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이 말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네는 ‘봄을 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지난 겨울은 참으로 푸근했다. 겨울이 푸근하니 헐벗은 이들은 그나마 덜 추웠으리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지만 그 이유가 이상기온 때문이라면 걱정이 된다. 그냥 그대로 봄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봄옷 차림으로 나들이를 했다가는 얼어 죽기 십상인 매서운 꽃샘추위가 사람을 놀래 켰다.
어제는 뜻하지 않게 신춘음악회에 다녀왔다. 추위를 뚫고 다녀 온 보람이 충분할 정도로 음악회는 만족스러웠다. 내 마음의 봄이 열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는 게 각박해서 요즘 사람들은 감동할 만한 일이 별로 없다. 그저 우리 앞에는 피하고만 싶은 너절한 일상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아주 작은 호의에도 눈물이 왈칵 솟을 만큼 고마울 때가 있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신춘 음악회, 이름만으로도 봄이 느껴지는 그런 자리였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서울과 어른이 되어 찾은 서울을 또 다르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문화적 정취가 곳곳에 살아있음을 나이 먹어 알게 된다. 정동과 광화문, 골목골목에 숨어있는 아련한 추억들이 하나씩 되살아나는 그곳은 찌든 일상을 뒤로하고 종종 걸음으로 문화의 현장을 찾는 이들로 넘쳐났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은 봄의 소리 왈츠에는 봄의 기운이 가득한 것 같았다. 아름다운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두 시간여의 감동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여전한 찬 기운이 몸을 움츠러들게 했지만 마음만은 따뜻하고 풍요로웠다.
이렇게 나의 봄은 시작되었다. 한의학에서 봄은 발진의 계절이라고 한다. 여리디 여린 싹들이 딱딱한 땅을 뚫고 힘차게 솟아오르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봄에 대한 마음이 남다른 것은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생명은 귀하다. 특히나 어린 생명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가. 비록 아직 찬 기운이 세상을 다 움츠리게 할지라도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도 이미 봄은 찾아와 있을 것이다. 봄은 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새로운 학년이 되고 만물은 새로운 것을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뚫고 나오지 않으면 새로운 삶은 없다. 그러니 처음이 고통스럽다 해도 그것은 기꺼이 받아들여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싹이 이 땅에 굳세게 뿌리 내리도록 돕는 것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져야 하는 의무일 게다. 봄은 그렇게 사람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음악회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밤 나에게 베풀어진 작은 정성에 나는 봄밤의 정취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나와 함께 하지 못한 많은 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미안했다. 그리고 많이 아쉬웠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새 도시에 사는 사람의 비애를 느꼈다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
오랜만에 서울의 봄을 느끼고 왔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봄은 오고 있을 것이다. 문화의 향기가 충만한 봄소식을 기다려 본다. 작은 것에서 기쁨을 누리는 일조차 힘들고 버거운 이들에게도 새로운 봄은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잠시 행복할 수 있는 좋은 공연과 전시회가 늘 넘쳤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꽃과 호수의 도시에 걸맞는 그래서 언제나 봄기운 같은 희망이 샘솟는 그런 도시가 되기를 소망한다. 일상에 찌들었다가도 잠시 고개를 돌리면 사람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해 뭉클할 수 있고 그림으로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다 같이 누릴 수 있기를 또한 소망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봄이다.
고광석/본지 편집위원·대명한의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