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반쯤 되는 길이, 상류 1급수 하류 4급수

세월이 기별도 없이 북한산을 찾아왔다.
눈가로부터 붉어져 온몸을 달구더니 산은 나를 잉태했다.
산벚꽃 흐드러지던 사기막골에서 나는 태어났다.
단풍빛을 풍기며 갈대숲이랑 산비둘기랑 뒹굴며 놀다
한강을 만나러 홀로 기약도 없이 길을 떠났다.
말이 좀 많지만 나보다 더 티 없이 맑은
오랫동안 흥국사에서 수양을 쌓아 아는 게 많은
친구들, 세상은 고향보다 더 아름다운가 싶었다.
주택가 골목에는 시커멓고 냄새나는 친구가 있었다.
음식점에서, 공장에서, 양식장에서, 비닐하우스에서
살면 살수록 질 나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나도 성질만 내고 나빠져만 갔다.
이대로 한강을 대해야 하다니, 몇 번을 거듭 태어나야만
단풍빛 훤히 비치는 모습으로 한강에 들 수 있을까
내세에 미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동차를 타고 강변북로에서 자유로로 이어지는 부분쯤을 지나다보면, 가끔씩 메케하기도 하고 거북스런 냄새가 날 때가 있다. 방화대교 옆으로 창릉천을 따라 올라 가다보니 키 큰 수생식물에 가려져 있는 옛 다리(강매동 석교, 고양시 향토유적 33호)가 나타났다.

내팽개쳐 놓다시피 한 이 다리 부근에서 그 냄새가 나는 듯했다. ‘문화재 보호구역’이라는 푯말만 비스듬히 꽂혀있을 뿐, 이름도 소개도 없었다. 우리의 무심과 외면이 우리를 얼마나 해치고 있는지를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그 냄새보다도 더 지독한 듯했다.

창릉천은 북한산 사기막골과 효자원에서 발원하여 효자, 삼송, 창릉, 도내, 화전, 강매동을 지나 덕양산을 끼고 한강으로 유입된다. 행주대첩 때는 행주산성의 해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상류 일부구간에서 서울시를 통과하지만, 줄곧 고양시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 연장 22.5㎞, 지역면적 78.92㎢인 이 하천 주변으로는 퇴적평야가 발달돼 있다. 본래 덕수천으로 불리어졌으나 조선 예종의 능인 창릉이 서오릉에 들어서면서부터 성종 때부터 창릉천으로 부르게 됐다.

지방2급 하천으로 지류로는 덕양구 북한동에서 흘러드는 북한천(청담천, 연장 4.5㎞), 은평구 진관외동에서 각 연장 2.5㎞의 비봉천과 진관천, 덕양구 성사동에서 시작하는 성사천(연장 500m) 등이 있다.
제방이 높은 하천주변에는 마을과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둔치에는 비닐하우스를 비롯해 채소류가 광범위하게 경작되고 있었다.

인근 농경지에는 지류가 잘 분포되어 있어 창릉천에는 보(洑)가 많지 않다. 그리고 그린벨트 영향으로 창릉천은 수도권 근교의 여타 샛강이나 수로에 비해 수질이 양호한 편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하수처리장, 차집관거 등 기초환경시설이 확충된 이후 5급수에서 2∼4급수로 개선돼 붕어와 잉어, 뱀장어, 참게까지 잡히고 있다. 1급수인 상류에서는 각종 플라나리아류, 선충류, 실지렁이, 엽새우류, 톡톡이류, 각다귀류 등이 서식하고 갈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중백로, 할미새 종류, 그리고 수생식물이 개울의 상당부분을 뒤덮고 있어 습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류 쪽에서 손수 만든 찌를 팔며 낚시를 하고 있던 손문현(75세)씨는 비가 오고 난 후 이곳에서 2시간 만에 붕어 30여 마리를 낚기도 했다고 한다. 직접 먹기도 하는데 백로도 찾아드는 것으로 봐서 보기보단 오염이 심하진 않은 것 같았다.

관내 하천을 대상으로 하는 ‘고양 Dream맑은 하천가꾸기사업’ 등을 통해 수시로 하천정화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생태계를 해치는 외래식물인 돼지풀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창포 등 자생식물을 옮겨심으려고 한다. 하천 감시 초소를 운영한다. 이렇게 창릉천에 관심을 많이 갖는 듯하나, 상류 쪽에는 휴일이면 가족과 함께 나와 고기도 구워 먹고 멱도 감고 하지만, 하류 쪽으로는 낚시꾼, 농사꾼 말고는 아무도 찾아들지 않는다.

강매동 석교를 가족들과 손잡고 거닐며, 창릉천 하류에 사는 희귀종 금개구리가 뛰어노는 걸 바라보며 한 때를 즐길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 삼송ㆍ지축택지 개발이 되고 나면 설마 더 심해지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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