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학교
학교도서관이 달라지고 있다. 책 창고이거나 학교 내 도서 대여점 수준이었던 도서관이 종합미디어센터, 지역정보센터로 탈바꿈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시대의 흐름은 교육 내용이 근본적으로 바뀌기를 요구하고 있다. 도서관 리모델링 사업은 그에 부응하는 출발점이다. 그 선두에 서 있는 가람초등학교와 중산초등학교를 들여다보았다. <편집자>
가람초등학교
도서관 정책연구학교
학교도서관 운영 최우수 연구학교로 선정

가람초등학교가 표준이 되고 있는 이유는 놀이와 책읽기를 한 범주 안에 훌륭하게 소화시켰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휴식과 배움을 ‘하나’로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다. 도서관 ‘가람 한솔터’는 크게 △지혜의 샘 △영상의 샘 △정보의 샘 △또래학습터 △열린독서방 △알림터로 구성돼 있다.
학교를 찾았을 때 대출과 반납을 돕는 ‘알림터’에는 4명의 고사리 손들이 반납된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공간을 스스로 정돈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정규 사서 이혜선 교사와 함께 ‘지식의 분류’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 한쪽에 마련된 온돌방(열린독서방)에서는 저학년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인형놀이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만들어낸 대형 팝업북도 전시돼 있어 흡사 놀이방같은 편안한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분기별로 한 번씩 들어오는 신간을 보기도 하고 홈시어터 시스템을 이용해 영화, 음악을 감상하기도 하며 컴퓨터로 e-북을 보는 것은 물론, 빔프로젝터, 터치스크린 등의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학교수업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는 시간을 만끽하기도 한다. 이는 설계를 할 때부터 아이들을 중심으로 놓고 밑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문화’였다. 도서관에 학습이나 교양에 관련된 자료뿐 아니라 진로나 오락, 취미활동에 관련된 자료를 편안하게 열람할 수 있어야 했다. 책을 읽은 후 천편일률적으로 강요되던 독후감도 아이들에게는 부담일 수 있었다. 그래서 교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선생님과 함께 하는 놀이도서관 프로그램’과 ‘친구와 함께하는 놀이도서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보물을 찾아라’시간에는 도서를 찾고 정리하는 놀이를 통해 책의 분류체계를 익혔고 ‘눈이 보배’시간에는 책표지 그림조각 맞추기 등을 통해 권장도서의 표지와 친해질 수 있었다. 저학년들은 △마술교실 △동화구연 △미술표현놀이 △풍선으로 말해요 등을 진행해 책을 비료 삼아 창작의 세계를 넓혔고 고학년들은 △정보를 찾아라 △독서 골든벨 △토론 한마당 △작가와 함께 등 보다 심도 있는 프로그램으로 지적욕구를 키워갔다.
권경숙 연구부장은 “학교도서관이 어떻게 하면 즐거운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고 말했다. “편안하게 자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자기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수업 전 10분 동안 책을 읽는 시간도 내용적 깊이를 더해갔고 자발적으로 책을 찾아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게 되었거나 매우 많이 이용하게 된 비율이 여학생 81.5%, 남학생 77.7%에 이르렀다. 지난 2년 간의 연구과정과 끊임없는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지난 10월 26일 ‘학교도서관 운영 최우수 연구학교’라는 자부심 속에서 진행된 전국 단위의 공개 보고회에는 각 시·도에서 250여 명이 워크숍과 수업공개에 참여해 2년 간의 연구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했다. 권 연구부장은 “프로그램 이해와 현장 적용에 많은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들었다며 “가람초등학교의 도서관 활성화 사례가 전국에서 일반화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중산초등학교
정보의 샘·중산 꿈터
아이들 위해 “교무실 비우자” 결단

박연곤 교감은 “사실 초등학교 교무실은 크게 쓰임이 없는 공간입니다. 교실마다 선생님들의 자리가 마련돼 있고 연구실도 있지요. 한 달에 두세 번 전체회의를 할 때 외에는 사용되지 않지만 발상의 전환은 쉽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교장과 교감이 나서자 해결은 간단했다. 교사들도 학부모들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교육청에서 4천2백만 원의 지원을 받고 학교예산을 합쳐 도서관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입구에 감시자 내지 안내인처럼 대출창구를 배치하던 방식을 탈피해 도서관 한 가운데 동그랗게 둥지를 틀었고 수업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열람실로 나누어 투명벽을 설치했다. 학습공간은 모둠활동이 가능하도록 책상을 두었고 칠판도 전자식으로 바꾸어 큰 화면을 통해 책을 모두 함께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폭신한 소파로 벽을 둘러 아이들은 두 다리를 쭉 뻗고 편안하게 책 읽기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실제 취재를 갔을 때 아이들은 도서관 바닥에, 소파에, 혹은 책상에 붙어 앉아서 자유롭게 독서삼매경에 빠져있었다.
하드웨어만 그럴 듯 하고 학생들이 찾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았다면 도서관리모델링 사업도 수많은 전시행정 중 하나가 됐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도서선정위원에 학부모를 참여시키고 학생들도 보고싶은 책을 건의할 수 있도록 창구를 활짝 열었다. 작년 한 해에만 9천여 권을 구입해 장서 수는 1만3천 권을 헤아리게 됐다. 학교에서는 예산의 5%를 꼬박꼬박 도서구입에 투자했고 학부모들이 도서바자회를 통해 힘을 보태면 그 돈으로 또 책을 샀다.
장소를 옮겨 쾌적한 공간에 보고 싶은 책들을 들여놓자 아이들은 큰 노력 없이도 바로 반응을 보여왔다. 하루 50∼60명에서 이용학생이 350명 선으로 크게 늘었다. 등교하는 시간에 맞춰 문을 여니 아이들은 때를 가리지 않고 도서관에 드나들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후까지, 아이들은 책과 더불어 지내다 돌아갔다. 도서관에서 만난 신현지 학생(여·4학년)은 “학원에 가기 전까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오락하는 시간도 줄었다”고 말한다.

도서관 학부모 도우미 임선희(37)·김신아(40)·장미희(36) 씨는 학교에 신간들을 많이 비치해 부모들의 부담이 덜해졌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책을 더 많이 사달라고 졸라요. 학교에서도 읽고 집에서도 읽고…. 생활이 되니까 그런 것 같아요”라고 반긴다. 5층에 도서관이 있었을 때는 큰맘먹고 찾아야 했지만 교무실을 도서관으로 개조한 후에는 아이들이 오가며 들를 수 있게 돼 “교장, 교감선생님의 결단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중산초 김재욱 교장은 “행복한 아이들을 볼 수 있다면 모자람이 있더라도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교사와 학부모들의 참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학교의 변화는 교장과 교감의 변화로부터 출발하는 만큼 좋은 모델이 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강희정 사장
chesarae@dreamwiz.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