다.
정동일 (고양시 문화재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