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괴석과 산봉우리들

기기묘묘하게 형성된 암봉, 암벽, 암석들눈이래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로는 드러나지 않는,//심지어는 장미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하는,/그 고고한 높이를 회복하려면//백운대와 인수봉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기다려야만 한다.<고고(孤高) 일부>시인 김종길은 이처럼 북한산을 찬양하고 있다. 아무리 많은 눈이 내려도 ‘옅은 화장을 하듯 차가운 수묵에 젖어 있는 백운대, 인수봉’의 그 고고한 자태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도 대도시군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산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같이 찬탄을 금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우리 시민들이 이 산을 얼마나 끔찍하게 좋아했으면 기네스북에 오르기(단위 면적 당 사람들이 가장 많은 찾는 산-연평균 500만 명)까지 했을까?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의 작용에 의해 기기묘묘하게 형성된 크고 작은 암봉, 암벽, 암석들과 계곡이 저마다의 특색과 승경을 자랑하고 뽐내고 있다. 저마다 고고해질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있는 듯하다. 바위와 물이 빚어내는 그 높이와 깊이가 신의 은총처럼 조화롭게 펼쳐지고 있다. 청명한 날 그 조화 속에서 가장 높이 솟아오른 백운대에 오르면, 인천 앞바다 그리고 저 멀리 강화도의 마니산, 개성의 송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일산신도시와 주변 아파트 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바라보는 이가 만일 김종길 시인이었다면, 저기 저 백두산인들, 한라산이들 보이지 않았겠는가. 이처럼 북한산은 도시생활에 지친 시민들에게 훌륭한 안식처가 되어 주고 있다.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삶을 통찰하게 해주는 스승의 역할을 해주고도 있다.북한동 이장 봉종옥(73세, 효자1동 통장)씨는 고개를 들어 원효봉을 지그시 바라보며 회상에 빠져든다. 만날 지각해서 손목에 얼음찜질 당하는 벌을 받던 초등학교 시절, 그것이 자기에게는 축복이었다고 말한다. 앞으로 뚜렷한 대책 없이 평생을 살아온 이곳을 떠나야할 것이 근심스럽지만, 이곳에 머물러 있는 지금 그는 북한산으로 인해 행복하다고 말한다.북한산의 주요 봉우리들백운대(白雲臺)는 높이 836m로 북한산 최고봉이다. 태조 이성계가 이 산에 올라, ‘손으로 넝쿨 휘어잡으며 푸른 봉우리로 올라가니/백운 가운데 암자 하나 높이도 자리 잡고 있네/눈에 보이는 곳 다 가져다 우리 땅 삼는다면/오월(吳越)의 강남땅 어찌 받아들이지 못하리’라고 읊은 시구 중에 있는 백운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엔 중봉이라고도 불렸다.험준한 암벽을 노출시키고 있지만, 산마루는 1,000명가량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암반으로 되어 있다. 정상에는 1년 내내 태극기가 휘날리고, 암벽에는 3․1 운동에 대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남쪽에는 백운사지를 비롯하여 작은 절과 암자들이 산재하고, 아래쪽에는 백운수(일명 만수)라는 약수가 있다. 등반 코스는 계곡능선을 따라 사방으로 트여 있다. 가장 많이 이용되는 코스는 우이동, 선운각, 도선사, 용암문, 노적봉, 위문, 백운대 코스이다. 인수봉(仁壽峰) 또한 암벽이 노출된 경승으로, 논어에 나오는 ‘인자요산, 인자수(仁者樂山, 仁者壽)’의 뜻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인수봉 옆에는 조그만 돌덩어리가 하나 튀어나와 있다. 어머니가 마치 아이를 업고 있는 듯하다해서 예전엔 북한산을 ‘부아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남동쪽 기슭에는 도선사 등이 있어 많은 등산객이 찾아든다. 또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암벽등반 봉우리이다. 만경대(萬景臺)은 만수봉이라고도 한다. 또 태조가 무학대사와 함께 이곳에서 국도를 논의했다 하여 국망봉이라 불리어지기도 했다. 해발고도 799.5 m로 삼각산이라고 불리어지는 백운대, 인수봉 중에서 제일 작지만, 봉 이장은 여기서 평생 살면서도 갈라진 바위 사이사이로 보이는 만경대의 만 가지 아름다운 경치를 아직도 십 분지 일도 못 본 것 같다고 한다. 1375년(고려 우왕 1년)에는 큰 비로 봉우리가 무너졌다고 하고, 1597년(조선 선조 30년)에는 이 산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어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했다. 그 후부터는 이곳에서 기우제와 기설제(祈雪祭)를 지낸다고 했다.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황명규(관리과장)는 “능선 상에 있는 북한산성의 용암문이 1994년 복원되었다.”고 했다.황 과장은 “만경대는 아름답지만 험난해서 사고가 많이 생기는 지역이라서 현재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원효봉은 원효대사가 봉우리 중턱에 있는 커다란 석굴에서 삼국통일을 기원했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원효암이라는 암자가 있으며, 정상에 올라가니 넓은 공터가 있었다. 백운대, 노적봉, 의상봉 등의 모습은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광경이었다. 남쪽으로 펼쳐지는 원효봉낙조는 예부터 북한팔경의 하나였다고 한다.노적봉은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서쪽으로 노적사라는 절이 있다. 이명근(62세, 북한동번영회 공동대표)씨는 임진왜란 당시 1593년에 치러진 벽제관전투에서 위기에 몰린 조명 연합군이 밥할머니의 계책으로 볏짚을 노적봉에 쌓아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위장하고, 창릉천에는 석회를 뿌려 왜군을 속여 위기를 모면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보현봉은 대남문 밖에 자리 잡고 있으며 비봉, 문수봉과 함께 남쪽의 주봉을 형성하고 있다. 이 산에서 솟아난 정기는 북악을 통해 서울로 보내진다고 한다. 조선의 태조가 즉위하기 전 안평대군과 유신들이 함께 일출 일몰을 보았던 곳이라고 한다. 절애(絶崖)에 다 닫는 개목현은 이태조가 스스로 수신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대성문 밖 남쪽에 있다.문수봉은 “아이를 원하는 사람이 문수봉 위의 두꺼비 같이 생긴 바위 등에 걸쳐 앉아 축원하면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산봉우리라고 북한산국립공원 황과장이 말했다. 또 남쪽 아래에 있는 문수사는 “고려시대 이래 북한산에 오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찾아들었던 절”이라고 말했다.의상봉은 의상대사가 참선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미륵보살 형태 같다고 해서 미륵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라 그 시대에 쌍벽을 이루고 있던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처럼 원효봉 맞은편에 서서 현대인들이 가야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얼굴 맞대고 앉아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보면 매우 뾰족해 날카롭게 보이지만 정상은 넓고 평탄했다.향로봉은 멀리서 바라보면 향로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구파발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 옆모습 같다. 또 인두봉이라고도 하고 삼지봉이라고도 한다. 정상이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오르기가 쉽지 않지만, 암릉길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고 한다.족두리봉은 멀리서 보면 마치 족두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여인의 젖꼭지 같아 보인다고 해서 젖꼭지봉이라 불리기도 한다. 족두리봉 정상에서 내려갈 때는 매우 위험하다고 한 다.형제봉은 두 봉우리의 높이가 엇비슷하다고 해서 부리어지는 이름이라고 한다. 황고장은 “능선을 따라 일선사를 거쳐 보현봉으로 오를 수 있지만 현재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말했다.비봉은 신라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여기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운 곳이다. 지금은 훼손이 심해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관 중이다.기타 봉우리들(도표)염초봉 원효봉 능선상에 있는 봉우리이다. 원효봉에서 염초봉을 거쳐 백운대로 이어지는 능선은 매우 위험한 암릉구간이므로 초보자는 절대 피해야 한다.용암봉 용처럼 생긴 봉우리로 북한산장 동편에 있다. 일출봉 경사가 완만한 구릉으로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고 한다. 용암봉에서 서쪽으로 뻗어있다. 월출봉 편평한 구릉으로 산 밑에는 태고사가 있다. 달이 떠오르는 곳이라고 하며, 일출봉 남쪽에 있다. 장군봉 최영장군이 접전을 펼치던 곳으로 알려져 붙여진 이름이다. 중흥사지 서쪽에의 자그마한 구릉성 봉우리이다. 반용봉 북한산성 밖으로 튀어나와 벽을 이루고 있다. 자단봉 북쪽에 있다. 자단봉 동장대터가 남아 있는 곳으로 반용봉 남쪽에 있다.덕장봉 주위의 봉우리들이 빙 둘러서서 마치 머리를 숙이고 인사하는 듯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단봉 남쪽, 보국문 밖에 있다. 복장봉 덕장봉과 형세가 비슷하다. 덕장봉 남쪽, 보국문 밖에 있다.영 봉 정상에는 ‘산을 어디라 손대려 하느뇨’라고 하는 시비가 있다.영봉에서 백운대로 이어지는 하루재 구간은 휴식년제로 출입할 수 없다. 숨은벽 1970년 봄 고려대산악회 OB 백경호씨가 활동하던 M.R.S.산악회에서 7개 코스를 개척하고 숨은벽이라 명명하였다. 강담모텡이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돌을 하나 둘씩 쌓아서 탑의 형태를 만들어 놓은 ‘강담모텡이’라고 있다.이 밖에 나한봉, 나월봉, 중취봉, 용혈봉, 용출봉 등이 북한산성으로 이어져 있다.북한산의 주요능선북한산은 산의 규모에 비해 의외로 능선을 잘 발달되어 있었다. 북한산의 양대 봉우리군이라 할 수 있는 정상 주위의 800미터 대의 봉우리들인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에서부터 남쪽의 700미터 대 봉우리인 보현봉, 문수봉을 잇는 산성주능선을 중심으로 사방팔방 거미줄처럼 능선이 뻗어나가 있다. 주요능선은 북한산성을 이루는 산성주능선, 원효봉능선, 의상봉능선 등과 비봉능선, 진달래능선, 형제봉능선, 우이능선, 상장능선 등이 있다. 정상인 백운대와 인수봉 노적봉 등은 주능선에서 다시 지선으로 빠져버린다. 그래서 경기도와 서울시 경계능선은 만경대에서 하루재를 거쳐 영봉을 지나 한북정맥이 시작되는 550봉 우이령을 넘어 도봉산 주능선으로 연결된다. 백운대, 인수봉 소재지는 이런 연유에서 고양시이다.북한산의 물, 폭포북한산성 축성 당시의 일을 기록한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북한산성을 중수했을 당시 북한산 일대에는 적어도 99개의 옹달샘이 있었다 한다. 지금은 많이 없어져버렸다. 왕탁수북한산 중턱에 있는 약수터의 물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옛날에는 임금님들만 마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칠루암하늘에서 일곱 명의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하던 곳국령폭포용혈봉으로 올라가는 중턱에 있다.상운폭포백운대로 올라가는 중간에 있다. 아놀드 토인비가는 “인간의 달 여행에 하나의 의미가 있다면, 달에서 지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성철스님은 "산은 산이다."라고 말했다. 산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가. 산은 인간에게 있어서 경외와 도전의 대상, 또는 자연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마지막 유토피아인가. 우리는 이즈음에서 평생 북한산에서 살아온 봉종옥 이장이 생각하는 산과 우리가 생각하는 산을 비교하여, 우리와 산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한번 바라보는 기회를 가져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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