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건물도 알맹이 구축 후에 … 기초자원부터 정리해야

지리적으로 고려 수도 개경과 조선의 수도 한성 사이에 위치하는 고양시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문화유산이 산재하고 있다. 또한 대규모 신도시 조성과 함께 대형 문화시설이 존재하며 지금도 계획하고 지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기존의 다양한 문화를 분석하여 지역의 가치를 창조하고 새로운 시설과 연계하여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면서 관광자원화 하는 방법과 실천양식에 대해서는 아직 요원하다. 이번 호에는 원론적이기는 하나 고양시 문화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을 고민하고자 한다.
/취재·사진 김한담 전문기자(전통예술문화원 하누리 대표)
‘관광’이라는 말은 중국의 <역경(易經)>에 나오는데, <역경>은 미래예측의 수단으로 인간사회의 미래를 64가지 형식으로 보고 있다. 그 중 20번째가 ‘관(觀)’이라고 하는 점괘다. 관은 사물을 가만히 응시한다는 의미로 영어의 ‘see’가 아니라 ‘gaze’이다. ‘종이까지 꿰뚫을 정도’의 눈빛으로 자신들의 지역을 보라는 점괘다. 관광은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바꾸어 말해서 지역에 있는 우수한 것을 가려내는 능력,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관광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로부터의 관광객이 아니라 지역에서 살고 있는 내부의 인물, 지역민이 최대의 관광객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시점에 선다면, 외부로부터 온 사람들에게도 지역이 가진 빛이 무엇인지를 알기 쉽고 보기 쉽도록 지역에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관광에는 3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하나는 풍물이다. 아름다운 경치, 이것은 반드시 자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랜드마크적인 건축물, 수백 년의 비바람에 시달리면서도 견뎌낸 기와나 토담 그리고 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시냇물도 훌륭한 풍물이다. 그것을 보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을 발견하고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지역과 지역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두 번째는 생산물이다. 음식, 근대적인 공업생산물·지역의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가공제품 등을 포함해서 우수한 생산물을 가지고 문화적 마인드를 덧 씌워 경제적인 기초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생산물은 외부에서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설득력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 즉 사람이다. 유비쿼터스를 외치는 정보사회가 되어도 지역에는 인간이 있는 마을이 있으며 공동체가 형성된다. 그 작은 공동체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지역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싶은지 명확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독선적인 미의식이 아니라, 계속 이곳에서 생활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과 참여를 지역에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광의 3대 요소를 준비하고 갖춰나가면서 이를 어떻게 외부에 알리고 홍보할 것인가, 정보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유물, 지역사 속에서 재평가
지역이나 정보를 전문적 연구대상으로 하는 단체는 많이 있으나 지역정보(Local Intelligence)라는 새로운 시점에서 지역의 활성화와 지역 간 연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나 연구기관은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으며 고양시는 전무한 실정이다.
고양시의 자연과 역사에서 개성을 발견하고 타 지역과 차이를 내세워 관광자원으로서 정보의 가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지역의 문화가 성장, 발전해온 과정을 지방의 입장에서 정리하는 지역사 연구가 선행돼야만 한다.

지금까지의 향토사 연구에서 수집한 역사문화자료는 유적, 유물자료, 문헌(기록)자료, 민속, 구비문학자료였다. 이중 유적과 유물자료는 한 지역의 문화상을 살필 수 있는 유형자료로서 무엇보다 중요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고양시사를 비롯한 많은 고양시 역사와 문화를 다룬 자료를 보면 문화유적과 유물에 대한 이해가 고고학·미술사학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형상과 외형적인 특징을 기술·정리하는 선에 머물게 됨으로서 정작 근본적인 목표인 지역의 역사 문화적 실체나 성격을 이해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마치 비석의 귀부와 이수 등 예술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 외형에 치중, 그 가치를 논하면서, 정작 그 비의 주인에 대한 이해나 입지조건·배경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를 전개시키지 못한 채 지역사의 시각에서 보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비석의 건립연대나 당시 지역문화 실상, 건립주체와 당시 지역사회 분위기에 대한 조사와 이해는 제외되어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북한산성을 보는 두 가지 시각
북한산성을 예로 들어보면 연구조사, 발굴조사보고서 등 대학의 연구소나 박물관 같은 기관에서 전문연구자들을 참여시켜 만든 성과물 대부분이 전국의 모든 성터유적과 유사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지리개관, 연혁, 성곽과 성축구조, 시설배치, 출토유물 순으로 조사돼 있으며 구조적인 내용이 거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는 지역과 관계없이 진행되는 학술적 조사 자료로서 지역정보와 정보 활용의 측면에서 보면 허탈함을 넘어 중앙에서 활동하는 연구자의 횡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분노가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든다면 북한산성과 당시의 고양지역 세력과는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지, 성터와 인근 지역의 유적들은 어떠한 상관성을 가지는지, 지명이나 설화, 민담 속에 스며있는 성과 연관된 지역문화의 모습들은 어떠하였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발견, 고양시의 특별한 지역정보로 재창조해 지역가꾸기와 지역민을 위한 답사안내 자료로서 활용된다면 정보를 찾아 전국을 헤매는 매스컴 등의 지역정보 헌터들에게 매우 유용한 자료로 제공됨과 동시에 외부 관광객 유치로 연결돼 지역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의 시대, 문화산업이 활발하게 전개될 미래사회에서 우선 필요한 작업이 바로 지역의 전통문화자료(기초 데이터, 콘텐츠)를 철저하게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는 고양시에서 추진하는 정확한 기초 데이터조차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사행성 도박 사이트에 버금가는 보물찾기 식의 문화산업 추진이나, 정책개발에 대하여 의구심이 크며 또 실제로 그것이 얼마나 경쟁력과 가치가 있을지 걱정이다.
그런가하면 문화의 올바른 의미와 성격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외형적인 모습에 현혹돼 동양최고, 최대를 부르짖으며 마구잡이로 이루어지는 대형 문화시설 구축, 각종 이벤트와 문화행사, 기술만의 정보화, 우리 지역이 최고라는 식의 퇴행적인 문화교육 등 혼돈과 불균형이 판을 치고 있는 우리 지역의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
1000개의 콘텐츠를 확보하려면
이 같은 위기와 현실에 대응하기 위하여 고양시와 지역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핵심은 의식적 노력을 전제로 한다. 첫째는 문화를 가치 있게 보고, 현재의 삶과 연결시켜 유용하게 재창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 둘째는 이제 지역정보로서 활용 가능할 수 있는 자료의 수집과 정리, 그리고 더욱 진일보해 적극적으로 이들 자료를 포장(정보화)하고 활용(상품화)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고양시가 지역의 문화자원을 정리, 활용하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면 기초자원(콘텐츠) 정리수준의 질적 미달, 소프트웨어의 개발 미흡,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종 시설 등 하드웨어의 유기적 효용성과 경쟁력 부족이 대표적이다.
또한 행주문화제 등 지역축제를 보면 외부인으로 충원, 급조한 지역축제로 변질돼 경쟁력이 감소되고 축제에 대한 지역민의 자긍심 저하로 인해 관변조직 외에는 참여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지역축제에서 단골로 제기되는 내용인 ‘지역정서’ ‘지역민의 참여’ ‘지역의 역사성’ ‘지역의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행사 개발’ 등의 술어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런 점에서 한계가 보인다는 말일 것이고, 그 필요를 인정한다는 표현일 것이다.
고양시는 이제부터라도 첫 번째, 1000개의 콘텐츠 확보, 두 번째, 50~100종의 소프트웨어 개발, 세 번째, 1~2개소의 하드웨어 구축이라는 분명한 단계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그 과정에서 기초자원 조사정리와 분석, 나아가 활용의 방안까지 고려하는 일관성 있는 자세가 요청된다.
1000개의 콘텐츠를 확보하려면 지역민과 지역 문화예술단체, 시민사회, 교육단체에 대한 절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이는 지역문화단체 육성이 골자일 것이다. 끼리끼리 뭉쳐서 서로를 배려하는 심사제도나 전문적인 지식도 없으면서 관련 부서에 종사하고 있다는 식의 특권의식으로 뭉친 일부 공무원과 정책결정권자의 모습과 행위에서 수많은 문화단체와 문화예술인이 인근 파주를 비롯한 다른 지역, 또는 서울로 다시 이사를 나가는 모습은 지역의 편협한 문화정책과 행위에 대한 경고일 것이다.
지역의 문화예술인부터 끌어안아야
이들을 끌어안고 지역민과 오픈된 마인드로 교감하는 자세가 정책과 행위에 반영되는 과정에서 객관성이나, 상징성, 정체성, 경쟁성, 투자효율성 등도 점검이 가능해지며 여러 유형별, 그리고 수요층의 수준을 감안한 콘텐츠 발굴과 소프트웨어 개발이 준비될 수 있다.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의 발상으로 추진되는 대형 시설은 완공 후 운영의 묘를 찾지 못하고 지역민에게 소외되며 끊임없이 소모되는 예산으로 논쟁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으며 설득력 없는 지역축제는 인구 100만의 대도시에 걸맞지 않은 빈약한 프로그램과 진부한 내용으로 앞으로도 지역민에게 외면당하며 전국의 성공한 지역축제에 낄 자리가 없을 것이다.
전원도시로 그 명성을 날리던 고양시는 소중한 자연·인문적 유산인 자연마을을 재개발이란 미명 하에 지속적으로 파괴시켜 역사와 문화를 훼손하면서 한편으로는 시립미술관 등 토대와 비전 없는 건립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알맹이 없는 논의가 끝나면 또다시 미술품 구입예산, 운영예산 타령과 이를 둘러 싼 불협화음, 소수를 위한 잔치 등으로 구설수에 오를 것이란 자명하다.
눈에 보이는 거대하고 근사할 것 같은 하드웨어의 구축에는 그만한 시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지역의 소프트웨어가 구축돼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즉, 지역민의 요구와 시장의 수요가 있어야 중앙에서 오히려 지역으로 이전해오고자 하는 전문기관이 생겨나고 외부 관광객이 몰려들어 지역이 활성화되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문화적 도시로서 고양시의 모토인 문화와 교육도시로 그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고양시는 진정한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재창조하여 진짜 문화의 도시라고 온 세상에 외쳤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