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지역문제의 해결에 있어 정부와 기업 등 지역공동체 바깥으로부터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지역공동체 내부의 기관들, 기업들, 학교, 병원, 복지관, 시민단체, 주민자원봉사자 등 내부의 자원을 결합하고 주민들의 능동적 참여를 조직하는 모델 개발도 커뮤니티 형성운동에서 고려해 볼 점이다.
그런데 주민자치센터의 건설은 풀뿌리공동체운동 전개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단계적으로 읍·면·동사무소를 주민자치센터로 전환하는 이 사업은 장기적 관점을 갖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벌이는 데 있어 다음의 두 가지 기본방향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주민참여와 자치, 즉 민간이 운영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커뮤니티 형성, 즉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개척해나는 데 있어 지역사회의 여러 구성부분들이 유대감을 갖고 파트너가 되어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건설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민자치센터는 기본적으로 제3섹터적 운영원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전해야 한다. 주민자치센터의 구성과 운영은 권력위임을 기초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연장선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기초자치단체는 시·군·구단위이고 동사무소의 자치센터전환으로 최하행정계층도 시·군·구로 되고 있다. 선거에 의해 권력을 위임해 통치하는 단위로서는 시·군·구가 최하이고 이제 동단위는 새로운 운영원리, 즉 민간자발적이고 비영리적이고 자원적이고 자치적인 공동체(community)의 형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주민자치위원 구성에 있어서도 대의성(대표성)을 둘러싼 불필요한 갈등과 경쟁을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지방의원들이 위원장자리를 요구하는 문제가 그렇다. 구의원들은 해당 지역구를 대표해서 지방의회에서 발언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자신을 역할을 다하는 것이며, 주민자치센터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자원봉사자로서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지역사회에 헌신하는 그런 자격인 것이다. 그것은 동장이나 다른 참여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민자치위원의 구성은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자생적이고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여러 단체, 모임, 기관에서 파견한 위원들과 프로그램 관련 동아리 대표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여 실질적인 센터를 운영해나가는 협의회가 되어야 한다. 활동력있는 봉사자들로 구성되어야 하고 여성과 청년들이 많이 결합해야 한다.
다음으로 시설이용과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서도 앞의 원칙들이 적용되어야 한다. 주민자치센터는 행정서비스의 대행기관이 아니다. 주민참여와 자치를 진작하는 기능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시민자치방(사랑방, 동아리방, 자원봉사방, 모임방 등)을 강화하고 1단체 1책임프로그램제를 도입하여 지역사회의 여러 단체와 모임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여타 민간부분의 프로그램과 경쟁하지 말고 보완하거나 네트워크 기능을 해야 한다.
또 주민자치센터로의 전환을 추진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점이 깊이 고려되어야 한다. 단계론적 접근을 하지 말고 초기부터 주민참여와 자치, 커뮤니티 건설이라고 하는 기본방향을 유지하고 그를 위해 필요한 요건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행정편의적이거나 계도적인 입장에 서서는 안된다. 행정개혁이나 제도적 조건을 만드는 것은 과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주민참여의식의 부재나 민간역량의 미성숙을 이유로 형식적으로 추진하거나 기존 기득권층이 변형된 형태로 자리잡음으로써 새로운 물결이 만들어지고 채워지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시·구단위에서의 종합적이고 유기적인 배치(자치센터간, 외부 관련시설간)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 지역주민들에 대한 홍보와 센터운동주체에 대한 교육과 지원이 매우 절실하다. 이를 위해 민·관합동추진반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민자치센터를 매개로 생활권 단위에서의 주민과 밀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주민들의 자치적인 모임을 조직하며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로 연결하는 것을 풀뿌리공동체운동의 주요한 사업방법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은 전형적인 풀뿌리공동체활성화 프로그램으로 적용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원래 일본에서 시행된 프로그램인데 놀이터, 공원, 하수처리장 등 공공시설의 건축과 유지관리와 관련하여 지방행정의 발상을 전환하여 - 하드웨어적인, 시설의 디자인에서 소프트웨어적인 즉, 사람들의 생활을 디자인하는 쪽으로 발상을 전환 - 그 과정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마을의 제 집단을 참여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우리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의 사람을 중시하는 관점을 높이 평가하고 동네의 시설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공동체활성화로 연결시키고 그 과정에의 주민참여와 조직화를 주요한 방법으로 채택해야 한다.
그런데 이 마을만들기와 같은 프로그램을 주민자치센터와 결합시켜 보면 좋은 풀뿌리공동체활성화모델이 되지 않을까? 시범기간의 주민자치센터프로그램의 대표적인 것이 주부노래방과 인터넷카페였다. 물론 그러한 복지서비스적 프로그램도 주민들이 친숙하게 주민자치센터를 이용하게 하는 매개는 되겠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구성하고 동네의 관심사를 논의하여 놀이터도 바꾸고 문화제도 개최하고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자치센터프로그램이 어디 있겠는가?
주민자치센터는 본래 '시설'의 개념이다. 이제까지의 행정사무소기능에서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회의하고 모임하는 자치방이나 교육실, 정보센터, 문화의 집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그릇에 담길 새로운 내용을 채우고 그 내용-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공동체적 생활문화와 의식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우리와 같은 풀뿌리시민단체의 역할이다. 우리가 주민들과 함께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 즉 동네하천 생태기행, 마을축제, 방과후 학교, 지역화폐, 각종 강습과 교육 등등 이 모든 것이 주민자치센터라고 하는 그릇을 채울 우리의 내용인 것이다.
지역사회를 공동체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사회의 여러 민간기관들, 학교, 종교기관, 복지기관, 언론사, 상공업기관들과 관계를 트고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또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각종 위탁사업 및 프로젝트 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문화, 복지, 환경, 교육, 건강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회적 서비스는 과감한 민간위탁이 행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관이 이것을 민영화와 같이 단순히 행정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고 주민의 참여라는 측면, 민간섹터의 활성화와 장점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도록 잘 유도해야 한다.
주민자치센터에 대한 풀뿌리운동조직들의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이미 시범실시단계를 넘어 도시지역에는 올해 말부터 전면적으로 실시된다. 가능한 모든 인맥과 정보를 동원하여 자치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향후 사업을 위해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주민자치센터에의 참여방법으로 프로그램별 위탁참여도 고려해 볼 수 있고 주민자치센터가 특성화된 기능(문화센터, 교육센터, 정보센터 등)으로 운영될 경우에는 센터운영전반을 위탁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자원봉사자로 참여, 공간활용, 프로그램 제공 등 여러 가지 참여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민자치센터사업과 풀뿌리공동체운동의 경험을 공유하는 전국적인 민간네트워크의 형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전국각지에서 지역주민과 밀착하여 운동하고 있는 풀뿌리시민단체들은 그 수가 많고 다양하며 활동가들도 높은 헌신성으로 일하고 있지만 대개는 고립분산적인 활동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들 단체와 활동가들간에 상호 정보와 활동경험을 공유하고 공동의 지향을 확인해가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다. 단일한 사회적 잇슈에 대응하거나 전국차원의 정치적 힘의 결집을 의도했던 과거의 연대운동과 달리 일상적인 생활상의 주민자치공동체운동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는 매개 지역의 운동이 독자성을 유지하고 상호관계형성에서 상생과 협력의 원칙을 견지해나가는 네트워크방식이 필요하다. 주민자치센터사업은 풀뿌리단체들의 다양한 사업을 매개하고 연결해 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이 사업을 장기적 관점을 갖고 꾸준히 전개한다면 풀뿌리공동체운동 활성화에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열린사회시민연합 사무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