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지역신문으로 잔뼈 굵은 나라, 미국

▲ 스포츠 기자 출신인 데이비드 코플런드(David Copeland, Elon 대학) 교수가 200년이 넘는 미국 지역신문의 역사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미국은 언론학부 교수의 90% 이상이 현장 기자 출신이라는 실용적 학풍을 자랑한다.

박물관에서는 웃으며 보았던 200년 역사의 미국. 그러나 신문시장에서는 넘지 못할 큰 벽이었다. 우리의 벤치마킹을 대서특필했던 워싱턴 데일리뉴스(Washington Daily News)도 기사에 “그들의 지역신문 역사는 20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토대와 체급(?)이 다른 우리가 미국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연수단은 기대감 속에서도 회의(懷疑)하고 또 회의했다. 다음은 지난 8월 11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됐던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지역 연수 참가기다. 앞으로 3회에 걸쳐 미국 신문산업의 최근 동향과 지방자치를 연재한다.


미국인들이 독립선언보다 더 영향력 있는 유산이라고 믿는 수정헌법 1조의 내용은 “의회는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정부에 대한 불만 청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언론은 특히 개인 소유의 언론들은 이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일반 기업의 활동과 정부의 기록은 공개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할 책임이 언론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강령으로 현실화하고 있었다.

연수단이 방문한 신문사 중에는 최근 정부와의 소송에서 승소한 곳이 두 군데나 있었다. 이번 연수 주제 중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대목이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비도덕적으로 살아남느니 차라리 장렬하게 전사하는 편이 지역신문 역사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비장한 각오가 생겼다고 할까.
미국에는 정보공개법, 회의공개법(Open record law, Open meeting law)에 의거 정보와 회의 공개하게 돼 있다. 그러나 주민건강, 사적 정보 등을 이유로 정보와 회의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 끊임없이 투쟁하지 않으면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권리를 놓고 매일 매일 언론인과 정부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회색지대 놓고 매일 한판 승부

 

▲ 알라만스 뉴스(The Alamance News) 발행인 탐 보니 주니어(Tom Boney. Jr)는 지방정부의 정보공개 요구에 단호히 싸우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비공개 회의를 취재하다 연행되기도 하고 소송을 3번이나 당했지만 언론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미국은 정부에 번번이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알라만스 뉴스(The Alamance News) 발행인 탐 보니 주니어(Tom Boney. Jr)는 아우터 뱅스 센티널(Outer Banks Sentinel)의 발행인 샌디 시맨스(Sandy Semans) 씨도 고개를 저을 만큼 ‘골치 아픈’ 기자다. 탐 보니 씨는 지방정부의 폐쇄적인 회의구조와 싸워왔다. 벌링턴 시 정부는 그가 취재하지 못하도록 고소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나중에 샌디 시맨스 발행인에게 들은 얘기지만 판사가 “성가신 사람이지만 그에게는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고 한다. “책상 치운다고 돈 생기나”라는 농담을 던질 만큼 그의 신문사는 산만하고 비체계적으로 보였지만 2대를 이어온 열정이 다른 곳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아우터 뱅스 센티널 역시 최근 정부와의 소송에서 승소해 화제에 오른 신문사다. 발단은 기자가 정부회의를 취재하고 변호사 비용 증가시킬 예정이라는 기사를 썼는데 발행인이 청구서를 확인하라는 오더를 내리면서 부터다. 정부에서는 공개를 거부했고 이에 의원과 시장에게 편지를 보내 공개를 요구했으나 효과가 없어 변호사를 고용, 공개법에 따라 소송을 진행시켰다.

이 문제가 소송으로 불거지면서 시민들은 인구 3200명밖에 안 되는 도시에서 변호사에게 100만 달러를 지불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시의원 중 소수로서 다수에 반대하고 있었던 2명의 의원에 대한 지지도 올라갔고 이들은 다음 선거에서 연임됐으나 다수의원들은 낙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후로도 발행인은 3번이나 소송 당했다고 한다. 그녀는 “소송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아야 그만둘 것”이라고 가볍게 응수했다.

“정보 숨기면 모두 다 무너져”

손자까지 있지만 여전히 젊고 활기가 넘치는 그녀는 회색 지대에 대한 언론 투쟁을 ‘애국심’이라고 설명했다. 해군이었던 어머니가 무책임한 정부의 조치에 오랫동안 투쟁하는 것을 보아온 그녀에게, 애국은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는 나라를 위해 봉사한 애국자다. 애국자는 정부가 제대로 일하도록 할 책임이 있다”는 명언을 남겼고 그녀는 “신문은 어머니, 정부는 아이다. 정부가 잘못하면 신문이 바로 잡아 보살펴야 한다”는 신념으로 대를 이었다. 그녀는 덧붙여 “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나머지는 다 무너진다. 결국 정보를 숨기는 것은 행정 체계를 망가뜨리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라는 말에는 익숙하지만 애국이라는 단어에는 낯설었던 내게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정확하게 미국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로 작용했다. ‘작은 지역신문으로 이뤄진 나라’라는 추상은 곧 피가 흐르는 혈관으로 구체화됐다. 지역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미국의 잔뼈를 굵게 한 동력이 바로 언론에 있었다는 사실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왜 그들이 그토록 수정헌법 1조에 집착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뉴스&옵저버가 ‘Q'라는 섹션을 통해 신문의 위기를 특집으로 다룬 생뚱맞음도 아귀가 맞는 것 같았다. 언론이 미국의 민주주의와 함께 발달했다고 믿는 그들의 자긍심의 실체를 보았다고 할까.

현장경험 중시하는 학풍

 

▲ 미국의 신문 가판대. 특히 USA투데이는 TV모양의 가판대로 유명하다. 한 지방정부는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가판을 모두 치우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미관보다 언론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국가의 탄생과 궤를 함께 신문의 역사는 곳곳에서 놀라운 얼굴로 다가왔다. 그 첫 번째는 Elon University School of Communication 방문에서 발견한 산학 연대였다. 미국의 언론학과는 처음부터 전문 기자를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의 신문방송‘학’과는 다른 출발이다. 다수의 퓰리처상 수상자가 교수로 있는 학교….

연수단을 맞았던 데이비드 코플런드(David Copeland, Elon 대학) 교수 역시 스포츠기자 출신이다. 이곳에서는 현장 경험을 가진 기자가 교수가 되는 예가 흔하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 기반 역시 산학연대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현실감각을 중시하는 학풍이 현장에서 단련된 기자들을 교수로 채용하는 순환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기자를 전문직으로 길러내야 한다고 주창한 자는 뜻밖에도 선정적 뉴스보도로 옐로우 저널리즘 시대를 이끌어온 퓰리처였다. 실용적인 미국대학의 학풍과 맞물려 의사나 변호사처럼 전문적으로 양성하자는 데에는, 아무나 기자를 할 수 없도록 한다는 배타성과 엘리트 의식도 작용했겠지만 한편으로는 신문의 영향력을 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의 전문성과 소양을 기르는 것이 목전 과제였을 것이다.

언론대학 학생들에게 4개월 정도의 인턴십이 필수 코스다. 학교에서 직접 지역신문과 연결될 수 있도록 주선해준다. 학생이 4개월 동안 활동한 기사와 사진 등의 자료는 바로 그들의 취업 포트폴리오가 된다. 객관성을 잃은 기사를 작성해 물의를 빚는다면 마땅히 과락을 감수해야 한다. 현장에서 얻은 경험과 평판까지 교육의 한 부분으로 녹여낼 만큼 그들의 교육은 철저했다.

Elon University의 학생들은 지역 방송국 program 3개 채널(게임쇼 등 엔터테인먼트 채널, 시네마&다큐멘터리, 뉴스)를 직접 제작한다. 최근 미디어의 중심이 방송 쪽으로 경도되고 있어 신문뿐만 아니라 인터넷, TV프로그램 제작까지 전천후로 제작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었다. 카니벅 부학장은 웃으며 “여러분도 방송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미소 속에는 ‘도태되고 싶지 않다면…’이라는 칼이 숨어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연수 일정
노스캐롤라이나의 지역신문 강의 Dr. David Copeland(Elon University) 8/13
The Alamance News 탐방 8/13
Burlington Times-News 탐방  8/14
Washington Daily News 탐방  8/15
Beaufort County 의회-매니저형 지방정부 8/15
Outer Banks Sentinel 탐방 8/16
노스캐롤라이나의 지역신문 강의 Jock Lauterer 교수 8/17
Wake weekly 탐방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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