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그런데 통화가 끝나자마자, 기사 아저씨가 하는 말은 이랬다.
“한국에서는 한국말 써야지. 여기가 너희 나라 땅이야? 너희 나라 말은 너희 나라에서나 하는 거지, 안 그래?” 분명 반말이었다. 물론 휴대폰의 주인이었던 그 청년의 목소리가 조금 컸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분명 지나친 말이었다.
그런데 나를 더 당혹하게 했던 것은 이 땅에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인 듯한 그 청년의 대답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공손한 말투였다. 하지만 왠지 주눅이 잔뜩 들어 보였다.
남의 나라에 왔으면 그 나라 말을 써야지, 자기 나라 말을 쓴다고? 그렇다면 기사 아저씨는 파키스탄에 가면 파키스탄 말만 쓸 건가? 그저 점잖게 이렇게 타일렀어야 했다.
“버스 안에서는 큰 소리로 통화하면 안됩니다.”
기사 분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너희 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니네 나라 사람들은 목욕은 하고 사니?”
물론 반말의 연속이었고, 청년은 억지 웃음을 머금으며 서투른 우리말로 매번 대꾸를 해 주었다.
연초에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란 책을 읽으며, 마을 버스에 탔던 그 청년이 이 땅에서 받았을 모욕감을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작정 반말부터 내뱉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사는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이다. 그 대단한 나라에 사는 내 자신이 슬퍼졌다.
