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동 고봉산장 이종일 대표

 “뇌출혈로 5년 전 쓰러져서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태였어요. 투병 중에 운동 삼아 고봉산을 찾게 됐고, 매일같이 등산을 하면서 조금씩 말문이 다시 트였기에 산에 대한 고마움이 컸습니다”라고 전하는 이종일(52) 대표. 이 대표는 안곡초등학교 옆 고봉산 들머리에 우뚝 솟아 있는 솟대를 만든 장본인이다.

이 솟대는 2003년 11월 주택공사가 아파트 개발을 위해 고봉산 자락에서 무차별로 베어낸 수령 70년의 아름드리 목련나무로 만들어졌다. 그 무렵 등산을 자주 하던 이 대표는 안타까운 마음에 “건강을 찾게 해준 고봉산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는 의사를 ‘고봉산 지킴이’에 전달했고, 그렇게 자원봉사로 솟대를 제작하게 됐다. 그리고 꼬박 3일 동안 정성을 다해 자연훼손에 대한 경각심과 나무의 아픔이 세 명의 할아버지 혼령으로 표현된 솟대를 만들었다. 2004년 11월, 높이 7m에 너비 5m 크기로 완성된 ‘고봉산 희망의 솟대’는 그렇게 지금까지 고봉산 입구를 지키고 있다.

미술교육을 따로 받은 적도 없이 느낌으로 솟대를 만들었다는 이 대표는 “쓰러진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듯, 자신 또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솟대를 고봉산에 담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난봄에는 들머리에 꽃밭을 만들면서 느티나무 뿌리를 그대로 살려 머리카락이 있는 장승 삼 형제를 만들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장승 한 개는 누군가 탐을 내어서 도난 당한 후 지금까지 두 형제만 꽃밭을 지키고 있다.

가을이 시작되고부터는 밤나무 가지를 그대로 살려 코끼리 장승을, 참나무 밑동으로는 마귀할멈 얼굴을, 또 다른 참나무로는 뿔이 드러난 도깨비를, 허리가 반쯤 잘린 나무로는 할아버지 장승을 연이어 제작했다. 또 언덕 아래 경사진 곳은 자비로 구입한 파이프를 설치해 발을 디딜 수 있도록 한 후 발전기와 그라인더를 이용, 할아버지, 할머니 장승을 다정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의 솟대와 고봉산에 대한 사랑은 그가 운영하는 갈매기살 전문 음식점의 ‘고봉산장’이라는 상호와 간판에 들어있는 희망솟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재주가 많은 이 대표는 원래 일본으로 유학으로 배운 사진기술을 발휘해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비롯, 각종 행사에서 생생한 현장을 담는 프리랜서 사진작가였다. 또 90년대 초반에는 풍동 애니골 화사랑에서 통기타로 노래를 했고, 그 부근에서 ‘노랫마을’ 카페를 직접 운영하다가 중산동으로 옮겨 온 후 손수 통나무로 지은 ‘중산노래마을’ 라이브 카페를 열기도 했다. 그러다 투병생활을 한 후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것이 지금의 음식점이다. 얼마 전에는 중산동사무소와 7단지 부녀회의 요청으로 중산체육공원 맞은편 담장에 국경을 넘나든 애틋한 사랑의 ‘고봉산 한주설화’를 벽화로 그리기도 했다.

“고사목이 그대로 방치된 것이 보기 흉하고 해서 장승으로 만들었는데, 산을 찾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행복한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이 대표는 앞으로도 구석구석에 숨겨진 고사목을 찾아내 하회탈과 같이 해학과 풍자가 있는 장승을 만들어서 산을 찾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싶다며 “고봉산의 나무들이 손짓하면 언제든지 달려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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