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범/ 대구대 교수·진실화해위원회 비상임위원

화해와 용서 주저 않는 용기 필요
지친 유족들 더 위로하고 격려해야

지난 6월 26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년 여 동안 수행해 온 금정굴사건 조사의 결과를 최종 승인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인민군 점령기의 부역행위 혐의를 이유로 연소자와 여성 포함 153명 이상의 지역주민을 경찰이 우익단체의 조력 하에 불법으로 집단 총살했다는 것이 조사결과의 핵심이다.

그러나 조사결과 및 그 보고서 내용은 희생자들의 유족과 지역 시민단체가 보기에 여러모로 미흡하고 불만족스러워 곧바로 이의 신청이 제기되었고, 토론회 형식을 빌린 성토까지 있었다. 어쩌면 조사결과는 경기도의회의 진상조사보고서(1999)나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의 ‘민간인학살실태보고서’(2004)에 기술된 내용 골자를 크게 넘어서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시한에 쫓기면서도 이런저런 제약이 많은 조사권한과 조사자원만으로 수많은 신청사건들을 감당하게끔 되어 있는 진실위의 현 상황과 구조적 한계를 바로 떠올리게 한다.

그런 까닭에도 이번의 조사결과나 진실규명 결정은 완벽한 것이라고 내세우기 어렵다. 차라리 일정 수준에서 행해진 봉합이라 여기는 것이 합당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혀 의미 없는 일은 아니다. 지역사회 및 시민사회 차원에서 제기되어 온 ‘전쟁기 민간인희생사건’의 진상규명 과업을 스스로 부담한 국가가 그 과업수행 결과를 공식 언어로써 제시하고 그에 대한 국민적 ‘승인’을 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승인은 비극적 학살사건의 가해자가 되었던 사람들과 희생자 유족들이 대승적 화해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일차적 조건이기도 하다.

조사보고서에서는 고양경찰서원들, 고양지역 치안대원들, 태극단원들이 직·간접의 가해자로 지목되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가해자를 한 사람 한 사람 다 밝혀내고 책임의 경중을 낱낱이 따져 묻는 것도 요구될 법하다. 그러나 꼭 그래야만 할 것인가? 지금 와서 가능한 일이기나 하겠는가? 끝없는 추궁은 끝없는 변명과 자기방어 및 정당화의 쳇바퀴 놀이를 연출하게 될 것이다.

반세기 전에 광기와 야만의 행동들을 부추기던 이념 싸움과 아집의 굴레를 이제 다시 뒤집어 쓸 이유가 무엇인가? 남과 북이 화해와 평화의 큰길로 접어들고 있는데, 남쪽 땅 안에서 소모적인 이념논쟁과 감정대립을 한없이 이어가야만 하겠는가?
물론, 일방적 요구나 종용에 의한 화해는 거짓 화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상호적 화해라야 진짜 화해가 된다. 비록 부분적이라 할지라도 일단 밝혀진 진실은 겸허하게 받아들여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진정성 어린 사과와 함께 화해의 손길이 내밀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화해는 가해자 쪽에서 먼저 제의되는 것이 맞다.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전남 영암군 구림마을 얘기이다. 한국전쟁기에 마을 안에서 벌어졌던 상호가해/보복성 학살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이 지난 해 봄부터 마음을 열고 마음을 모아서 열어간 화해의 길과 합동위령사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림마을과 고양시의 역사적 조건이나 현실적 여건이 같지는 않겠기에, 구림마을 사례를 그대로 모방해 좇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은 역사적 화해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누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 것인가. 주저하지 말자. 용서도 미루지 말자. 희생자 쪽에서 먼저 용서하는 마음을 내보이는 용기와 도량도 어쩌면 필요하다. 그것이 가능해지고 현실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그동안 많이 지치고 외로웠을 유족들을 더 많이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요컨대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지역사회 내부에서, 당사자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진실위의 조사결과 보고서나 진실규명 결정은 그 계기를 제공하는 셈인 것이고, 그 후속조치들을 통해 시·도 의회와 지자체 행정관서들이 화해의 중개자 및 지원자 역할을 적극 자임·자담토록 해야 한다. 부디 일들이 그렇게 되어지기를 기대하고 또 촉구한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