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도 엿보고…

애꾸눈 궁예가 세웠다는 태봉국.
궁예 궁터는 철원 비무장지대에 있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생태 보호지역. 들꽃들이 사시사철 계절을 나누며 피는 곳. 동물들의 놀이터. 궁예의 태봉국 궁이 세워졌던 자리이기도 하다. 일본 강점기에는 궁터 앞에 석등과 탑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철원에 가도 궁예 궁터는 갈 수가 없다. 그래도 곳곳에 마음먹고 둘러봐야 하는 곳은 즐비하다.

▷ 노동당사
기둥마다 총알의 흔적을 안고 속내는 다 파헤쳐진 체 서있는 노동당사.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이 건물의 이름은 조선 노동당 철원군 당사.
골조만 겨우 버티고 서있는 노동당사는 소련식 공법을 사용한 무철근 콘크리트 건물. 원래 3층이었으나 지금은 계단을 통해 2층까지 겨우 올라갈 수 있다. 2층부터는 허허 공간이다. 외벽만 겨우 남아있다. 1층은 작은 방들로 이어져 있다. 그 쓰임은 무엇이었을까?

▷ 도피안사
59년 전방 한 부대의 장군 꿈에 땅속에 묻힌 불상이 나타나 “답답하다”고 하소연한다. 다음 날 시찰에 나섰던 장군은 꿈에 보였던 여인을 만난다. 여인의 안내로 도피안사 터를 찾았다. 이곳에서 꿈에 나타났던 철불이….
도피안사는 신라 경덕왕 시절에 도선국사가 1500명의 향도(鄕徒)와 함께 지었다. 그후 도피안사는 피안의 세계(?)에 있었는지 역사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1898년에서야 불에 타 재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도피안사는 한국전쟁을 피하지(?) 못하고 또 불타고 만다. 그리고 1959년에 군인들 손으로 다시 지어진다.
도피안사에 가면 장군의 꿈속에 나타났던 철불이 있다. 국보 63호인 철조비로자나좌불상. 9세기부터 도피안사를 지켰을 삼층석탑도 볼 수 있다. 보물 제 223호.

▷ 고석정
임꺽정이 ‘꺽지’로 둔갑해 물 속으로 숨었다.
철원 사람들에게 임꺽정은 죽은 게 아니라 ‘꺽지’라는 물고기로 한탄강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
임꺽정이 은거지였다는 고석정. 신라 진평왕이 고려 충숙왕이 놀던 곳이라는 전설도 전한다.
고석정은 진평왕 때 지었다는 정자와 정자 앞 고석바위, 주변 계곡까지를 일컫는다. 고석정에 들어가려면 철의전적기념관 관리사무소가 버티고 있어 입장료를 내야한다는 게 험.
비록 새로 세운 정자지만 정자에 올라 휘돌아 흐르는 한탄강을 바라보면 입장료 쯤이야…. 임꺽정이 숨기 위해 드나들었다는 바위 구멍을 찾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

▷ 월정리역과 철원역
철의삼각전적관에서 시간만 잘 맞추면 군인의 보호 아래 월정리 역에서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있다. 철의삼각전적관 사무소(033-455-3129)에 민통선 안 견학신청서를 내면 출입증을 준다. 9시, 10시, 오후 1시, 2시 출발. 동절기에는 오후 2시 출발만 2시 30분으로 바뀐다.
겨울 철새가 오는 시기 마침해 찾는다면 천통리 철새 도래지에서 천연기념물 202호 두루미, 203호 재두루미 들을 두루두루 만날 수도 있다. 일반인들은 먼 발치에서.
월정리역은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 철책에 가장 가까운 역. 부서진 채 누워있는 열차는 금강산까지 달리던 그 기차인가. 녹이 슬 대로 슬러 그 모습이 마냥 처량하다.
군인들이 주민등록증을 돌려주는 지점에서 조금만 더 내려와 왼쪽을 바라보면 철원역이 있던 자리다. ‘금강산 전철의 시발점’이정표와 신호대만 덩그러니 남아있지만 예전에는 역원이 80여명이나 됐던 큰 역. 철원역에서 출발하면 네 시간 반이면 금강산에 닿았다.
철원역 이정표라도 볼려면 길가에 차를 세우고 논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야 한다. “여기가 철길이었나?”흔적을 더듬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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