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많고 땅 비옥 … 성지순례 등 종중 단합도모

여주 이씨 현감공파 종중회의 이광식 회장은 “옛날이 그립지. 음식이 귀하던 때라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음식 귀한 줄을 몰라”라고 말하며 집성촌이 남아있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여주 이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던 시절에는 종갓집에 사당이 있어 명절이면 각 파에 상관없이 여주 이씨는 모두 모여서 조상에게 차례를 드렸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사당을 찾은 인파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이 길었다. 종갓집 사당에서 차례를 드린 뒤 각 파별로 다시 각 가정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이 순서였다.
집성촌이 남아 있던 시절에 이 일대에는 소나무가 많았다. 종중의 이영극 씨는 “전형적인 시골 모습이었던 이 지역에는 소나무 많았는데, 그 소나무 근처에서 친구들끼리 많이 놀았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직전만 해도 큰 소나무 많았다. 커다란 소나무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네를 매달아서 저녁이면 모여서 그네들 타고 씨름도 하고 그랬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소였던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또 소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마을 아이들이 한문 공부를 하기도 하는 등 소나무와 여주 이씨 집성촌 일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소나무 숲에서 일본 군인들이 훈련하기도 했고 6?25 당시에는 중공군들이 소나무를 마구 베어 땔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과거 이 일대에서는 쌀농사 이외에도 보리, 수수, 콩 등을 심어서 생계를 유지했다. 땅은 비옥해서 농작물이 잘 자라고 수확량이 뛰어날 정도였다.
이광식 회장은 “제사가 있을 때면 손자들에게 여주 이씨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지만 요즘 사람들은 도통 족보나 뿌리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내 이야기를 어려워한다. 집성촌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를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가좌 5단지와 6단지 등이 들어서면서 여주 이씨는 4백여 년을 살아오던 터전을 잃어버렸다. 택지개발 소식이 전해지자 여주 이씨는 회의를 거듭하고, 시청을 찾아 반대 의사를 전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그러나 결국 아파트가 들어섰고 이제는 모든 것이 과거의 일이 돼버렸다.
이 회장은 “종중에서는 매년 여주 이씨 성지 순례와 강화도에 있는 이규보 선생의 묘소에 시제를 올리러 간다. 매년 초 구정 즈음에 정기총회를 열면 외지에 사는 사람들까지 70, 80명은 모인다. 회의 전에는 늘 이규보 선생에게 배례를 올리고 시작한다. 앞으로는 장학회도 마련하고자 논의 중이다. 이런 활동이 현재를 살아가는 여주 이씨들의 단합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