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장애인 복지단체 연합회 박선자 회장

“내가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아들이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으로 몸이 힘겨워도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고양시 지적 장애인 복지협회 지부장(1995년부터), 경기도 지적 장애인 복지협회 회장(2000년부터), 경기도 장애인 복지단체 연합회(2008년부터)이라는 화려한 이력의 주인공 박선자 회장(54)을 주교동 경기도 지적 장애인 자립지원센터에서 만났다.
사실 박 회장의 아들도 장애를 안고 있다. 박 회장은 아들(이슬기. 22)이 5살 되는 무렵에 말을 제대로 못해 병원에 갔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하여 나온 결과는 발달지체아동으로 ‘정신지체 1급’을 판정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에 휩싸이게 된 것도 잠시, 초등학교 취학통지서까지 나왔다.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웠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박 회장은 그 시절을 회고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었기에 가슴으로 울면서 내 아들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도움이 되고자 마음을 굳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맨 처음 봉사를 한 것은 1991년도. 서울 방학동 살 때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승용차를 구입해 무료 차량봉사를 했다고. 또한 아들을 엎고서 장애인 차량 면세 서명운동을 펼친 성과를 계기로 협회 일을 하게 됐단다. 차량봉사를 하며 잊지 못할 보람된 순간들도 많다. 그녀는 몇 회 전 동산동에 살고 있는 유명한 웨딩 코디네이터 김 모 양이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돼 몇 년 동안 차량봉사를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져 지팡이 없이도 생활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한다. 또 의족을 했던 한 어르신은 처음엔 의족을 만지지도 못하다가 나중엔 자신도 모르게 의족을 들어서 차량에 탑승시키기도 했다고.
지금 지내는 곳엔 2007년 1월에 이사를 왔다. 여기서 사회복지사 4명이 지적장애인들을 위해 하루 종일 프로그램을 지도하며, 사회 적응 능력을 가르친다. 박 회장의 딸(이나리. 25)도 사회복지사로 함께 있다. 한편 훈련과정의 하나로, 폐현수막으로 모래주머니 및 앞치마, 토시를 만드는 것이 있는데, 장애인들에겐 수 십 번의 훈련이 필요한 어려운 과정이다. 그러나 여기서 훈련이 된 후 취업이 돼 다시 이곳을 후원해 주는 아이들을 보면, 이 어려운 훈련과정이 꼭 넘어야 할 산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꾸준하게 반복되는 15년 간의 훈련을 통해 조금씩 자기 역할을 찾아가는 아들의 변화 또한 그녀에겐 원동력이 되고 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응원해 주는 남편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는 박 회장은 “문 밖을 나서면 장애인을 위한 교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사회현실이 개선됐으면 하고, 후원자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