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은 중앙 아류 아닌 지역 정체성 담아야

▲ 고양아람누리 개관에 앞서 지난 2007년 1월에 지역 기자단을 대상으로 아람누리 투어가 진행됐다. 이날 고양문화재단 관계자는 아람누리의 향후 운영방안에 대한 설명없이 최첨단 시설만을 강조했다. / 사진 황영철 기자

'김달진 미술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올 한 해 국내에 새로 생긴 미술전시공간은 고양아람미술관을 비롯 107곳에 이른다. 2005년 51곳, 2006년 63곳에 비한다면 가파른 팽창이다. 한편 올 해 폐관된 미술관만도 서울갤러리 등 5곳이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충분한 고민없는 시립미술관 건립은 자칫 심각한 적자로 인해 골칫거리로 남거나, 폐관과 다를 바 없이 본래 취지를 잃은 채 대관전용 미술관으로 변질될 수 있다. 

지난 12월 23일 경기도는 직속기관 11곳에 대한 평가에서 안산에 위치한 경기도미술관에 대해 “낮은 인지도와 취약한 접근성 해소대책을 마련하라”는 쓴소리 지적을 받았다. 2006년 10월, “지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전시공간을 지향하며 도민들의 자긍심이 되겠다”며 야심차게 출발했던 경기도미술관의 현 문제점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국공립미술관이 점차 BTL방식으로 추진되고 있기는 하지만, 미술관은 여전히 수익성보다는 공공성이 우선되는 사업이다. 현재 경기도에는 도립인 경기도미술관을 제외한다면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고양시가 시립미술관을 건립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시는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사실 시립미술관 건립은 해당 지자체 주민들의 강력한 필요성이 제기되거나 뚜렷한 운영계획이 있어야만 어느 정도 안정적 운영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고양시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하지 못하다는 게 미술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재 고양시는 전시공간이 없다기보다는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존 전시공간 운영사례로 보아 앞으로도 명확한 운영계획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명확한 운영계획이 있는가
 
 

▲ 시립미술관은 시립미술관 다와야 한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미술사를 염두에 둔 전시를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고 있다.
구산동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이원석 작가는 “기존 어울림이나 아람미술관이 고양시 규모로 결코 작지 않다”고 강조하며 “문제는 앞으로 어떤 청사진을 가지고 운영할지 마인드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양창작미술스튜디오 심규환 메니저도 “각 미술관은 2-3년 치 전시 기획을 봐야한다”고 말했다.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신의 교수는 ‘박물관·미술관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움직임의 성과와 한계’라는 논문에서 “미술관 폐관 사례들은 국내 미술관의 경영력 부재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며 결국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건립부터 합리적인 운영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미술관 건립을 가능케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컬렉션과 기본계획 수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운영되는 아람미술관이나 어울림미술관의 전시에서는 특별한 기획의도나 전시방향을 읽을 수 없다는 게 미술계 인사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다. 그저 외부 유명작가의 작품을 특별한 잣대 없이 장기적으로 전시하고 있다는 것. 당연히 특색 없는 전시는 지역 주민들에게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시는 주민들과 시립미술관이 진정으로 필요한지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았고, 건립을 위해 전문가자문위원회를 조직하지도 않았다. 의례적인 용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의견 수렴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시는 시립미술관 건립과 관련, 용역이나 건립 예산 확보나 부지 결정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이는 ‘어떤’ 미술관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건축물에만 고민하고 있는 꼴이다.


전문인력 확보 가능한가

박신의 교수는 “예술경영적 차원에서 전문인력확보는 매우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고양창작미술스튜디오의 심규환 메니저도 “미래의 미술관은 예술학이나 예술 경영을 전공한 사람들이 핵심적으로 미술관을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고양시의 미술관에서는 그러한 흐름의 변화를 읽기 힘들다. 고양시에서 활동하는 한 미술가는 “현재 아람미술관이나 어울림미술관을 운영하는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2-3년 간격으로 보직이 바뀌는 행정직이 많으며, 전문인력 역시 중앙에서 조금 활동하던 사람이라면 무조건 수용하는 분위기”라고 꼬집으며 “이들에게서 중장기 운영계획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원석 작가도 “고양시립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가 그 특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운영되는 미술관의 모습은 그 아류로 가는 꼴”이라고 지적하며 “바람직한 미술관 운영을 위해서는 건립 이전에는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건립추진위원회를, 건립 이후에는 행정이나 감사 위주의 인력이 아닌 전문인력팀을 꾸려야 하는데 이러한 노력이나 마인드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어느 공공문화공간에서나 볼 수 있는 공무원과 학예직 간의 심각한 갈등에 대한 대안 역시 없다.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는가

 

▲ 도민의 이용이 예상보다 적은 경기도미술관은 지난 12월 경기도로부터 “낮은 인지도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무엇보다 현 고양의 문화정책의 수준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그저 중앙의 흉내를 어설프게 내고 있다는 점이다. 시립미술관은 말 그대로 ‘시립’이다. 때문에 지역의 특성과 정체성의 깃들어있지 않은 시립미술관은 본 취지에서 벗어나며, 활성화 역시 어렵다.
하종현 작가는 “현재 고양시의 미술관 운영은 차별성 없는 엇비슷한 투자, 고급문화 중심이어서 중산층이 소외되고 있다”며 “시립미술관은 고급미술은 물론 어린이 미술교육, 주부강좌, 세미나 등의 부대시설과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며 공공미술관의 교육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종합예술을 전공한 이상호 씨도 “큰 국제전을 기획하며 부대전시로 지역의 젊은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지역의 문화홍보에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강조하며 “이러한 지역의 젊은 작가 육성은 젊은 작가들이 공원조성에 작품을 기증하기도 하고 폐교나 지역의 다양한 공간을 통해 작가와 주민의 소통을 돕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은 다른 지역 시립미술관에서도 나타난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미술사를 염두에 둔 전시와 현재 부산 작가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전시를 국내 미술 흐름 파악할 수 있는 전시나 국제교류전과 병행하고 있다. 또한 대전시립미술관은 과학의 메카의 특성을 살려 대덕연구단지 과학자들과 함께 ‘예술적 기술과 기술적 예술’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고양에서는 지역 작가들이 설 공간도, 지역작가들이 주민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도 거의 없다.

한류우드 내에 미술관 부지를 마련한 것에 대해 문화예술과 한 관계자는 “테마파크 및 상가와 편의시설이 밀집한 한류우드에 건립하면 미술관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발상이 다변하는 미술계의 변화와 시립미술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보다는 단순히 서울대공원 옆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용인에버랜드 옆 호암미술관의 안정적 운영을 위치적 장점으로만 파악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고양시의 문화정책이 이렇게까지 황당하게 단순하지는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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