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여고·예술고 전기안전관리자 이재욱 씨

덕이동에 가면 낮은 산자락 아래 자주빛깔 건물이 한눈에 들어와서 푸근함이 감도는 고양여고가 있다. 그리고 같은 울타리 안에 전문 예술인(시각미술과, 음악과, 무용과, 문예창작과)을 육성하는 고양예술고가 작년에 개교하고서 나래를 펴고 있다. 이곳에서 전기안전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이재욱(51) 씨를 따뜻한 봄 햇살 한줌에 벚꽃의 꽃망울이 하나둘 터질 무렵 변전실에서 만났다.
책장에는 공연 팜플렛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고 선반위에는 장구가 올려져있다. 누가 보아도 전기를 다루는 변전실과 장구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양새지만,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어울림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우선 이재욱 씨가 활동하고 있는 것을 살펴보면 고양시 국악협회 부회장과 고양시의 대표적인 두레풍물단체인 ‘고양 진밭 두레 보존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고, 성석동 진밭에서 농사일도 하고 있다. 93년도 까지는 직원을 여러 명 두고서 높은 전봇대에도 서슴없이 올라가고, 일산 복합 화력발전처(일산열병합) 보수공사를 비롯한 전기 공사업을 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그 후 IMF의 영향으로 농사를 짓던 땅을 팔아서 직원들 퇴직금까지 챙겨주었다. “직원이 무슨 잘못인가. 경영자의 능력 부족이지 않는가. 그때의 그 어려움을 나누었기에 지금까지도 대포잔을 기울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고 이재욱 씨는 말했다.
94년 3월에 성사동 부근에서 전기공사 일을 하고 있는데 장구와 민요소리가 들려서 일하던 손을 멈추고 작업복 차림으로 찾아간 곳은 ‘김권수 국악원’이었다. 이곳에서 어릴 때 많이 들어본 것 중에 하나인 상여소리를 가르쳐달라고 하면서 고양시 국악협회 김권수 회장을 만났다. 김 회장의 문하생으로 시작되어 국악에 입문하게 된 동기라고 했다.
지금까지 펼쳤던 많은 공연들 중에 봉이 김선달, 월매뎐 등이 기억에 남지만, 그래도 제일 잊을 수 없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고구려 판 춘향전인 몽연연가에서 ‘산지기’역이라고 했다. ‘고봉산 인근에 살았던 한 씨 미녀와 고구려 왕자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국악 소리극으로 만들어서 무대에 올린 것이다. “경기 소리의 한 획을 그었다. 설화를 4년 동안 준비한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이재욱 씨는 설명했다. 지금도 그는 일주일에 3번을 국악협회 사무실에서 경기민요와 장구를 단원들이랑 연습을 하고 있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고양 진밭 두레 보존회’는 공연 때마다 ‘농자천하지대본’ 깃봉 밑에 꿩 털을 유일하게 꽂고서 태극기를 달고 있다. 그것은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자는 뜻이라고 했다. 고양시에서 열리고 있는 대부분의 행사에 참여하여 우리 전통가락을 펼치지만 그중에서도 2003년도부터 정월대보름 행사를 하고 있어, 자연부락의 정취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이 씨는 작년까지 고양여고 풍물반 강사와 변전실 일을 함께 했는데, 올해부터는 예술고 실습동 증가로 인하여 전기안전관리자로서 늘어난 업무에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바쁘지만 틈이 나면 성석동 진밭에서 농사도 짓고, 단원들과 농사한 것으로 나눔의 정도 쌓고, 다른 단체의 국악공연도 빠짐없이 다니면서 더 큰 성숙을 위한 준비도 차근차근 하고 있다.  이재욱 씨는 공연 때마다 참석하여 응원을 보내주는 부친(이두희 옹, 78)과 돌아가신 모친의 병간호를 정성껏 해준 아내(박월두, 51)와 아들(기종, 대학교 4)과 딸(지연, 대학교1)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기회가 와서 경기소리의 이수를 받고 싶은 것이 희망”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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