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시립미술관시립미술관 건립 능사 아니다문화마인드 없는 추진은 ‘또 하나의 거푸집’ 불과사진 : 아람미술관 / 호수갤러리 / 구산동스튜디오전문 : 고양시가 시립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미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안이지만 일반 시민들은 고양시 중기재정계획에 ‘시립미술관’이 포함돼 있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는 반응이다. 좀처럼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는 아람누리나 어울림누리에 이은 또 하나의 거대 공룡이라는 느낌 때문일까. 시민들은 지금 ‘또?’라고 묻는다. 시립미술관. 과연 절실한가? 이번 호에서는 시립미술관 필요성을 집중 진단해 보고자 한다. / 취재 김선주 기자시가 향후 5년 동안 신규 투자계획으로 예상하고 있는 사업 중에는 한류우드 부지 내에 시비 330억 원을 들여 시립미술관 건립 사업이 포함돼 있다. 문화예술과 한 담당자는 “기획예산과에 2008년 사업비 중 이와 관련해 3000만원의 용역비를 신청했으나 예산부족의 이유로 삭감됐다”며 “2009년 사업예산에 용역비를 다시 신청할 계획인 만큼 아직까지 구체적인 밑그림은 없다”고 밝혔다. 또 “애초 19834.8m²(6000평) 의 문화부지 내에 9917.4m²(3000평) 규모의 시립미술관을 추진할 계획이었으나, 현재 그 부지가 시립미술관과 학교, 그리고 주차장으로 세분화되면서 약 6611.6m²(2000평)으로 면적이 줄어들었다”며 “따라서 현재 예상하고 있는 330억의 사업비도 다도 줄어들 것”이라고 전했다. 추진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건립에 대한 의지만은 확고함은 틀림없어 보인다. 330억 원 들여 한류우드 내 건립시가 시립미술관을 추진하는 이유는 ‘100만 인구 도시에 걸맞는 문화시설’이라는 명제가 우선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사)한국미술협회 고양지부의 끊임없는 요구, 그리고 장항동 한류우드 부지를 매입할 때 그곳에 거주하던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하종현 작가의 작업실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약속된 부분이기도 했다. 당시 장항동에 지역 미술인들과 미술관 건립 및 작품 기증을 추진하고 있던 하 작가에게 시는 “그곳에 시립미술관을 짓고, 또한 하종현 작가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겠다”고 설득한 것.시립미술관 건립 추진에 대해 미술계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와 비판적인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고양창작스튜디오의 심규환 메니저는 “작가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전시·판매·작업공간”이라고 설명하며 “공연문화에 치중돼 있는 고양시의 문화방향에 전시공간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립미술관 추진에 단초 역할을 제공한 하종현 작가도 “일본에서는 시립은 물론 구립 미술관도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며 “잘만 운영한다면 서울 사람들이 역류해 관람을 올 수도 있고 지역에 재미있고 유익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문화 마인드 없었던 아람미술관 개관전그러나 비판적인 미술인들은 물론 환영하는 미술인들도 한결같이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고양시가 ‘문화 마인드’가 없다는 것이다. 시립미술관을 적극 찬성하는 하종현 작가도 “고양시는 아람누리나 어울림누리 등 기존 문화시설을 전혀 차별화 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작가들의 안정적인 작품활동 분위기 조성은 물론 지역의 미술교육 현장으로, 또 청년작가들 육성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기존 아람이나 어울림의 전시 공간의 활용 사례에서 이런 의도나 정책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구산동에 작업실이 있는 이원석 작가는 “아람누리 개관전에서도 ‘꽃’을 테마로 전시를 했을 뿐 향후 전시장의 운영 방향이나 계획 등 어떤 청사진도 전혀 읽을 수 없었다”며 “현재 아람과 어울림의 전시장은 지역의 특색도 살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현대미술에 대한 흐름을 읽으려는 노력도 보이질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이 작가는 시민을 유권자로만 보고 시민을 ‘표’로만 환산해 건축물 등 눈에 드러나는 과시용 사업에만 치중하는 시책을 우려하며 “미술관이 충분히 활용가치가 높은 것은 틀림없지만 방향도 불분명한 현 상황에서는 거푸집을 또 하나 짓는 꼴”이라고 지적했다.지역의 정서 외면하는 현 전시공간 시가 이렇듯 미술인들, 특히 지역의 미술인들의 불신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문화예술 소프트웨어 지원이나 방향제시에 너무 소홀했기 때문이다.대구예술대 리승철 도예학과 교수는 “고양시에 살면서 시의 문화정책을 전혀 체감할 수 없다”고 꼬집으며 “건물을 짓거나 행사비 일부를 지원하는 것을 문화예술 사업의 전부로 생각하는 고양시의 마인드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양미협의 박정숙 지부장도 “아람누리나 어울림누리에서는 관내 작가의 작품 전시를 거의 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유일한 전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호수갤러리의 경우 수년 전부터 간판 설치를 부탁했으나 이마저 담당자 변경 등의 이유로 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박 지부장은 “관내에 유능한 작가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이 이를 수용하지 못해 대부분 서울 등 외부에서 활동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전하며 “또한 주민자치센터나 학교 등에서 미술교육 활동을 전개하려 해도 행사비이외에는 지원이 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이러한 지역 작가들의 불만은 곧 시민들의 불만과 공통분모를 갖기도 한다. 어울림이나 아람누리 등에서 대규모의 비싼 공연을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시민들의 혈세로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현 문화공간은 문턱이 너무 높다. 그래서 시민들에게‘딴 나라 세상’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인재육성·지역과의 소통 선행돼야 작가들은 우선 유능한 미술인 육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다.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던 하종현 작가는 “기존 전시공간만 해도 한 전시에 3개월 정도씩 사용하고 있는데, 1개월이면 충분한 전시가 많다”며 “더 많은 전시 기회를 통해 유능한 인재 발굴이나 청년 작가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승철 교수도 “문경의 경우 도요지의 특색을 살려 도예학과 학생들의 학비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예술단체스폰지 운영하고 있는 박이창식 작가는 바람직한 예술의 방향에 대해 “지역적 특성들이 예술가와 맞물려 지역의 에너지들이 생성이 될 수 있도록 작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에서 유학을 했던 이상호 작가도 “21세기 미술은 친환경예술, 미디어 아트, 공공아트”라며 “시는 지역과 지역 외 그리고 외국의 유명작가들의 작품들을 잘 안배해 전시해야 하며, 작가들도 이제 작업실에서 벗어나 학교, 공원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도 예술인들도 미술관 건립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의 토양이 그만큼 성숙했는지, 고양시는 문화정책 마인드가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원석 작가는 “기존 공간 합리적으로 사용하다가 필요하다 느낄 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고, 만약 짓는다면 시에서 일괄적으로 관할할 것이 아니라 미술과학, 건축과학, 환경학들의 전문가들이 주축이 된 건립추진위원회가 객관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고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미술관 건립이 능사는 아니다. 고양시는 어떤 미술관을 지으려는 것인가. 미술관을 통해 어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인가. 이런 물음에 답할 수 있을 때, 그 때 미술관을 건립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