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기 위해 도시로 몰려든다. 그리고 그들은 공간을 점유한다. 일하거나, 거주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어떤 오락을 즐긴다 하여도 그들은 어떤 한정된 공간이나 장소를 떠날 수 없다. 그래서 산다는 것 자체가 공간을 어떻게 점유할 것인가 하는 싸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공간은 늘 한정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땅'은 항상 유일무이하다는 속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복제할 수도 없고 확장 불가능한 점들의 연속인 '땅'은 결과적으로 공유되지 않는 한 첨예하게 대립될 여지를 내포하게 된다. 그러다 인구가 증가하여 더 이상 한정된 공간이 극점에 달하면 오직 두 가지 방법만이 도시를 불가능에서 탈출시킨다.

그 하나는 수평적 확장이다. 예컨대 신도시 개발이나 도시의 영역을 넓혀 나가는 방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수직적 확장이다. 한정된 점을 수직으로 쌓아 올라가는 것이다. 뉴욕의 마천루나 고층 아파트, 도심의 오피스용 고층 빌딩들이 다 수직적 확장을 의미한다. 그래서 도시의 문제는 어떨 때 적절한 영역 속에서 적절한 밀도를 유지하는가 하는 점으로 귀결된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공간을 물리적인 수치로만 따지는 사람들의 한계이다. 문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복합적인 인자들이 작동하여 도시를 움직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심지와 변두리, 법적으로 허용 가능한 건축 면적과 가능한 용도의 지정 (상업지역과 주거지역, 공업지역 등) 사회계층별 공간점유의 특질(예: 강북과 강남) 등 너무나 다양해서 다 거론하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따라서 지구상의 모든 도시들은 살기 위해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과 앞으로 증가할 사람들까지를 예측해서 그들이 보다 인간답게 쾌적하고 안전하게 그들의 삶을 영위하게 하기 위해서 '도시계획'이란 학문과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 의미의 도시계획이란 도시를 운영하려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위안이 될 뿐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변화하는 거대도시들의 운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가치관'의 표현이라고 본다면 우리들의 지난 30여 년 간 신봉해 온 가치란 무엇인가? 특히 도시를 만들고 공간을 만들고 건축을 해온 밑바탕에 지속적으로 개입해온 가치란 화폐로 환원될 수 있는 효율성과, 어떻게 해서든 타인과 구별되려는 차별성과, 소위 선진국에서 검증된 적이 있는 사례들과 형상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일시로 요약해 볼 수도 있겠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도시를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고 우리들의 이웃을 적대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형제애로 포용해주며 도시의 역사의 흔적과 자연을 모성애로 보살필 준비가 되어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도시에서 살 자격을 얻는다. 다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누구도 우리들을 위해서 가장 이상적인 모든 것을 만들어줄 사람도, 조직도, 정부도, 미래도 없다는 사실이다. 시민들 스스로 그들이 도시 속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어떠한 형태로든 지속하지 않는 한 우리들은 다만 통계의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다.

※ 이 글은 한뫼여성문화공간 추진위원회 토론회에 발제문으로 채택된 것입니다.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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